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로 한 번 읽어 보세요

나만의 애독서 ② Thich Nhat Hanh 스님의 < Anger >

등록 2004.12.20 14:51수정 2004.12.21 10:42
0
원고료로 응원
Thich Nhat Hanh 스님의 < Anger >.

뜬금없이 웬 원서냐고요? 부제를 보고 반문하실 분 많을 줄 압니다. 영어에 자신 있는 분도 많겠지만 대학을 마치고도 원서 한 번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영문과를 졸업한 사람인데도 영어라면 괜히 오금부터 저려오니 말입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아이들 동화책이 아니라 어른들이 읽는 진지한 전문서적을 영어로 읽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요.

2002년 겨울이던가. <중앙일보>에서 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2003년 봄 틱낫한 스님의 방한을 앞두고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스님이 보내온 영문 원고를 중앙일보 정 아무개 기자가 우리말로 옮긴 것이었습니다.

일목요연하게 작성된 그 기사는 의미심장한 내용과 쉽게 표현된 문체로 나의 마음을 곧 사로잡았습니다. 당시에 스님의 책이 여러 권 출간되어 <화>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기도 했었지만, 그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스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 얼마나 감명을 받았는지 기사를 오려서 한동안 따로 보관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기사 끝에 있는 기자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확인하고는 메일을 보냈던 것입니니다.

"인천에 살고 있는 최일화라는 독자입니다. 틱낫한 스님의 글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영문원고로 읽고 싶은데 가능한지요?"


전화번호를 함께 적었었습니다. 곧 답신이 왔습니다. 스님이 보낸 원고의 분량이 너무 많아 신문에는 발췌해서 실었다는 내용과 팩스로 보내주겠으니 팩스번호를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고마웠습니다. 곧 원고의 전문이 도착했습니다.

기사를 모두 읽어보았는데 오랜만에 읽어보는 감동적인 내용이었습니다. 법정스님의 글을 읽고 감동을 받곤 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쉬운 문체 속에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나는 그 글을 읽고 또 읽고 그리고 그 후에도 몇 번인가 더 읽다가 스님의 저서를 직접 원서로 읽고 싶어졌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많은 저서가 있었습니다. 우선 'Anger'를 신청했습니다. 책의 첫 머리에서부터 그 책은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원서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쓰여졌던 것입니다.

자, 그럼 함께 스님의 원서를 읽어보실까요?

"To be happy, to me, is to suffer less. If we were not capable of transforming the pain within ourselves, happiness would not be possible. Many people look for happiness outside themselves, but true happiness must come from inside of us. Our culture tells us that happiness comes from having a lot of money, a lot of power, and a high position in society. But if you observe carefully, you will see that many rich and famous people are not happy. Many of them commit suicide."

해석이 되셨습니까? 모르는 단어가 있으시다고요. 영어를 배운 지 오래 되신 분들을 위해서 잠깐 우리말로 옮겨보겠습니다.

"나에게 행복이란 바로 고통을 줄이는 것입니다. 만약 내적인 고통을 바꿀 수 없다면 행복은 불가능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밖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내면으로부터 옵니다. 많은 돈을 소유함으로써 많은 권력을 쥠으로써 또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음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우리들의 문화는 말합니다. 그러나 좀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부유하고 유명한 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나는 2005 수능 영어문제를 세심하게 살펴보았습니다. 문법 문제가 몇 개, 주제 찾기 문제가 몇 개, 제목 찾기 문제가 몇 개 나왔나 하는 것이 알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문제의 유형을 알고 싶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어떤 내용의 문제가 출제되었나 하는 것이 더 큰 관심사였습니다.

첨단과학의 시대, 환경의 문제가 크게 부각되는 시대, 줄기 세포의 배양 문제가 세계적 관심사가 되는 시대에 대학입시의 지문도 요새는 그런 문제에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입시의 경향이 변화해 왔다면 문제 지문의 변화도 분명히 하나의 변화일 것입니다.

예전 내가 입시준비를 할 때 참고서의 지문은 오늘과는 조금 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통적 가치를 중요시하여 편집된 참고서가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치관을 정립해나가는 고등학생들이 반드시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 정도의 난이도 수준이면 고등학생들이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첨단과학의 시대에 지나치게 물질문명만을 시험문제의 지문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출제위원들이 그러한 사고방식에 젖어서 내면의 가치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틱낫한 스님의 저서 생각이 났고 그 분의 책에서 문제를 내면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을 알리는 한 계기도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럼 몇 대목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Embrace your anger with a lot of tenderness. Your anger is not your enemy, your anger is your baby. It's like your stomach or your lungs. Every time you have some trouble in your lungs or your stomach, you don't think of throwing them away."

"풍부한 부드러움으로 당신의 분노를 안아 주십시오. 당신의 분노는 당신의 적이 아니라, 당신의 아기입니다. 그 분노는 당신의 위이거나 당신의 폐와 같습니다. 폐나 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것을 버리시겠습니까?"


'화'도 당신 몸의 일부이니 버리려 하거나 적으로 여기고 물리치려 하지 말고 아기처럼 잘 달래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Anger is a zone of energy in us. It is part of us. It is a suffering baby that we have to take care of. The best way to do this is to generate another zone of energy that can embrace and take care of our anger. The second zone of energy is the energy of mindfulness."

"분노는 우리 내면의 에너지 지대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한 부분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돌보아야 할 고통 받는 아기인 것입니다. 이 아기를 돌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분노라는 아기를 품에 안고 달래줄 또 다른 에너지 지대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두 번째 에너지 지대가 바로 mindfulness(마음 다함)의 지대입니다."


이 책에는 'mindfulness'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수행하는 마음 자세'를 말하는 불교용어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다하는 것' 정도로 해석을 해도 별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은 영문학을 공부한 필자도 원서 읽기가 수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던 터에 한 일간지의 기사를 보고 알게 된 책 한 권이 원서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책을 두 번 읽고 또 스님의 저서 중 'Being Peace'와 'Living Buddha, Living Christ'를 읽었는데 한결같이 쉽고 감명 깊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나는 항상 이 책을 나의 책상 위에 두고 짬이 나면 세 줄도 읽고, 다섯 줄도 읽고, 한 페이지도 읽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책을 기꺼이 또 하나의 나의 애독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화 (보급판 문고본) -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

틱낫한 지음, 최수민 옮김,
명진출판사, 2008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본인의 시, 수필, 칼럼, 교육계 이슈 등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쉽고 재미있는 시 함께 읽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4. 4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5. 5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