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주소가 찍혀 있는 봉투를 받다

등록 2004.12.17 22:52수정 2004.12.1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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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기쁜 오후였습니다. 오후의 적막을 깨뜨리면서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이 시간에? 뭘까? 전도하는 사람? 신문 구독하라는 것?' 찰나적으로 많은 예측이 스쳤습니다.


현관문을 열었더니 우편배달부께서 누런 편지봉투를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서 주소가 찍혀있는 봉투를…. 나도 모르게 '무슨 죄를 저질렀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아득했습니다. 아, 그런데….

정확히 12월 6일, 작은 딸이 지갑을 잃었습니다. 수공예인 퀼트 지갑으로 온갖 잡동사니가 들어있었나 봅니다. 외출해 있는 내게 울먹이며 딸이 전화했습니다. 지갑이 없어졌다고. 거기 뭐가 들었냐, 물으니 우선 인사동에서 산 지갑이 아깝다는 것이었고, 교통카드도 아깝고…. 줄줄이 나열하는데 온통 아까운 것 천지였습니다.

"그럼 그 지갑 인사동 또 가서 사줄게. 또? 교통카드? 사줄게."

그래도 아이는 전날 왔던 길을 되짚어 가보자고 졸라댔습니다. 중학교 2학년짜리가 저리 철딱서니 없을까 한심했습니다.

지갑을 주운 사람에게는 하찮은 습득물에 지나지 않았을 텐데 정확히 열 하루만에 애지중지하던 지갑이 우리 집에 돌아온 것입니다. 단지 경찰서 봉투라는 것 때문에 겁부터 집어먹고는 받아두기만 했는데, 화들짝 놀라 감사 인사를 전하지 못한 것이 오후 내내 맘에 걸립니다.


전 지갑도 가끔 잃어버리고, 때로는 소매치기도 당했습니다만 제 손으로 지갑을 거리에서 주운 일은 없습니다. 어쩌다 잃어버린 돈이나 지갑이 주인 손에 들어왔다는 미담을 읽을 때면 그저 남의 일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습니다. 이런 횡재가 내게도 생기다니 정말 기쁜 날입니다. 그동안에 들었던 인간에 대한 불신이 죄스럽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 손에 봉투째 건넸더니,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서 난리였습니다. 저녁에 남편한테 자랑하면서 딸애한테 그 봉투 좀 가져와보라 했더니 평생 간작할 거라면서 경찰서 주소가 찍힌 봉투를 가져왔습니다.


"네가 그리 소중한 지갑이 네 손에 들어왔으면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야지."

그렇잖아도 그러려던 참이라 했습니다. 우리 딸이 감사인사를 전하든 말든 정말 저는 저대로 고맙습니다. 주운 지갑을 돌려주려고 애쓴 어느 분, 그리고 이 지갑이 본인 손에 들어오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해준 군포경찰서 담당자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도 지갑을 주우면 악착같이 주인을 찾아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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