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쿠! 정성이 너무 무거워"

객지생활하는 아들을 생각하며

등록 2004.12.08 18:15수정 2004.12.0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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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고 좋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삼년이 지났습니다. 원룸을 구하러 다니던 골목이 생각납니다. 한번 갔던 곳을 다시 찾아 가려해도 잘 못 찾고 헤매곤 했지요.


원룸 안에서도 마찬가지라 마치 미로찾기 게임을 하는 것처럼 방을 찾아 들어가야 했습니다. 청주에서 세 식구가 쓰기에 그저 넓다고 생각한 우리 방은 서울의 원룸에 비하면 '너무 크다'라고 표현을 해야 마땅합니다. 침대와 책상 작은 냉장고가 간신히 들어앉은 방에 아들을 두고 오는 발걸음이 무거웠죠. 방에 창문도 없던데….

청주로 내려와서 일년 전부터 서울에서 하숙을 하고 있는 딸을 둔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창문이 없는 방이 상상이 안 간다며 자기도 당장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딸의 하숙을 옮겼고, 나는 창문이 있는 원룸을 구했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곧바로 이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학교와 집만 오가기 바빴던 아들이 끼니를 스스로 해결하며 대학생활을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차라리 하숙을 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혼자 지내는 것이 소원이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랍니다. 이것저것 예쁘고 실용적인 살림살이를 사느라 온종일 발이 아프도록 시장을 돌아 다녔습니다. 살림을 사주며 이제 우리 식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학교 앞 원룸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라 조그마한 반찬가게도 많고 전기밥솥에 밥만 하면 굶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집에서 맛있는 반찬을 하거나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얼른 먹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제가 아는 분은 딸 셋에 막내로 아들을 두었는데 타지에 보내놓고 어찌나 아들이 보고 싶은지 새벽버스를 타고 가서 된장찌개와 겉절이를 해서 차려놓고 되짚어 오셨다고 합니다. 저는 직장생활을 하니 그럴 수도 없구요.

마음만 서울에 가 있습니다. 아침은 먹었는지 감기는 걸리지 않았는지 거기 날씨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그렇다고 이러쿵저러쿵 물어보기도 그렇고.


아들은 제 나름대로 대학생활이 바쁜가 봅니다. 일주일에 한번 오더니 한 달에 한두 번 보기가 힘드네요. 어제밤에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대학생들이 아주 긴 계란말이를 먹는 장면을 보게 되었어요.

갑자기 우리 아들에게 계란말이를 먹이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여러 개의 계란말이도 하고, 잔멸치도 볶고, 찌개도 끓여서 얼리고, 마른반찬 몇 가지를 더 하면서 맛있게 먹을 아들을 생각하니 즐겁습니다. 밤 8시가 넘어 시작해서 11시가 넘어서까지 밑반찬을 만들었습니다. 피곤해서인지 자꾸 하품이 나오는데 해줄 건 많고 졸음이 원망스럽습니다. 차갑게 식힌 반찬들을 새지 않도록 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넣습니다.

다음날 택배로 보내면 하루는 족히 걸리니 아무리 요즈음 날이 춥다고는 하나 상할까 염려되어 함께 넣어 보내려고 생수도 한통 얼립니다. 아침에 출근 준비하랴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서 포장하랴 상당히 분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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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우스꽝스럽지만, 잘 가거라!" ⓒ 허선행

반찬이 든 종이상자를 테이프로 꽁꽁 동여매니 우스꽝스런 모습이 되었습니다. 원룸 주소를 붙이기 전에 택배로 보낼 짐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잘 가거라.'

부피는 크지 않은데 꽤 무게가 나갑니다. 이렇게 무거운 걸 몇 천원 받고 가져다 주니 택배회사가 고맙다며 남편이 번쩍 짐을 듭니다. "아이쿠, 정성이 너무 무거워." 남편이 나를 보며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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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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