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교복입은 배우들의 모습
머리핀, 머리모양, 교복, 교복치마와 바지, 모자, 속옷, 스타킹, 신발, 가방 등 모든 것이 정해진 규정을 벗어날 수 없다. 생활 속에서의 규제는 또 어떤가? 40~50대 어른들이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돌이켜 보면 참 실소할 일들이 많다. 추억의 DJ가 있는 음악다방, 몰래 들어간 극장, 당구장 등은 대표적인 금지구역이었다.
지금은 다 커버린 대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출입금지 구역이었던 롤러스케이트장 이야기를 할라치면 책상을 두드리며 당시의 말도 안 되는 규제를 폭소로 웃어넘긴다. 역시 흘러간 추억의 한 장면이 된 것이다. 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4당 5락'은 지금도 유효한가보다.
초등학생은 가능한데 대학생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유독 중고등학교 시절에만 제약 당해야 하는 논리를 우리들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수용하고 있다. 왜일까? 필자는 그것을 올해 대 유행했던 말 중의 하나인 '관습화된 불문율'이라고 명명해 본다.
청소년들이 충분한 휴식과 다양한 여가생활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청소년 헌장'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의 청소년들은 실로 '오늘'을 잃어버리고 '내일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되어버렸다.
통제 속에서 자란 어른들, 그리고 통제밖에는 다른 방법을 모르는 어른들
어른들에게 '왜 청소년들에게는 많은 규제가 필요한가?'하는 이유를 물었다. 어른들의 대답은 대동소이하게 '통제하기 쉬워서'라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통제를 통해 유지되는 곳이 있다면 그 곳은 군대와 교도소일 것이다. 즉 '중고등학생과 군인과 죄수'들은 통제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들은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 즉 자존심을 상실하게 된다.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으니, 자신을 믿는 마음인 자신감이 있을 수 없다. 자존심이 상하고, 자신감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