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76회

등록 2004.12.14 07:37수정 2004.12.1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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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세 명의 흑의인이 허공에 가랑잎처럼 날아가고, 두 명의 흑의인이 바닥에 머리를 박고 피분수를 뿜었다. 세 명의 흑의인은 광도의 도에 절명한 것이고 두 명은 담천의의 수도에 거궐혈을 격타당하며 숨을 쉬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그것도 잠시 광도와 담천의의 신형은 그대로 구양휘의 앞에 서있는 묵영을 향해 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기이한 것은 구양휘였다. 일행이 본대로 구양휘의 심장이 꿰뚫렸다면 피분수를 뿜던지, 아니면 신형이 흔들리던지 해야 했다.


허나 뜻밖에도 구양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바로 앞에 있는 묵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황하는 쪽은 묵영의 사내였다. 단 한번의 실수도 하지 않은 자신이었다. 더구나 검자루의 감촉은 분명 살을 헤집고 들어가는 느낌이어서 구양휘의 가슴을 관통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뭔가 잘못되었다!)

묵영의 사내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살수에게 있어 실패란 곧 죽음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다. 그는 검을 빼내며 몸을 뒤로 날리려 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검은 빠지지 않고, 그 보다 먼저 날아 온 담천의의 주먹이 그의 턱에 꽂혔다.

퍽----와지직---!

턱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지독한 통증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그 사내의 눈에는 자신의 검이 뚫고 들어간 곳을 보며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살수가 실패했음을 알았다. 자신의 검이 구양휘의 왼쪽 겨드랑이에 끼어 있음을 이제야 안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에 불이 지지는 듯한 화끈함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살수라면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정확한 부위를 노렸어야지.”

구양휘의 충고 아닌 충고를 들으며 묵영의 사내는 숨을 더 이상 쉴 수 없었다. 살수에게 있어 한번의 실패는 곧 죽음이라는 철칙을 알고 있던 살수다운 죽음이었다. 광도가 날이 듬성듬성 빠진 볼품없는 기형도를 사내의 몸에서 빼내자 사내의 심장에서 피가 뿜어지며 뒤로 넘어갔다.


헌데 기이한 것은 구양휘의 태도였다. 자신을 도와 준 담천의와 광도를 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야… 한참 재미있으려는데 왜 끼어들어?”

그 말에 담천의와 광도는 물론 나머지 일행도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유독 팽악만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광도가 도를 도집에 넣으며 투덜거렸다.

“재미는 형님만 보는 거요? 나도 재미 좀 보려했소.”

이렇게 나오니 구양휘도 더 이상 뭐라고 하기 어렵다. 광도와 담천의가 나선 이유를 모를 그가 아니다. 믿는 마음이야 있었겠지만 분명 위급한 순간이었고, 그들이 보기에는 자신이 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헌데 그 순간,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던 담천의가 빠르게 신형을 날렸다.

“그냥 가면 안되지…!”

추를 던지던 자들과 담천의가 가진 초혼령을 노리며 맨 처음 나타나 구양휘에게 이검을 맞고 나무에 기대어 있던 자가 빠르게 대청을 타고 내원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미 상황이 틀렸음을 안 그들이 빠르게 몸을 빼내는 것이다.

그것을 본 담천의는 처음 나타난 사내를 쫓았다. 나타난 흑영의 무리 중 구양휘를 공격했던 자와 지금 부상을 입고 쫓기는 자가 우두머리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들이 자신들을 노린 것은 초혼령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초혼령과 관계가 있음을 의미했다. 최소한 이번 양만화의 전 집안을 몰살시켰던 초혼령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었다. 담천의는 자신이 가진 초혼령의 내막을 알고 싶었다.

“허… 이런….”

담천의의 돌발적인 행동에 구양휘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맞닥뜨렸던 자들은 분명 살수다. 그것도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연수합격을 익힌 자들이다. 저들의 일행이 더 이상 없다고 보장할 수 없었다. 아니 분명 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담천의의 무위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더구나 구양휘는 담천의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흑의인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초혼령의 의문을 풀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쉽사리 흑의인을 죽이거나 도중에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광도는 일행과 함께 천천히 쫓아 오던지, 아니면 장안루(長安樓)에 가 있도록 해.”

구양휘는 말과 함께 담천의가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광도를 이곳에 남도록 한 것은
자신들을 기습했던 자들이 이곳에 남아 있을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팽악이 광도의 도에 심장을 관통당하여 죽은 인물을 향해 다가갔다. 특수한 천으로 만든 묵빛 무복을 입은 깡마른 사십대 후반의 사내였다. 피부에 약물을 발랐는지 검은 빛을 띠고 있어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온통 흑색이었다.

하지만 온통 검은 빛을 띤 그의 겉모습과는 달리 그의 피는 붉었다. 턱뼈가 으스러져 얼굴이 일그러진 것은 담천의의 작품이다. 하지만 그의 심장을 꿰뚫어 숨을 끊은 것은 광도의 몫이다.

“역시 천둔영(天遁影)의 비기(秘技)를 익힌 자군요…. 천둔영을 익히면 피부가 검게 변하게 되지요.”

다가 온 남궁산산이 한 말이었다. 남궁산산은 죽어 있는 일곱 명의 흑의인들도 둘러보았다. 그들은 속살과 얼굴의 피부색이 달라 외부에 노출되는 곳에 약물을 발랐을 뿐으로 천둔영을 익힌 자들은 아니었다.

“이들이 무엇 때문에 담소협의 초혼령을 노린 걸까요?”

남궁산산이 일행의 궁금증을 말로 표현했다. 모두가 느끼고 있는 의혹이었다. 팽악은 죽은 시신을 뒤지고 있었다.

“어디에 몸담고 있는 자인지 알면 쉽겠지. 하지만 전혀 없는걸...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소지품이라곤 건량 밖에 없네.”

이미 사내의 시신을 대충 뒤진 팽악의 대답이었다. 하다못해 암기라든지 병기라도 있으면 단서를 잡을 수 있지만 그것마저도 전혀 없는 것이다.

“이 자 역시 이번 초혼령의 행사와 관련이 있는 놈인가?”

팽악의 말에 갈인규가 걱정스러운 듯 말을 받았다.

“빨리 따라가 봐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소. 구양대협께서 뒤따라갔으니 별 일은 없겠지만 이런 인물들이라면 쉽지 않을 것 같소.”

혜청 역시 눈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두 사람을 찾기 어렵고, 뒤따라가기 어렵다. 하지만 남궁산산은 오히려 태연했다.

“기이한 일이군요. 담소협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초혼령이 초혼령인지 모르고 있었어요. 어떻게 담소협이 초혼령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너무 궁금한 일이에요. 여하튼 구양오라버니가 어디에 있던 우리는 따라갈 수 있으니 너무 걱정들 마세요.”

그녀는 말과 함께 소매에서 주먹보다 조금 큰 듯한 정도의 조그만 고양이를 꺼내들었다. 하얀 털로 덮혀 있는 그것은 보통 고양이보다 훨씬 작아 마치 쥐처럼 보였다.

“천산(天山)에 산다는 영물 천산설묘(天山雪猫)로군.”

갈인규는 신기한 듯 보며 감탄을 했다. 자신도 듣기만 했지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천산의 고봉에서만 산다는 천산설묘. 눈위를 발자국도 남기지 않고 다니며, 늑대나 곰도 함부로 건들지 못한다는 전설 속의 설묘를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번 일로 담소협이 귀찮아질 것 같군요. 더구나 무림의 이목이 지금 장안으로 쏠리고 있는 마당에 담소협이 초혼령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퍼질테니….”

덧붙이는 남궁산산의 지적으로 일행은 퍼뜩 이번 사태가 가져올 파장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초혼령은 마물(魔物)이다. 정의(正義)를 수호하기 위해서 집행하는 것이라 해도 누구에게나 공포감을 심어 주었던 물건이다. 갑자기 나타난 초혼령은 그것의 진위(眞僞)를 떠나 많은 오해를 사기 충분하다.

“여기에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군.”

주위를 훑어보며 광도가 일행을 보며 말했다. 이곳저곳에 숨어서 지켜보는 눈이 많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중에는 죽은 흑의인과 동료도 있을 것이고, 자신들과 같이 초혼령의 행사를 보고, 알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초혼령의 사자 중 일부도 분명 자신들을 보고 있을 것이다. 이곳에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다. 아마 초혼령을 담천의가 가지고 있다는 소문은 며칠 내로 전 중원에 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를 입수한 자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허실을 파악하고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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