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π)의 분노와 '정교 일치'

숨쉬는 수학이야기(4)

등록 2004.12.13 17:22수정 2004.12.1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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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역사에서 제도적 권력은 수학과 자유정신의 살인자들이었다.

파이(π)의 역사는 이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파이(π)는 원의 지름과 둘레의 비율 즉 원주율을 나타내는 수학적 기호이다. 원은 어떤 반지름의 원을 그려도 언제나 같은 모양이다. 따라서 원의 둘레의 길이와 지름의 길이와의 비는 원의 크기에 관계 없이 모두 같게 되는데, 이 비의 값을 원주율 π로 표시한다.


기원전 2000년경 바빌로니아 인들은 π=3.125 정도의 값으로 계산하였다. 가장 오래된 수학책으로 알려진 기원전 1600년경 이집트의 수학자 아메스가 지은 파피루스 저작에는 원주율이 π=3.16049…로 계산되어 있다.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원에 내접, 외접하는 정육각형에서 시작하여 정구십육각형까지를 작은 쪽과 큰 쪽으로 나누어 계산하여 223/71(=3.1408…) < π < 22/7(=3.1428…)이라는 부등식을 얻었다.

인도에서는 기원 후 380년경 출판된 '싯단타'라는 책에서 π=1427/1250=3.1416을 사용하여 실제값에 근접하는 값을 사용하였다. 기원 5세기 무렵 중국에서도 수학자 조충지와 그의 아들 조훤지는 π가 3.1415926보다 크고 3.1415927보다 작다는 값을 계산하였다.

기원 7세기 무렵 인도의 힌두 수학자 브라마굽타(Brahmagupta 598-660 A.D)는 π=10의 제곱근=3.162277로 계산하였다.

a 원의 내적 외적 다각형들

원의 내적 외적 다각형들


과학을 박해한 기독교 근본주의


이들은 현재의 컴퓨터를 이용한 정밀한 계산과도 크게 오차가 나지 않으며 누구나 실제 측정으로도 원주율의 값은 근사치에 가깝게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인류의 과거 경험적 실용적 지식들은 서구 중세기간 동안 기독교의 성경 근본주의에 의해 철저히 무시된다.

구약성서의 열왕기 상권의 7장 23절은 축적된 그 전까지의 합리와 경험의 지식 위에 군림하는 허위와 위선으로 유지되는 권력이었다. 열왕기에는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큐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큐빗이요, 주위는 삼십 큐빗 줄을 두를 만하며"라고 기록되어 있다(1큐빗은 50cm 전후). 이를 통해 π=3을 구하였다.

성경을 신의 말씀이 인간에 의해 자동 기술된 무오류의 경전으로 믿는 이 중세 암흑시대의 지배 권력은 그 때까지 인류가 축적한 자연과학과 수학적 발견들을 성경의 말씀에 구겨 넣게 된다.


이 시대는 인류 문명의 암흑기이며 과학이 종교 앞에 굴종하는 시기였다. 누구나 성경에 씌어 있는 값을 수정하려 하면 고문과 화형을 당하여야 했다. 이제 예수의 복음이 전파된 이후에는 수학과 과학의 탐구는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 광신자들이 과학서적과 모든 도서관을 불태워 버렸다.

기독교인인 로마황제 발렌스는 373년 과학 및 수학서적을 비롯한 비기독교인의 모든 서적을 불태워 버렸다. 그 시대 문화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는 철저히 궤멸되었다. 391년 광신적인 주교 테오필루스는 많은 도서가 소장된 세라피스 사원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조각 조각난 사체를 불태워 버렸던 것이다.

1096년 십자군은 그 시대 이슬람 과학과 문화 최고의 도시 트리폴리를 점령하였다. 이들은 이교도를 살해하는 축제를 벌였고 무슬림들의 책 10만권 이상을 불태워 버렸다. 1204년 4차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점령하여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살육을 자행하였다. 그때까지 남아 있던 고전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스페인의 서 톨레도의 대주교였던 프란치스코 지메네스(Francisco Jimenes 1436 -1517)는 2500명 이상을 화형에 처하거나 고문으로 죽였으며 스페인의 그라나다에서는 이교도들의 책 2만4000여권을 불태워 버렸다.

최초의 스페인 종교재판소장이었던 토르케마다(1420-1498)는 스페인 수학자 발메스가 4차 방정식의 해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것을 이유로 그에게 화형을 선고했다. 그와 같은 방정식의 해는 인간의 이해로써 접근할 수 없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이유였다. 이 시기 스페인에서 공식 기록된 1478년부터 종교 재판이 금지된 1808년 사이에 32만3362명이 화형에 처해졌으며 고문 도중 사망한 사람은 아예 그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다.

이들 광신자들의 파괴와 살육은 그들의 정복지에서 멈출 리가 없었다. 이들은 그 시대 독자적으로 고도의 문명을 유지하던 마야문명을 철저히 파괴하고 주민을 살육하였다. 1560년 정복지에서 유카탄 주교의 명에 의해 마야 원주민들의 모든 기록 문화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a 브루노

브루노

1600년에는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는 세계의 중심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며, 다른 한편 우리와 닮은 수많은 '태양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다 체포되어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7년간 감옥에 갇혀 있다가 결국 1600년 2월에 화형에 처해졌다.

브루너와는 대조적으로 1633년 저명한 수학자이며 과학자인 벌써 70세의 노인이 된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는 네덜란드에서 발명된 망원경을 개량해서 그 배율을 높여 천체 관측을 하게 되고, 이 관측으로 달의 표면에 산과 계곡이 있다는 것, 금성이 달처럼 차고 이지러진다는 것, 태양에 흑점이 있어 태양면에서 운동하고 있다는 것, 희미한 은하수가 실은 많은 별들의 집단이라는 것, 목성 주의에 네 개의 위성이 돌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뒤 이들을 통하여 지동설을 증명하였다.

갈릴레이는 이를 발표하였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종교재판의 고문실에 갇혀 있는 동안 전향서를 쓰게 된다. 위대한 수학자이며 과학자인 갈릴레이의 변절은 후세에까지 그 이름을 치욕스럽게 하고 있다.

그는 이 전향서 덕분에 화형에서 감형되어 로마의 지하 감옥에 종신동안 수감되는 형을 받았다. 후에 감형되었고 1942년 사망하였다. 그의 사망 후에도 교회는 그의 유고를 파괴하였고 그에 대한 어떤 추념도 금지시켰다.

지금까지 중세시대의 기독교에 의한 핍박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이 시대에는 수학자들의 연구에 어떠한 진전도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르네상스시대까지 중세유럽의 수학은 2000여년 전 바빌로니아 시대 수준에 미치지 못한 반동의 시대였던 것이다.

되살아나는 '정교일치' 음모

역사의 경험은 반복되는 듯하다. 세속을 자신의 종교로 지배하려는 의도는 우리 현실에서 '성시화'란 이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제 모든 인간적 가치와 축적된 인류의 노력들을 단죄하던 중세시대의 사제들처럼 성서의 무오류성을 믿는 이 땅의 기독교 원리 복음주의자들이 이 땅을 신성한 신이 지배하는 중세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올 봄 이명박 서울시장은 서울을 하느님께 봉헌한다더니 이 시장의 고향인 포항의 정장식 시장은 기독교 신자 기관장들의 홀리클럽에 가입하고 세계 성시화 명예준비위원장 역할 및 시 재정의 1%를 성시화 지원에 사용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이외에도 이런 사례들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서 부패한 교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중세의 교회법에 비견되는 독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 왔던 국가보안법을 사수하겠다고 기독교 원리 복음주의자들이 공공연히 나서고 있다. 이런 행위는 2004년 10월 4일 한기총을 중심으로 한 '국보법 수호 국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종교전쟁과 중세암흑시대를 통해 수많은 살인과 사회적 갈등을 경험한 인류의 지혜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법률제도를 마련하였다. 그것이 바로 정교 분리의 원칙이다. 종교는 그들의 신의 영역을 맡고, 국가는 세속의 일을 책임지는 정교분리 원칙이 그것이다.

우리의 헌법에도 이를 반영하여 헌법 제 20조에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의 원칙과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치단체장들의 헌법 위반과 직권 남용에 대해 세속을 위한 국가권력과 지역민들은 새로운 암흑시대를 열어가려는 이 음흉한 음모를 저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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