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의 이름은 만토(晩土, Manteau). 이곳은 '제국과 '공화국'이 지겨운 전쟁을 중지하고 세운 연합국의 신생도시다. 그래서 이 도시는 특별하다. 그런데 너무 특별한 걸까?
보통 도시와 달리 만토는 대형 할인마트나 놀이공원처럼 한날 한시를 기해 개장되었다. 도시가 '개장'했다는 표현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만토는 개장됐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특별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 도시에는 정확히 11만 3075명의 선발된 사람만이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데, 그 숫자에 선발되기 위한 과정은 꽤 험난하다.
"26세 이상 45세 이하의 남녀로, 독신자이거나 아이가 없는 부부만이 만토의 시민이 될 수 있었다. 만토 체류시 임신이 이루어졌을 경우 독신자이건 부부이건 임신에 참여한 남녀 모두 만토를 떠나야 했다. 전체 지원자 중 당연히 독신자의 비율이 높았다. 거의 대부분의 지원자가 확률이 높은 피임 수술을 받았다. 새롭게 제정된 만토의 법률에는 '추방'에 관한 조항이 있었으며, 그것은 87가지의 세부 항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가상 도시 백서 中>
도시에서 추방을 당한다는 사실, 그것도 87가지의 세부 항목이 추방 이유가 된다는 것은 기가 막힌 일이다. 그러나 만토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다. 공창 제도마저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이루어지는 등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알려진 만토의 시민이 되기 위한 경쟁률은 3.7대 1에 이른다.
특이한 것은 선발과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도시 구조 자체가 특이한데 특히 만토에만 있는 '거울탑'이 눈에 띈다. '독수리의 목표는 둥지 셋 나무 하나' 같은,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암호문 같은 공지를 내보내는 거울탑. 사람들이 처음에 그것을 어색하게 바라보지만 이내 파리의 에펠탑처럼 자연스럽게 도시의 상징물로 생각한다.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 도시이지만 사람들은 이곳에서 살고 싶어 별의별 수를 쓰며 선발자에 지원했고 선발된 자들은 계획적이고 완벽하게 갖춰졌다는 만토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거울탑을 보면서, 통행금지가 있는 곳에서, 은행신용불량자와 재활용품 처리장 그리고 연탄과 10개 이상의 테이블을 갖춘 식당조자 없는 곳에서, 무인 패스트푸드점과 셀프 주유기 그리고 아기의 유골함과 노래 잘하는 여자가 있는 곳에서 그들은 삶을 꾸려간다.
<기대어 앉은 오후>로 제4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을 수상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던 이신조가 이번에는 가상 도시 만토를 다룬 소설 <가상 도시 백서>를 통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낯선 것 같으면서도 낯익은 모습을 갖고 있는 만토.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저자의 손에서 탄생한 만토는 그렇게 생소하지만은 않다.
만토의 목적이나 구성 등 이야기를 따라갈 때만 해도 사람들은 무언가 색다른 것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다. 만토라는 곳, 적어도 이곳은 사람들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힘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만토가 아니라 만토의 사람들에 시선이 닿으면서 생소함이 사라지고 익숙한 감정이 떠오른다는 점이다.
여섯 명의 남자들과 거울탑의 여인. 이들의 이야기는 만토에 들어오기 전과 만토에 들어오고 난 뒤의 삶이 뒤죽박죽되어 있다. 뒤죽박죽 속에서도 공통점은 한 가지. 이야기들은 쓰라린 상처와 같다는 점이다. 세상과 사람에 상처받은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만토에 오게 됐지만 만토에 왔다고 해서 특별할 건 없다.
만토라는 곳은 이들에게 겪었던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불과하다. 이때부터 <가상 도시 백서>는 분명해진다. 만토라는 곳도 가상 도시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실상은 가상 도시가 아니라는 것도 수면 위에 떠오른다. 만토가 서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레고로 만들어진 것 같은 만토라는 도시는 이 땅에 존재하는 어떤 도시와도 비슷한 풍경을 지니고 있다.
"만토, 이곳은 멋지다. 동시에 이상하다. 이곳은 아름답다. 그리고 역겹다. 그러나 꽤 괜찮다 말할 수 있는 곳인지 모른다. 오히려 살 만한 곳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다른 많은 곳들처럼 만토, 이곳은 견딜 만한 지옥이다." <가상 도시 백서 中>
도시라는 곳을 살아가는, 그리고 맴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가상 도시 백서>는 독특한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리고 '도시'와 '사람'을 통해 이제껏 도시를 거쳐 갔던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이 작품만의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가상도시 백서 - Snow White City
이신조 지음,
열림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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