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침략과 저항의 역사

<사진으로 보는 장승포 100년> 사진전

등록 2004.12.23 22:37수정 2004.12.2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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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장승포 전경.
1920년대 장승포 전경.전갑생


1963년 장승포 전경.
1963년 장승포 전경.전갑생
새해 첫날부터 볼만한 사진전이 경남 거제시 거제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장승포 100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역사사진전이다.


장승포, 100년 전 어떤 모습일까

1904년 일본 어민들의 대규모 이주를 시작으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일본의 몰락한 자본가들이 대거 장승포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기계 발동선을 이용, 우리네 어장들을 잠식하면서 정치·경제·문화 각 분야에서 장승포를 식민지 도시를 넘어 일본식 도시로 만들어 갔다.

특히 경남·부산지역의 일본 수산인들 가운데 유명해진 가이시 겐타로(香推原太郞)와 오따 슈지로(太田種次郞)가 이주민들을 이끌고 오면서 장승포는 초기 근대자본주의 사회로 급격히 팽창한다.

이리사 우편취급소(1876년), 이리사 심상소학교(1906년), 콘비라 신사(1907년), 이리사무라 일본인회(1907), 장승포 수산어시장(1907년), 장승포순사주재소(1906년)에 이어 1910년 이후에는 일본인 거류민단이 형성되면서 장승포 금융조합(1920), 장승포 어업조합(1920년), 거제경찰서(1936년) 따위 관공서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이로써 주권과 자주, 심지어 대대로 살아온 터전마저 송두리째 빼앗긴 장승포 주민들은 일제에 항거하기 시작한다.

1930년대 장승포 신사 본전 모습. 조선인 씨자총대들도 함께.
1930년대 장승포 신사 본전 모습. 조선인 씨자총대들도 함께.전갑생

1945년 7월 장승포입영훈련소 졸업 모습.
1945년 7월 장승포입영훈련소 졸업 모습.전갑생
장승포 100년, 일본 식민지배에 저항한 민중의 역사

1914년 거제시는 용남군과 통합해 통영군으로 불리면서 경남 제1의 수산도시로 널리 알려지는데 그 견인차가 된 곳이 장승포를 중심으로 한 능포·아양·아주·옥포·조라 지역이다.

장승포와 능포는 일본인 거류민들이 살고 일본인의 어장이 자리잡고 있었고, 아양·아주·옥포는 조선인 항일운동가들이 이름을 떨친 곳이었다. 장승포의 조선인들은 일본인 자본세력에 대항하는 운동을 펼쳤다.


3·1운동을 시작으로 농민운동·어민운동·노동운동·민중야학·문화운동·사상운동을 전개하다가 투옥되어 옥고를 겪은 장승포와 아양 사람들은 반제·항일정신으로 해방될 때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다.

이런 정신에서 많은 항일운동가들은 '친일파'들로 득세하던 장승포 이리사무라(入佐村, 일본인 이주어촌을 말하는 것으로, 촌장인 이리사 라는 사람의 성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거제지역에서 제일 큰 일본인 이주어촌으로 경남에선 부산 다음으로 큰 일본인 거류지다.
)를 멀리하고 영원한 '해방구' 아양과 아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일부 거제 사람들은 1907년 건립된 콘피라신사에서 씨자총대(氏子總代,씨자총대는 일본 신사의 운영위원쯤으로 보면 된다. 신사의 운영과 예산 등을 지원하기도 하고, 건물을 증축할 때도 씨자총대들이 앞장서기도 한다.)를 맡으면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옹호, 전쟁터로 나가자고 외쳤다. 또 장승포어업조합 관계자들은 총대와 이사, 서기를 맡으면서 '수산보국(水産報國)'을 외쳤다.

이운공립보통학교의 다수의 훈도들은 순박한 어린 학생들을 이용하여 신사참배를 강요하거나 '창씨개명'과 내선일체(內鮮一體)'에 나서도록 선동·선전했다.

1945년 8월 16일 이리사무라 일본인들과 일제 경찰들은 치안대(항일운동가와 지역 청년들로 구성된 치안유지대)에 참여한 인사들을 무력진압해 거제경찰서 유치장에 감금했다. 장승포 사람들은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서와 관공서를 접수했다.

이에 이리사무라 일본인들은 지심도 해군통신대로 달려가 부산에 주둔중인 적기부대에 연락하여 "우리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말하고 치안대를 진압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렇게 된 계기는 치안대에서 일본인 서장을 밧줄로 묶어 시내를 돌면서 보복한 일로, 조선인 치안대(다수 항일운동가)가 오래 동안 일본경찰의 악형을 알고 있으니 대표적인 인물인 서장을 보복한 사건이라고 하겠다.

일부 일본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부산에 주둔하고 있는 적기부대를 불러 들인 것이다.

결국 치안대에 나선 항일운동가들은 체포, 구속되었다. 다음날 경남건국준비위원회는 진상조사단을 파견해 모두 석방시켰다.

장승포 인민위원회가 행정과 치안을 통치한 이후 미군정 실시, 48년 정부수립, 5·30 총선거, 한국전쟁, 거제군 복군, 63년 장승포 산사태로 이어지는 실로 수많은 사건들이 터졌다. 이 모든 역사는 장승포를 중심으로 살아온 수많은 민중들의 역사와 다름없다.

거제문화예술회관 주최로 열린 이번 사진전은 장승포를 중심으로 아주·아양·옥포·능포 지역의 도시변화, 거제사람들과 일본인 교육환경, 지금은 사라진 장례와 결혼식 모습, 다양한 문화 행사, 민중생활경제, 달라진 교통, 살아 숨쉬는 저항의 역사 이렇게 5가지 분야로 나뉘어 전시된다.

이 전시회는 1월 1일부터 23일까지 거제시문화예술회관 주최로 전시실에서 열리며 1월 3일 오후 6시에 개막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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