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갈비 역사 다시 쓰기

맛 작가의 잘 나가는 맛 집 이야기(10)

등록 2004.12.08 02:21수정 2004.12.08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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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업에서 잔뼈가 굵은 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100명이 식당을 창업하면 일곱 집이 유지하고 세 집이 성공한다고 한다. 결국 나머지 아흔 집이 적자를 보거나 망하는 게 음식 장사다. 그런데도 식당을 열려는 사람들이 많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만만한 게 먹는 장사가 아닌데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손님이 몰려드는 곳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저 손님으로 가서 먹어 볼 때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것들에서 적지 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고추장 양념 삼겹살과 짝갈비라는 돼지고기를 팔고 있는, 비닐로 엉성한 듯 산장 분위기를 낸 어느 맛집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박상균씨는 잘 나가던 광고인이었다. 주로 해외 촬영을 도맡아 하던 그였지만, 어느날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광고란 무엇인가? 남이 만든 상품을 최대한 좋다고 포장해서 소비자들을 설득하는 작업이다. 언제까지 남의 상품만 바라보며 살 것인가라는 생각 끝에 자신이 직접 상품을 만드는 일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박상균씨도 깊은 고민을 하지 않고 식당 창업을 생각했다. 하지만 남들과 달랐던 것은 결심과 동시에 점포를 알아보는 등 구체적인 창업 준비에 들어간 게 아니라 심도 있는 연구, 조사, 개발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먼저 한 것은 일본에서 불경기 10년 동안 살아남은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고급과 초저가는 거의 예외 없이 망했고, 중저가의 식당들이 살아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우리 나라 사람들의 외식 성향을 조사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외식을 생각하면 36%가 돼지고기를 떠올리고 60%가 2만원 이하를 선호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제 기본적인 방향은 섰다. 아이템은 돼지고기, 가격대는 2만원을 넘으면 안 된다는 것.

a 짝갈비

짝갈비 ⓒ 김영주

이제 남은 건 돼지고기에서 또 어떤 것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 박상균씨는 언젠가 광고 촬영차 뉴질랜드에 갔을 때를 떠올렸다. 어느 작은 마을이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작은 바에 모여 고기를 구워 가며 뜯어 먹고 있었다. 박상균씨도 그 기막힌 고기를 얻어서 먹어봤는데 바로 양갈비와 돼지갈비였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숯이 아닌 나무로 고기를 구웠다.

뉴질랜드에서의 이 장면과 어릴 적 어머니가 가끔 해 주시던 고추장으로 양념한 돼지고기에 대한 영상들이 합쳐져 서서히 윤곽이 잡혔다. 돼지갈비, 하지만 수많은 고깃집에서 파는 그런 돼지갈비가 아닌 뉴질랜드 사람들이 뜯어 먹던 바로 그 짝갈비.


조사를 해 보니 돼지갈비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고기들은 대부분 돼지갈비가 아니라 돼지 다리살의 살덩어리들이 많이 포함된 전지살, 후지살이라는 이름의 고기들이었다. 사실 돼지 한마리에서 진정한 돼지갈비는 많은 양이 나오지 않는다.

박상균씨는 생각했다. 제대로 된 돼지갈비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여기 저기 물어 물어 알아본 결과 일단 고추장 양념은 연기가 많이 나고 쉽게 타기 때문에 손님들이 많이 찾지 않았다. 직화를 할 경우 장치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결국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대중화되게 된 것이 바로 삼겹살이었다. 삼겹살! 어느덧 대한민국의 공식 지정 음식이자 서민의 음식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된 돼지고기의 대명사 삼겹살! 전용 술까지 만들어진 위대한 삼겹살이 되기까지는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돼지 한 마리에서 보다 많은 삼겹살이 나오게 하기 위해 갈비뼈를 빼고 삼겹살 부위로 내놓는 등 돼지의 거의 모든 부위는 삼겹살을 위해 희생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동시에 삼겹살의 대중화는 돼지갈비의 몰락을 가져왔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면 먹을 수 있는 '폭립'이 바로 돼지갈비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립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박상균씨는 2001년 11월 1일 가게를 오픈하면서 돼지갈비의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메인 메뉴를 '짝갈비'로 했다. 하지만 뒤틀린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훈제로 갈비를 한 번 굽는 데 자그마치 30분이나 걸렸다. 결국 돼지 갈비의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는 박상균씨의 원대한 포부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운이 다하진 않았는지 짝갈비를 굽기 위해 들여 놓은 참나무를 이용해 구운 고추장 양념 삼겹살이 더 많이 팔리게 됐다. 내가 박상균씨의 고추장 양념 삼겹살을 먹은 것도 바로 이 당시였다.

a 고추장 양념 삼겹살 구이

고추장 양념 삼겹살 구이 ⓒ 김영주

그렇다고 해서 고추장 양념 삼겹살이 남들 하는 식으로 대충 시작한 건 아니었다. 창업하기 전 박상균씨는 하남시에 작은 사무실을 빌려 실험실을 차리고 최상의 양념을 개발했다. 고추장 양념 하면 뻔해 보이지만 박상균씨는 '퓨전'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퓨전은 어떤 무엇과 다른 무엇을 합친다는 뜻이다. 우리 한민족의 5천년 역사에서 봤을 때 고작 200년 정도밖에 안된 고추를 합치는 것은 당시로서는 퓨전이었을 것이다.

양념을 개발할 때 전 세계의 모든 향신료들을 거의 다 써 봤다고 한다. 이렇게도 섞어 보고 저렇게도 섞어 보는 과정에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3, 40명의 친구들을 불러 시식해 가며 양념을 완성시키기까지 5개월이 걸렸다. 실험 초기에 평범한 고추장 양념이었던 것이 실험을 거듭해 가며 발전해 현재는 27가지의 양념이 들어가는 양념이 되었다. 특히 고춧가루는 첫물과 끝물을 합쳐 쓰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a 짝갈비와 고추장양념삼겹

짝갈비와 고추장양념삼겹 ⓒ 김영주

이곳의 고추장 양념 삼겹살은 일단 450도의 참나무 화덕에서 초벌구이를 한다. 그렇다면 고기를 구울 때 숯으로 굽는 것과 참나무로 굽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숯은 연기가 나지 않고 다루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그에 반해 참나무는 연기가 많이 나서 화덕이 필요하지만 불완전연소되는 연기에 포함된 유기물이 고기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 특징이다. 결국 참나무에 굽는 것이 더 맛있다. 또 초벌구이를 하기 때문에 고기를 손님 테이블에 내놓으면 곧바로 먹을 수 있고, 고기 냄새가 옷에 배지 않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또 2일에서 3일 정도 숙성한 고추장 양념을 고기에 바른 다음 다시 2일 정도 숙성한다.

a 셀프 야채바 '그린테이블'

셀프 야채바 '그린테이블' ⓒ 김영주

이곳은 고깃집치고 특이하게 야채를 셀프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 이 방식을 도입하기 전에 셀프로 하는 방식과 서빙을 해 주는 방식 두 가지를 실험했다. 그런데 의외로 야채 소비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인건비 절감의 효과도 있는 셀프 서비스로 결정했고 대부분 손님들이 단골이기 때문에 쉽게 정착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1년 정도의 고전을 거쳐 2003년 여름부터 손님들이 줄을 서게 되었다.

그렇다면 박상균씨가 야심차게 시작했던 진정한 돼지갈비인 '짝갈비'는 영원히 폐기된 것인가? 박상균씨는 속리산 법주사 앞에 경희식당을 하시는 할머니가 쓴 책을 우연히 읽고 거기에서 짝갈비를 부활시킬 수 있는 힌트를 발견했다. 돼지갈비를 굽는 방법도 알게 됐고, 다행히 예전에 비해 돼지갈비를 구하기도 쉬워졌다. 그래서 최근 박상균씨는 짝갈비를 다시 내놓았다고 한다.

박상균씨가 식당을 꿈꾸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제 맛으로만 승부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차별화와 어떤 콘셉트냐가 중요하고 이제 식당은 영화를 만드는 작업처럼 오감을 만족시키는 종합 예술 같은 사업이라는 것이다. 이제 이곳이 왜 하루 평균 매출이 300만원이 되는지 아셨으리라 생각한다. 식당을 창업하고 성공을 바란다면 최소한 박상균씨 정도의 노력과 투자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앞머리에 말한 것처럼 이 집은 비닐로 인테리어를 해 분위기를 내고 있다. 이 또한 의도적이었는데 너무 비싼 식당으로 보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창업을 결심하고 연구와 조사를 통해 방향과 콘셉트를 잡고 끊임 없는 차별화를 시도하고 거기에 돼지갈비 역사 다시 쓰기에 도전하고 있는 박상균씨가 이끌어가는 맛 집의 이름은 <돈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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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관심이 많습니다. 진심이 담긴 글쓰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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