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국밥 한 그릇에 향수를 달래다

누정과 죽물의 고장 담양을 찾아서

등록 2004.12.08 23:17수정 2004.12.0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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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땅 담양을 찾아가는 길. 초겨울 스산한 찬바람에 아직 채 떨구지 못한 잎새들을 부여안은 채 길 옆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양팔 가득, 찾는 이의 마음을 반갑게 맞이한다.

담양 5일장


담양은 2일과 7일 양강천변 일원에 5일장이 들어선다. 여느 5일장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의 재래시장은 언제나 고향 어머니의 포근한 품속처럼 맛깔스런 모습들이 묻어난다. 시골 텃밭에서 소담스럽게 뜯어온 갓, 보리, 시금치, 배추….

계절이 김장철이어서 일까? 싱싱한 각종 김장용 야채와, 바다내음 물신 풍기는 싱싱한 자연산 생굴과 각종 젓갈류를 취급하는 어물전이 유난히 북적거린다.

a 양강천변 담양5일장 풍경

양강천변 담양5일장 풍경 ⓒ 김학수

"옛날 같았음 김장철에 몰려든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는디…. 요새는 고놈의 김치냉장곤가 뭔가 허는 놈 땜시 통 김장들을 안흔당게!!"

자연산 굴(석화) 1그릇(1kg 정도)을 만원에 팔면서 할머니가 푸념하신다.

하지만 이곳 시골장터에서도 시장경제의 엄격한 규율이 정해진다. 멀리 고흥군 포두면 송산리에서 오늘(2일) 처음으로 재래시장에 장사를 나왔다는 한 할머니는 초겨울 찬바람이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한 자리에서 40~50년씩 터줏대감 노릇으로 장사를 해온 시장 상인들이 경쟁자인 초보 할머니에게 섣불리 자리를 내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a 한 사람이 서서 장사할 자리가 못내 아쉽기만 한데...

한 사람이 서서 장사할 자리가 못내 아쉽기만 한데... ⓒ 김학수

이리저리 자리에 밀려나 어찌할 줄 몰라하는 할머니와는 대조적으로 오랜 세월동안 생활의 터전을 다져온 일부 시장상인들은 모닥불에 피어나는 온기 속에 정담을 나누며 다소 여유로운 모습들이다.

각박함과 여유로움의 차이는 어느 정도 구분이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누구나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있고 형제도 될 수 있는 현실을 외면한 채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야 하는 안타까운 생존경쟁의 섭리가 불황에 허덕이는 우리의 경제를 더욱 차갑게 부채질하는 것은 아닌지….


기자의 입담으로 야채전을 벌린 할머니의 한켠에 초보 할머니의 자리를 마련해 드리고 나서야 아침의 시장함을 달래기 위해 국밥집에 들어섰다.

a 시장 상인들과 기자의 대화 모습.

시장 상인들과 기자의 대화 모습. ⓒ 김학수

"어째? 엇 지녁에 주샌헌티 두둘겨 맞았소? 고놈을 달래는 딘 요놈이 최고제…."

따끈한 국밥을 주문한 기자에게 툭! 할머니가 한마디 던진다.

시골장터의 국밥집은 언제나 정겨워서 좋다. 무턱대고 아무한테나 욕부터 해대는 할머니, 손자 같다며 머리고기 한 주먹을 살며시 덤으로 주시는 할머니, 어떤 분은 마시던 막걸리잔을 나에게 한잔 가득 건네시기도 한다. 그래서 고향의 지나온 향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5일장을 즐겨 찾곤 하는가 보다.

a 재래시장에서 맛볼 수 있는 국밥.

재래시장에서 맛볼 수 있는 국밥. ⓒ 김학수

예전 담양장은 죽물이 넘쳐나던 풍성한 죽물시장이었다. 지금이야 생활도구들이 각종 플라스틱이나 값싼 수입품에 밀려 제 설자리를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고는 하지만 오래된 불황에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야만 하는 죽물시장의 현실이 씁쓸한 아쉬움을 안겨주었다.

a 문을 닫은 죽물전에 매달린 철지난 죽제품

문을 닫은 죽물전에 매달린 철지난 죽제품 ⓒ 김학수

누정(樓亭)을 찾아 떠나는 길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16세기 중종 연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이름난 누각과 정자의 숫자가 885개나 기록되어 있고, 그 절반 정도가 영호남에 산재하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선비의 고장 담양이 가사문학의 산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담양의 누정(樓亭)으로는 면앙정(免仰亭), 송강정(松江亭), 명옥헌(鳴玉軒), 소쇄원(瀟灑園), 환벽당(環碧堂), 취가정(醉歌亭), 식영정(息影亭), 송강 정철의 별서(別墅) 등이 있다.

그 중에서 담양군 남면 지곡리(지석리) 123번지에 위치한 지정문화재 사적 제304호인 '소쇄원'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풍광을 지닌 정원으로써 이미 정평이 나있고, 관광객들의 발길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소쇄원의 정원 설계기법은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원형과 순리에 맞게 생태계를 잘 유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고 자연의 이치를 크게 배려한 소쇄원의 조영자 양산보 선생의 뜻과 정신이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크나큰 교훈을 남기고 있었다.

소쇄원의 유래와 가치의 평가는 너무나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익히 우리에게 알려지고 있다.

정암 조광조가 대사헌으로 있을 때 현량과를 실시하였고, 이때 자기의 신진사류 문하생을 대거 등용시킨 일이 있었는데 17세인 양산보도 이때 급제를 하게 되나, 그해 기묘사화로 인해 조광조가 능주로 유배되자 양산보도 이곳으로 낙향하여 돌아왔고, 그해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죽게되자 양산보는 이곳에서 55세로 생을 마칠 때까지 은인자중 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 입구가 항상 열려 있는 소쇄원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만나는 정자가 초가지붕으로 만든 대봉대(待鳳臺). 이곳에 앉으면 자연의 조화를 이룬 소쇄원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담을 휘돌아 오공문을 들어서니 참으로 기이하게 냇가에 주춧돌을 세워 만든 자연을 닮은 돌다리 담장이 눈에 들어온다.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a 오공문옆 돌다리 담장의 멋스러움

오공문옆 돌다리 담장의 멋스러움 ⓒ 김학수

화단을 2단으로 쌓아 만들었다는 매대(梅臺)의 윗층 돌계단을 지나 집주인의 서재와 사랑채인 제월당에 오른다.

제월당을 내려오면 반드시 머리를 숙이고 예를 갖춰 낮은 문을 통과하면 빛과 바람의 집으로 불리우는 광풍각(光風閣)이 눈에 나타난다. 두 사람이 겨우 누울만한 작은방은 겨울철 난방을 고려한 것이고, 방 주위로 사방에 둘려진 마루는 여름날을 위한 배려라 하니 가히 감탄사가 절로 나와, 기자도 마루에 한번 누워본다.

a 광풍각(좌)과 제월당(우)의 단아한 모습

광풍각(좌)과 제월당(우)의 단아한 모습 ⓒ 김학수

졸졸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대나무의 서걱거리는 소리가 어우러져 금방이라도 시 한 수가 읊어질 듯싶다.

광풍각을 돌아서 다시 매대 아래 계단을 지나 다시 오공문을 나서니 심신에 쌓였던 피로와 번뇌가 말끔하게 사라진 듯싶다.

이처럼 소쇄원이 오랜 세월동안 원림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이곳을 절대로 남에게 팔지 말 것이며, 돌 하나, 풀 한 포기, 원림 구석구석 내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반드시 상함이 없게 하라는 양산보 선생의 당부를 받들어 15대가 지나도록 그 명맥을 이어온 제주 양씨 가문의 헌신적인 노력이었으리라.

a 14대손 양원로씨의 부인

14대손 양원로씨의 부인 ⓒ 김학수

여행은 떠날 때의 기대와 설렘처럼 돌아오는 길에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내가 가벼운 마음으로 찾았던 담양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추억의 소중한 한 페이지로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좋은 시작이었음에 기쁜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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