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광
김미화. 그는 참 예쁘다. 내가 그를 처음 대면한 곳은 한 조찬모임에서였다. 순악질 여사의 검은 일자 눈썹으로만 그를 기억하고 있던 나에게, 화장기 없는 그의 얼굴은 약간 과장되게 말해서 '충격'이었다.
그 다음부터 난 TV 브라운관을 통해 '약간 덜 예쁘게'(?) 비치는 그의 외모가 마치 내 일인 양 안타깝게 여겨져, 만나는 사람마다 그가 예쁘다고, 그의 마음씨보다 얼굴이 훨씬 예쁘다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인터뷰 하는 그 날도 그는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로, 평소 그가 예쁘다고 믿어온 내 '신념'을 완벽하게 충족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자기 얼굴이 예쁘다며 호들갑 떠는 내게 그는 조금도 민망해 하지 않고, 다소 분석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실물이 좀 낫지요. (웃음). 코미디 하다 보면 서민적으로 보이려고 인상도 더 찡그리고 입도 크게 벌리고 그러거든요. 요새 왜 예뻐 보이냐면, 항상 웃어야 하는 MC를 많이 하기 때문인 거 같아요. 20대 때 이미 40대 아줌마 역할을 했는데, 정작 40대가 되니까 오히려 30대처럼 보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그는 무작정 코미디가 좋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교복 입은 채로 오디션을 찾아다녔다. 빨리 개그맨이 되고 싶었고, 성공하고픈 마음에 대학은 관심 밖이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왜 뒤늦게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된 것일까?
"어린시절 아버지는 아파서 누워 계셨고, 엄마는 보따리 장사하러 나가시곤 했는데, 그 때마다 동네 분들이 참 따뜻하게 대해 주셨거든요. 나중에 크면 어려운 분들에게 봉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한 약속이었지만 지키고 싶더라고요. 어렸지만 참 기특한 생각인 거 같아요. 코미디언 되고 성공했을 때 자꾸 그런 쪽으로 마음을 쏟으니까 연결고리가 생기고, 점점 더 관심도 많아지고 전공까지 하게 된 거지요."
- 처음 사회복지시설 후원을 시작한 게 쓰리랑 부부 시절 '사랑의 삼각끈 운동'(무의탁노인과 소년소녀가장을 한 가족으로 묶어 주는 운동)부터라고 알고 있는데, 지금도 계속하고 계신가요?
"그럼요. 그 때 한 300쌍 정도 맺어진 거 같은데, 나중에 보니 저만 계속하고 있더라고요. 가끔 집에도 초청하고 그래요. 지난 주에도 함께 식사했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 여섯 살이던 아이가 벌써 고등학생이 됐어요. 우리 아이들도 '혜미 언니' 하면 다 알아요."
"끈끈한 유대감이 사회운동의 끈 되죠"
아마 그는 녹색연합, 여성재단과 같은 공익단체 홍보대사를 가장 많이 맡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또 뚜렷한 직책 없이도 이라크파병반대, 호주제 폐지와 같은 만만치 않은 주제를 다루는 집회장에 가장 빈번히 얼굴을 내민 사람일 것이다. 참여연대도 북한어린이돕기모금 캠페인을 비롯해서 수차례 그의 이름을 상품으로 내건 전력이 있다.
- 부담스럽지 않은가요? 사회복지 쪽 자선모금활동과 같은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활동 외에도 파병이나 SOFA개정과 같은 좀 '센' 쟁점에도 태도를 분명히 밝히고 계시잖아요.
"고운 시선만 있는 건 아니지요. 솔직히 가만히 있으면 인기가 올라가는데, 그렇지 못해서 괜한 말을 듣는 경우들도 있어요. 정치하려고 한다는 오해도 받고요. 창작예술인들과 달리 저 같은 대중예술인들은 대중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니까요."
- 그럼 어떻게 하세요?
"제 본심을 모르는 사람 이해시키려고 해봤자 별 소용도 없고…. 그냥 절 믿어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걸 항상 생각하며 버텨요."
- 시민단체에서 문화예술인(난 김미화씨의 사회활동을 알고부터 가능하면 연예인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했다)들을 많이 결합시키려고 노력하는데,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사회복지 공부를 해보니까 연예인들과 함께 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더군요. 예를 들어 바자회 같은 경우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죠. 결국엔 나도 이 방법으로 호출당한 거네 하고 생각하다가 한참 웃은 적이 있어요. 한 가지 아쉬운 건 연예인들과 한 번 맺은 인연을 지속하는 게 돈보다 더 귀하다는 걸 시민단체들이 잘 모르는 거 같아요. 행사 후 안부메일, 엽서 한 장에 얼마나 감동하는 줄 모르시죠? 단체 이름 대며 무조건 와달라는 건 안 통하거든요. 심심할 때 안부전화하고, 꾸준히 이메일도 보내고, 그러면서 의무감 같은 걸 부여하면 끈끈한 유대감이 생기면서 지속적으로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세상을 향해 도전하다
그는 현재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중 청취율 1위, 전체 프로그램 청취율 3위다. 1, 2위는 모두 오락프로그램이다. 이쯤 되면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데뷔는 그로서도 큰 도전이었다고 한다.
- 제가 처음 라디오를 들었을 때는 다소 안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퍽이나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진행하시던데요. 방송 결과도 참 좋고요.
"사람들이 편하대요. 그 시간대에 시사 방송에 주파수를 맞추고 다니는 것은 희한한 일이래요. 솔직히 걱정했거든요. 코미디언이 한다니까 반짝 기대를 갖다가 곧 실망할까 봐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인생을 멋있게 완성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사실을 공개한 것 때문에, 방송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싶어 무척 마음이 쓰였어요(대중들에게 환한 웃음을 선사했던 그녀가 정작 18년 동안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사회에 알리고 이혼소송을 낸 것은 팬들은 물론 그 자신에게도 큰 충격이자 상처였을 것이다). 다행히 청취자들이 크게 개의치 않으셔서 너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