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뭘 먹지?"

<내 추억속의 그 이름 212> 감자볶음

등록 2004.12.20 13:35수정 2004.12.2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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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만든 감자볶음
내가 직접 만든 감자볶음이종찬
"두 딸! 오늘 저녁은 뭘 먹지?"
"음~ 볶음밥!"
"빛나는?"
"아빠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감자볶음 해 먹자. 응?"
"푸름이 생각은 어때?"
"그럼 내일 저녁에는 볶음밥 해 줘야 돼."



우리집 일주일 저녁 반찬은 거의 정해져 있다. 가끔 두 딸의 그날 입맛에 따라 순서가 뒤바뀔 때도 있지만. 월요일은 감자볶음, 화요일은 계란찜, 수요일은 고등어구이 혹은 갈치구이, 목요일은 볶음밥, 금요일은 된장찌개 혹은 청국장이다. 그리고 토요일은 내가 여행을 떠나고 저녁에는 모임도 있는 날이어서 두 딸은 외할머니댁에 가서 식사를 한다.

일요일은 조금 다르다. 일요일은 두 딸의 식사 세 끼를 내가 꼬박 챙겨야 한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에는 푸름이와 빛나가 늦잠을 자는 까닭으로 두 딸의 아침을 토마토를 갈아먹이는 것으로 때운다(물론 나는 일요일에도 아침을 꼭꼭 챙겨 먹는다). 그리고 점심은 김치국밥이나 콩나물 해장국을 끓이고, 저녁은 삼겹살을 구워 먹거나 수제비 혹은 칼국수를 끓인다.

간혹 독특한 음식을 먹을 때도 있다. 그때에는 내가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두 딸의 외할머니께서 계절에 맞는 독특한 음식을 만들어 주신다. 사골국물이라든가 호박을 듬성듬성 썰어넣은 갈치찜, 무를 큼직하게 썰어넣은 명태조림, 냄새만 맡아도 속이 확 풀리는 북어국 등이다. 또한 그런 음식은 내가 잘 만들지 못하는 음식들이다.

사실, 나는 내가 만드는 음식들보다 간혹 장모님께서 만들어주시는 그런 음식들이 입에 착착 감겼다. 하지만 두 딸은 외할머니께서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갖다 주실 때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더러 다른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조르기 일쑤다. 두 딸은 무조건 내가 음식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내가 만든 음식이 정말 맛이 있다고 했다.

먼저 감자를 물에 잘 씻는다
먼저 감자를 물에 잘 씻는다이종찬

감자의 살점이 떨어지지 않도록 부엌칼로 얇게 깎는다
감자의 살점이 떨어지지 않도록 부엌칼로 얇게 깎는다이종찬
그 중에서도 푸름이와 빛나는 감자볶음을 너무나 좋아했다. 가끔 두 딸을 데리고 가까운 수퍼마켓에라도 가면 두 딸은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내가 들고 있는 장바구니에 감자 두어 봉지를 담곤 했다. 특히 수제비와 칼국수를 좋아하는 큰딸 푸름이는 밀가루 한 봉지를 담는 것도 결코 잊지 않았다.


"앗! 감자다. 아빠! 오늘 감자볶음 해 줘."
"아빠는 오늘 된장찌개를 해먹고 싶은데?"
"그럼 된장찌개도 끓이고 감자볶음도 하면 되잖아."
"너희들은 아빠가 요리사인 줄 알아?"


나도 어릴 적에 두 딸처럼 감자볶음을 참 좋아했다. 그 당시 내 어머니께서는 마땅한 반찬이 없다 싶으면 창고에 들어가 가마니에서 알 굵은 감자 서너 알을 꺼내셨다. 그리고 물에 깨끗히 씻어 껍질을 벗겼다. 지금의 나처럼 칼로 감자의 껍질을 깎는 것이 아니라 칼등으로 감자껍질을 깨끗하게 긁어냈다.


어머니의 재빠른 손길이 그렇게 몇번 감자 껍질 위를 오갈 때마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감자 속은 하나도 다치지 않고 감자의 껍질만 허물처럼 벗겨져 나왔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간혹 감자의 싹이 조금 돋아난 초록빛 부분은 칼로 깎아냈다. 감자의 초록빛 부분에는 독이 있어 그대로 먹으면 배앓이를 할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껍질을 벗겨낸 노오란 빛의 감자를 다시 물에 깨끗하게 씻은 뒤 도마 위에 올려놓고 부엌칼로 촘촘촘 채썰기 시작했다. 그러면 둥글둥글한 감자가 이내 일정한 크기로 정말 기막히게 채썰어졌다. 나 또한 그때를 떠올리며 몇 번이나 어머니의 흉내를 내보았지만 좀처럼 그렇게 멋지게 썰어지지 않았다.

감자를 얇게 채썬다
감자를 얇게 채썬다이종찬

마늘은 콩콩 찧고 양파를 엇썰기로 썬다
마늘은 콩콩 찧고 양파를 엇썰기로 썬다이종찬
"감자 이것도 자세히 보모 쪼매(조금) 다르다. 그라이 내 말은 삶아먹는 감자가 있고 볶음을 해서 먹는 감자가 따로 있다 이 말인기라."
"예에에? 그라모 지금 옴마(엄마)가 썰고 있는 그 감자는 삶아묵는 감자하고 쪼매 다른 깁니꺼?"
"그걸 말이라꼬 하나. 껍데기 이기 모래알처럼 푸석푸석한 거는 삶아묵는 기고, 이거맨치로(이것처럼) 껍데기가 매끈한 거로 볶아야 가리(가루)가 안 나고 예쁘고 맛갈스럽게 볶인다 아이가."


어머니의 말씀은 옳았다. 하루는 내가 감자볶음을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감자가 다 볶이기도 전에 자꾸만 자잘하게 부서졌다. 나는 후라이팬에 콩기름을 적게 넣고 가스불 조절을 잘못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콩기름을 더 붓고 가스불을 낮추었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스레 감자를 뒤집어도 자꾸만 부서졌다.

그때 문득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나는 서둘러 내가 사 온 감자의 껍질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랬다. 그 감자의 껍질은 모래알처럼 푸석푸석했다. 그 감자는 삶아먹어야 파삭파삭한 게 제 맛이 나는 그런 감자였다. 그래. 그래서 아까 감자를 채 썰 때 이상하게 사각거리는 게 하얀 감자즙이 많이 나왔구나.

"감자를 볶을 때는 아궁이 불조절을 잘 해야 된다카이. 안 그라모 감자 속이 다 익기도 전에 타뿐다 아이가."
"숯불도 좋은 데 감자 몇 개 구워 묵으모 안 되겠습니꺼?"
"반찬 할 감자도 모자라는데, 구워 묵을 감자가 오데 있노. 인자 침 고마 흘리고 퍼뜩 밥상이나 펴거라."


그 당시 내 어머니께서는 감자볶음을 할 때 칼자루로 마늘을 콩콩콩 찧고 큼직한 양파를 비껴썰기로 썰었다. 그리고 아궁이에서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대충 끈 뒤 숯불만 남긴 뒤 콩기름을 적당히 두른 후라이팬을 올렸다. 이어 마늘과 양파를 살짝 볶은 뒤 채 썬 감자를 후라이팬에 넣고 소금을 조금씩 뿌려가며 감자를 볶았다.

후라이팬에 콩기름을 적당량 붓고 채썬 감자와 양파, 마늘을 올린다
후라이팬에 콩기름을 적당량 붓고 채썬 감자와 양파, 마늘을 올린다이종찬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볶는다. 채썬 감자가 거의 다 볶일 즈음이면 송송 썬 실파와 깨소금을 조금 뿌린다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볶는다. 채썬 감자가 거의 다 볶일 즈음이면 송송 썬 실파와 깨소금을 조금 뿌린다이종찬
그렇게 감자가 거의 다 볶아질 무렵이면 어머니께서는 잔파를 꺼내 물에 씻은 뒤 도마 위에 올려놓고 촘촘촘 썰었다. 그리고 잘 익어가는 감자볶음 위에 그 잔파와 잘 볶아 찧은 고소한 깨소금을 골고루 뿌렸다. 그러면 이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맛난 감자볶음이 김치를 밀쳐내고 밥상 한가운데 떡 하니 올라왔다.

어머니께서 만든 그 감자볶음은 늘상 김치 종류만 서너 가지 올라오던 우리들의 겨울 밥상 위의 별미 중의 별미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스한 보리밥, 쌀이 조금 섞인 그 보리밥 한 숟가락 위에 감자볶음을 조금 올려놓고 볼이 미어터지도록 입에 넣으면 밥이 제대로 씹히기도 전에 목구녕을 타고 술술 넘어갔다.

"아빠! 감자볶음 많이 해."
"왜?"
"내일 도시락 반찬으로 넣어가게."
"감자볶음이 그렇게 맛이 있어?"
"맥도날드에서 사 먹는 감자튀김보다 훨씬 더 맛있어."


2004년 원숭이 해(갑신년)가 저물어가고 2005년 닭의 해(을유년)가 점점 다가오면서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진다. 게다가 혼란스러운 국회와 내수경기 침체로 인해 마음마저 더욱 추워진다. 이런 때 가족들과 옹기종기 밥상에 둘러앉아 만들기도 쉽고 맛도 있는 감자볶음을 나눠먹으며 따순 정을 나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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