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 프레스센터 입구에 있는 한국언론재단 돌간판.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급변하는 언론환경 속에 중차대한 임무를 맡고 있는 언론재단의 미래를 현 이사장과 같이 갈 수 없다."
한국언론재단의 새 이사진 구성과 관련, 신임 이사진이 잇따라 사퇴를 선언해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언론재단 노조가 박기정 현 이사장의 연임을 반대하고 나서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언론재단은 23일 오전 제29차 임시 이사회를 열어 박기정(현 이사장)씨와 노정선(현 사업이사)씨를 재선임하고, 기금이사에 이춘발(전 한국기자협회장)씨를 또 연구이사에 고영재(한겨레 논설위원)씨를 각각 선임했다.
고영재·이춘발 신임이사 사의 표명... "사전협의 전혀 없었다"
a
▲ 박기정 현 이사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박 이사장은 언론계 안팎에서 신임 이사장 선임이 유력한 것으로 점쳐졌던 서동구 전 KBS 사장과 경합 끝에 제4대 이사장으로 재선임됐다. 상임이사 2명 등 12명의 이사가 참여한 투표 결과, 박 이사장과 서 전 사장이 각각 6표를 얻어 동수를 이뤘지만, 임시 의장을 맡은 노정선 사업이사 결정에 따라 이사장이 선임됐다.
현 언론재단 정관은 가부가 동수인 경우 이사회 의장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임시 의장 노정선 사업이사가 박 이사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사회는 이어 박 이사장의 제청으로 노정선 현 사업이사를 연임시키는 한편, 이춘발 전 한국기자협회장을 기금이사로, 고영재 한겨레 논설위원을 연구이사로 각각 선임했다.
그러나 새로 상임이사에 선임된 2명이 “사전 협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이사직을 수행할 뜻이 전혀 없다”며 고사해 잡음을 낳고 있다. 이날 이사회에 참여한 일부 이사들은 "처음에는 서동구 전 사장만 제청됐는데 일부 이사들이 반대하면서 박 이사장 재선을 적극 밀었다"고 전했다.
고영재 한겨레 논설위원은 박 이사장이 선임 결과를 알리자마자 즉각 사의를 표명했다. 고 논설위원은 이날 밤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내 뜻과 맞지도 않을 뿐더러 사전에 어떤 얘기도 되지 않았다, 거부할 가치도 없는 비상식적 처사"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고 논설위원은 "한겨레에 몸담고 있는 현직 논설위원이 (이사직을) 맡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며 "박 이사장과 한마디 얘기된 바도 없다"고 잘라말했다. 고 논설위원은 또 "사전에 전혀 상의 없이 이뤄진 이번 결정은 내 명예와도 관련 있다"면서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따졌다.
이춘발 전 회장도 이사직 선임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 역시 사전에 이번 인사와 관련해 전혀 얘기를 듣거나 협의된 바가 없었으며 이사 선임을 수용할 뜻이 없다고 지인들에게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회장은 저녁 8시 현재 전화연결이 되지 않고 있다.
언론재단 노조 "박기정 이사장은 스스로 물러나라"
예상치 못한 박 이사장의 연임은 언론재단 내부에서도 상당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사회 결과가 발표되자 언론재단 직원들은 뜻밖의 소식에 놀라며 삼삼오오 모여 숙의했다. 다수 관계자들은 "개인의 안위를 위해 언론재단을 흔들 수 있느냐"며 재선임된 임원에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언론재단의 한 관계자는 23일 저녁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퇴출 1호 대상이었던 이사장과 사업이사가 자신들의 자리보전을 위해 서로 밀어준 셈 아니냐"며 "박 이사장을 제청한 것으로 알려진 언론단체장이 속한 단체에 언론재단이 한해 지원하는 금액만 5억원 가까이 된다"고 의혹을 지적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두 임원이 3년간 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해외출장'과 '골프'가 연상될 정도였다"면서 "이사장은 언론개혁 관련 논의가 한창일 때조차 '나는 물러갈 사람이고 이 일은 직원들 운명이나 알아서 잘 판단하라'고 발뺌했던 사람이었다"고 비판했다.
한편 그동안 박 이사장의 정실인사와 무책임한 경영 등을 성토했던 노조는 박 이사장 반대 투쟁을 공식 선언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언론재단 지부(위원장 정민)는 이날 오후 긴급 비상총회를 열고 박 이사장 및 노정선 연구이사의 연임 반대와 함께 두 이사의 자진사퇴 촉구를 결의했다.
노조는 ▲ 줄세우기, 정실인사로 조직을 분열시켜 언론재단 발전을 저해시킨 점 ▲ 안정적 재원확보와 위성정립 등 숙원사업을 완수할 능력 및 의지가 없다는 점 등을 반대사유로 들고 "우리 주장을 철저하게 무시한 이사회 결정에 실로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질책했다.
박 이사장의 자리보전식 인사 의혹도 제기됐다. 노조는 "박 이사장이 추천한 일부 신임 이사들의 반발을 보면, 현 이사장이 자리를 지키고자 얼마나 무리수를 두었는지 감지할 수 있다"면서 "재단조직의 발전과 위상정립 등에는 관심이 없고 자리에만 연연하는 모습에 환멸감을 느낀다"고 혹평했다.
문화부측 "박 이사장이 물러나든, 언론재단이 죽든 택일해야 할 것"
언론재단 관할 부처인 문화관광부는 의외 결과에 곤혹스러움과 함께 적절하지 못한 인사를 그냥 수용할 수 없지 않느냐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노조가 박 이사장 연임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 이사장은 문화관광부 장관의 임명을 거쳐야 하고 3명의 상임이사들은 문화관광부의 승인절차를 거쳐야 내년 1월 1일부터 3년 동안의 임기에 들어갈 수 있다.
김재원 문화관광부 문화미디어산업진흥과장은 "기관장의 업적이 특별히 좋았으면 모르지만 3년 임기를 다 채우면 통상 연임이 되지 않는다"면서 "언론재단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기존 3년을 이끌어온 사람이 개혁을 할 수 있을지 정책적으로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고 전했다.
김 과장은 이어 "그간 문화관광부의 임명이나 승인이 요식적으로 흘러간 것처럼 보이지만 이번처럼 노조가 강력하게 반대하는 등 파문이 크면 심각한 문제"라면서 "임기가 끝나는 이달 31일까지는 인사를 완료해야겠지만 박 이사장 등이 적절한 자격이 있는지 등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화부의 또다른 관계자는 더 강경한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두 임원의 행태는 언론재단이 앞으로 어떻게 되든 3년 임기를 보장받겠다는 행태"라며 "공공기관으로서 언론재단의 역할과 사익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언론재단이 죽든, 박 이사장이 물러나든 택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언론재단 구성원들이 현명한 판단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박기정 이사장 "직원 전체가 안되겠다면 물러나겠지만..."
| | | 박기정 이사장은 | | | | 42년 함북 나남 출생으로 중동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68년 동아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이후 정치부장과 사회1부장, 부국장, 논설위원, 동경지사장을 거쳐 심의실장서리, 편집국장, 동아일보 문화센터장을 역임했다.
2001년 감사(비상임) 및 언론인기금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 언론재단과 인연을 맺었으며 2002년부터 올해 말까지 3년간 언론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 | | | |
한편 이같은 안팎의 비판에 대해 박기정 이사장은 23일 밤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사회 결정을 존중한다"고 전제하면서 "노조의 반대 입장은 총회가 아닌 집행부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내일 출근해서 사정을 알아보겠다"고 답했다.
박 이사장은 이어 "노조 차원이 아닌 간부들을 포함한 직원 전체 총의를 물어봐서 대부분 '박기정은 안되겠다'고 한다면 물러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이사장은 "노조는 이미 서동구 내정자를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면서 "서동구 내정자는 찬성하면서 이사회 결정은 반대한다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박 이사장은 문화부 일각의 부정적 반응과 관련, "현재 언론재단 정관상 문화부 장관은 이사회가 이사장을 선임해 제청하면 임명만 하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또 두 신임이사의 사의 표명에 대해서 박 이사장은 "언론재단에서 일해보니 방송계가 너무 없고, 보수적인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어서 한겨레 출신의 고영재씨와 KBS 출신의 이춘발씨를 이사회에서 동의해주면 교섭해보겠다고 제청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 이사장은 이어 "내가 연임될 것 같았으면 미리 제청할 이사를 준비했을 텐데 갑자기 이뤄진 일이라 평소 생각했던 분들을 추천하게 된 것"이라며 "이사회가 끝난 뒤 바로 두 분께 전화를 드렸는데 고 위원은 고사를 했고, 이 전 회장도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또 "본인들이 정 고사한다면 할 수 없지 않겠느냐"며 "30일 새해 예산 등과 관련 이사회가 또 열리니 공석이 된 이사 선임에 대해 다시 논의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이날 투표에 참가한 언론재단 이사는 노정선 사업이사, 김주언 연구이사 등 상임이사 2명과 홍석현 한국신문협회 회장(위임), 박수만 한국신문협회 사무총장, 이긍희 한국방송협회 회장(위임), 최규철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 최문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 이상기 한국기자협회 회장, 홍원석 한국기자협회 전 감사, 신동식 전 언론중재위원회 심의위원, 나형수 EBS 감사, 김순길 한국방송광고공사 전무 등 비상임 이사 10명를 포함해 모두 12명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