두 몫의 삶을 사는 남자

소설가 이인화

등록 2004.12.07 13:54수정 2004.12.07 18:47
0
원고료로 응원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지난 2003년 행사의 주제영상 「화랑영웅 기파랑전」을 수출했다. 이 작품은 신라의 영웅 '기파랑',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사랑, 위태로울 때 불면 나라를 구한다는 호국의 피리 만파식적 등 세 가지 신라이야기를 모티브로 전혀 새로운 판타지 스토리텔링에 의해 3D입체영상에 맞게 구현한 작품으로 세계 메이저배급사인 시맥스&아이웍스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테마파크용이긴 하지만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해외 수출까지 하게 된 '화랑영웅 기파랑전'은 전문가들에게 새로운 인물 창조와 다이내믹한 액션, 역동적인 영상미가 합쳐진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이인화 교수는 바로 「화랑영웅 기파랑전」의 시나리오작업에 참여했으며 현재 스토리텔링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소설가에 이어 영상과 게임산업에 까지 참여하고 있는 이인화씨를 만나본다.


이인화라는 이름의 해답

a 소설가 이인화

소설가 이인화 ⓒ 권미강

문인들에게 필명은 어떤 의미일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자신의 삶이 추구하는 정신세계를 한마디로 표현한 또 다른 자신이 아닐까'라는 결론 아닌 결론을 서둘러 내리긴 했지만 각자마다 품은 의미는 다르리라.

여성성을 안고 있는 부드러움이 깃든 이름을 가진 이인화씨(39세)의 본명은 류철균이다. 소설가로는 이인화로, 문학평론가로는 본명을 사용하는 그를 사람들은 보수적 성향을 가진 젊은 지식인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낭만적 허무주의자 쪽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그는 정말 요즘의 세상이 허무하다고 한다. 45살 이후의 삶이 어떨지 불안하다는 그는 그러나 영상과 게임의 스토리텔링을 연구하는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 연구이사다.

아날로그적 나이에 디지털문화의 중심에서 일하는 그가 자신을 허무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 해답은 그의 필명 '이인화'에 들어있었다.


결국 두 몫을 살고 싶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내재해 있는, 자신의 삶을 모두 찾아내겠다는 욕심. 그는 때론 활기차고 격정적인 일에 매진하다가도 곧이어 들꽃의 흔들림에도 허무함을 느끼는 낭만성을 모두 다 차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가장 포괄적으로 양분되는 인간의 모습이니 결국 인간이 가진 감정의 선 전체를 자신의 삶 속에서 건드려보고 싶은 욕망일 것이리라.

베스트 티처의 뿌리

1966년 1월 5일 류철균이라는 이름으로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2남1녀의 장남이었다. 경상북도 그것도 대구에서 장남은 태어날 때부터 엄청난 부채를 떠안은 존재다.


그러나 결코 넉넉하지는 않지만 책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너그러운 어머니는 장남의 무게를 그의 어깨에서 내려놓도록 한 듯하다. 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글 안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시험문제를 많이 틀렸거나 숙제를 잘못해서 하루도 매를 맞지 않고 집에 간 날이 없었다'고 기억할 만큼 문제아(?)였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공부를 잘 한다고 꼭 좋은 건 아니'라는 어머니와, 나이 어린 담임선생님 앞에서 머리 조아리며 자식을 위해 사과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러했으리라' 생각된다.

공부를 엄청 못했다는 자칭 지진아였던 그가 우리나라 최고의 국립대학을 장학생으로 다니고 교수로 재직 중인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베스트 티처'로 선정됐다는 대목은 그의 부모가 보여준 삶의 진실이, 그것을 보고 자란 그를 사회적으로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됐다는 것을 짐작케 해준다.

진정한 낭만주의자

그는 요즘 영상과 게임에 푹 빠져있다. 불혹이 되는 내년부터는 국문학과 교수에서 공과대학으로 이적한다. 바로 이화여자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부 영상콘텐츠과에서 영상시나리오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a 이인화씨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3D입체애니메이션 '화랑영웅 기파랑전'의 한 장면

이인화씨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3D입체애니메이션 '화랑영웅 기파랑전'의 한 장면 ⓒ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이제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잡을 만한데 새로운 과로 이적한다는 것은 능력 있는(?) 그에게도 모험이다. 그가 이렇게 그의 말대로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는 일을 감행한 것은 급변하는 세상에 맞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기 때문이리라.

"97년 한국의 70%는 전통산업이 지배했지만 2004년의 한국은 첨단산업이 70%를 차지합니다. 이 시대에 맞는 인간다운 품위의 삶을 영위해야지요."

열린 지평 안에서 글로벌세계를 살아가는 또 다른 '이인화'의 완성을 위해 그는 젊은 영화인, 디지털계열 엔지니어, 게임 제작자들과 친밀한 교류를 하고 있다.

"상상력의 최전선은 문학이지요. 하지만 이제 그런 것들이 영상과 게임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5~6년 후 문화의 중심은 게임과 영상이 될 겁니다"

현재 한·일 공동제작 온라인 게임인 '쉔무온라인'의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는 그는 자신이 집필한 영화 '청연(靑燕)'의 내년 개봉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도시인의 삶을 '일을 찾아 살아가는 유목민'으로 표현하는 자신의 말처럼 그는 '이인화'라는 이름으로 시대의 변화에 맞춰 다양성의 삶을 즐기고 그 즐거움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 시대 진정한 낭만주의자다.


약력
- 1966년 대구 출생. 대구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1992년 제1회 작가세계문학상, 1995년 문화체육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1996년 북경 한중우호교류기금의 한중청년학술상 문학부문, 2000년 이상문학상, 2001년 21세기 문학상 우수상 수상.
장편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 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영원한 제국', '인간의 길', '초원의 향기' 전자책 '려인' 등과 공저 '디지털 스토리텔링' 출간.
본명 류철균으로 평론 활동, 편저 '이문열 연구' 등 다수.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ITRC 게임애니메이션센터 참여교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상식을 가지고 사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AD

AD

AD

인기기사

  1. 1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2. 2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3. 3 '명품백 불기소'에 '조국 딸 장학금' 끌어온 검찰 '명품백 불기소'에 '조국 딸 장학금' 끌어온 검찰
  4. 4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5. 5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