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만 연연하는 모습 환멸스럽다"

언론재단 구 이사진 유임 놓고 '잡음'... 노조 자진사퇴 촉구

등록 2004.12.23 23:09수정 2004.12.2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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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프레스센터 입구에 있는 한국언론재단 돌간판.

프레스센터 입구에 있는 한국언론재단 돌간판.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급변하는 언론환경 속에 중차대한 임무를 맡고 있는 언론재단의 미래를 현 이사장과 같이 갈 수 없다."

한국언론재단의 새 이사진 구성과 관련, 신임 이사진이 잇따라 사퇴를 선언해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언론재단 노조가 박기정 현 이사장의 연임을 반대하고 나서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언론재단은 23일 오전 제29차 임시 이사회를 열어 박기정(현 이사장)씨와 노정선(현 사업이사)씨를 재선임하고, 기금이사에 이춘발(전 한국기자협회장)씨를 또 연구이사에 고영재(한겨레 논설위원)씨를 각각 선임했다.

고영재·이춘발 신임이사 사의 표명... "사전협의 전혀 없었다"

a 박기정 현 이사장.

박기정 현 이사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박 이사장은 언론계 안팎에서 신임 이사장 선임이 유력한 것으로 점쳐졌던 서동구 전 KBS 사장과 경합 끝에 제4대 이사장으로 재선임됐다. 상임이사 2명 등 12명의 이사가 참여한 투표 결과, 박 이사장과 서 전 사장이 각각 6표를 얻어 동수를 이뤘지만, 임시 의장을 맡은 노정선 사업이사 결정에 따라 이사장이 선임됐다.

현 언론재단 정관은 가부가 동수인 경우 이사회 의장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임시 의장 노정선 사업이사가 박 이사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사회는 이어 박 이사장의 제청으로 노정선 현 사업이사를 연임시키는 한편, 이춘발 전 한국기자협회장을 기금이사로, 고영재 한겨레 논설위원을 연구이사로 각각 선임했다.

그러나 새로 상임이사에 선임된 2명이 “사전 협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이사직을 수행할 뜻이 전혀 없다”며 고사해 잡음을 낳고 있다. 이날 이사회에 참여한 일부 이사들은 "처음에는 서동구 전 사장만 제청됐는데 일부 이사들이 반대하면서 박 이사장 재선을 적극 밀었다"고 전했다.


고영재 한겨레 논설위원은 박 이사장이 선임 결과를 알리자마자 즉각 사의를 표명했다. 고 논설위원은 이날 밤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내 뜻과 맞지도 않을 뿐더러 사전에 어떤 얘기도 되지 않았다, 거부할 가치도 없는 비상식적 처사"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고 논설위원은 "한겨레에 몸담고 있는 현직 논설위원이 (이사직을) 맡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며 "박 이사장과 한마디 얘기된 바도 없다"고 잘라말했다. 고 논설위원은 또 "사전에 전혀 상의 없이 이뤄진 이번 결정은 내 명예와도 관련 있다"면서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따졌다.


이춘발 전 회장도 이사직 선임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 역시 사전에 이번 인사와 관련해 전혀 얘기를 듣거나 협의된 바가 없었으며 이사 선임을 수용할 뜻이 없다고 지인들에게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회장은 저녁 8시 현재 전화연결이 되지 않고 있다.

언론재단 노조 "박기정 이사장은 스스로 물러나라"

예상치 못한 박 이사장의 연임은 언론재단 내부에서도 상당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사회 결과가 발표되자 언론재단 직원들은 뜻밖의 소식에 놀라며 삼삼오오 모여 숙의했다. 다수 관계자들은 "개인의 안위를 위해 언론재단을 흔들 수 있느냐"며 재선임된 임원에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언론재단의 한 관계자는 23일 저녁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퇴출 1호 대상이었던 이사장과 사업이사가 자신들의 자리보전을 위해 서로 밀어준 셈 아니냐"며 "박 이사장을 제청한 것으로 알려진 언론단체장이 속한 단체에 언론재단이 한해 지원하는 금액만 5억원 가까이 된다"고 의혹을 지적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두 임원이 3년간 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해외출장'과 '골프'가 연상될 정도였다"면서 "이사장은 언론개혁 관련 논의가 한창일 때조차 '나는 물러갈 사람이고 이 일은 직원들 운명이나 알아서 잘 판단하라'고 발뺌했던 사람이었다"고 비판했다.

한편 그동안 박 이사장의 정실인사와 무책임한 경영 등을 성토했던 노조는 박 이사장 반대 투쟁을 공식 선언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언론재단 지부(위원장 정민)는 이날 오후 긴급 비상총회를 열고 박 이사장 및 노정선 연구이사의 연임 반대와 함께 두 이사의 자진사퇴 촉구를 결의했다.

노조는 ▲ 줄세우기, 정실인사로 조직을 분열시켜 언론재단 발전을 저해시킨 점 ▲ 안정적 재원확보와 위성정립 등 숙원사업을 완수할 능력 및 의지가 없다는 점 등을 반대사유로 들고 "우리 주장을 철저하게 무시한 이사회 결정에 실로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질책했다.

박 이사장의 자리보전식 인사 의혹도 제기됐다. 노조는 "박 이사장이 추천한 일부 신임 이사들의 반발을 보면, 현 이사장이 자리를 지키고자 얼마나 무리수를 두었는지 감지할 수 있다"면서 "재단조직의 발전과 위상정립 등에는 관심이 없고 자리에만 연연하는 모습에 환멸감을 느낀다"고 혹평했다.

문화부측 "박 이사장이 물러나든, 언론재단이 죽든 택일해야 할 것"

언론재단 관할 부처인 문화관광부는 의외 결과에 곤혹스러움과 함께 적절하지 못한 인사를 그냥 수용할 수 없지 않느냐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노조가 박 이사장 연임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 이사장은 문화관광부 장관의 임명을 거쳐야 하고 3명의 상임이사들은 문화관광부의 승인절차를 거쳐야 내년 1월 1일부터 3년 동안의 임기에 들어갈 수 있다.

김재원 문화관광부 문화미디어산업진흥과장은 "기관장의 업적이 특별히 좋았으면 모르지만 3년 임기를 다 채우면 통상 연임이 되지 않는다"면서 "언론재단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기존 3년을 이끌어온 사람이 개혁을 할 수 있을지 정책적으로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고 전했다.

김 과장은 이어 "그간 문화관광부의 임명이나 승인이 요식적으로 흘러간 것처럼 보이지만 이번처럼 노조가 강력하게 반대하는 등 파문이 크면 심각한 문제"라면서 "임기가 끝나는 이달 31일까지는 인사를 완료해야겠지만 박 이사장 등이 적절한 자격이 있는지 등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화부의 또다른 관계자는 더 강경한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두 임원의 행태는 언론재단이 앞으로 어떻게 되든 3년 임기를 보장받겠다는 행태"라며 "공공기관으로서 언론재단의 역할과 사익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언론재단이 죽든, 박 이사장이 물러나든 택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언론재단 구성원들이 현명한 판단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박기정 이사장 "직원 전체가 안되겠다면 물러나겠지만..."

박기정 이사장은

42년 함북 나남 출생으로 중동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68년 동아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이후 정치부장과 사회1부장, 부국장, 논설위원, 동경지사장을 거쳐 심의실장서리, 편집국장, 동아일보 문화센터장을 역임했다.

2001년 감사(비상임) 및 언론인기금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 언론재단과 인연을 맺었으며 2002년부터 올해 말까지 3년간 언론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한편 이같은 안팎의 비판에 대해 박기정 이사장은 23일 밤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사회 결정을 존중한다"고 전제하면서 "노조의 반대 입장은 총회가 아닌 집행부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내일 출근해서 사정을 알아보겠다"고 답했다.

박 이사장은 이어 "노조 차원이 아닌 간부들을 포함한 직원 전체 총의를 물어봐서 대부분 '박기정은 안되겠다'고 한다면 물러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이사장은 "노조는 이미 서동구 내정자를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면서 "서동구 내정자는 찬성하면서 이사회 결정은 반대한다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박 이사장은 문화부 일각의 부정적 반응과 관련, "현재 언론재단 정관상 문화부 장관은 이사회가 이사장을 선임해 제청하면 임명만 하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또 두 신임이사의 사의 표명에 대해서 박 이사장은 "언론재단에서 일해보니 방송계가 너무 없고, 보수적인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어서 한겨레 출신의 고영재씨와 KBS 출신의 이춘발씨를 이사회에서 동의해주면 교섭해보겠다고 제청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 이사장은 이어 "내가 연임될 것 같았으면 미리 제청할 이사를 준비했을 텐데 갑자기 이뤄진 일이라 평소 생각했던 분들을 추천하게 된 것"이라며 "이사회가 끝난 뒤 바로 두 분께 전화를 드렸는데 고 위원은 고사를 했고, 이 전 회장도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또 "본인들이 정 고사한다면 할 수 없지 않겠느냐"며 "30일 새해 예산 등과 관련 이사회가 또 열리니 공석이 된 이사 선임에 대해 다시 논의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이날 투표에 참가한 언론재단 이사는 노정선 사업이사, 김주언 연구이사 등 상임이사 2명과 홍석현 한국신문협회 회장(위임), 박수만 한국신문협회 사무총장, 이긍희 한국방송협회 회장(위임), 최규철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 최문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 이상기 한국기자협회 회장, 홍원석 한국기자협회 전 감사, 신동식 전 언론중재위원회 심의위원, 나형수 EBS 감사, 김순길 한국방송광고공사 전무 등 비상임 이사 10명를 포함해 모두 1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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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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