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지체장애인 이은경씨 시집 출간

<하루만이라도 새가 되어>에 담긴 희망

등록 2004.12.24 09:28수정 2004.12.29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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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은경씨 시집 <하루만이라도 새가 되어> 표지

이은경씨 시집 <하루만이라도 새가 되어> 표지 ⓒ 심미안

하루만이라도 새가 되고 싶습니다/ 새가 되어 드높고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고 싶습니다.
하루만이라도 바람이 되고 싶습니다/ 바람이 되어 답답한 모든 것을/ 잠시나마 날려보내고 싶습니다.
하루만이라도 나의 두 손발이/ 자유로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내 소중한 이들에게/ 내 두 손발이 가는 그 무언가를/ 해주고 싶습니다.


절망스런 삶의 순간,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한 해가 다 가고 추운 겨울 속으로 깊게 진입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안으로 안으로 움츠러드는 이때, 일상에 대한 회한은 가던 길을 자꾸 머뭇거리게 만든다.

이때쯤이면 사람들은 늘상 그래 왔듯이 그래도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고 찾아보기도 한다. 가족이 없는 고아들, 혼자서 사는 독거 노인들, 신체가 정상이 아닌 장애인들…. 돌아보면 수없이 많은 불행한 삶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우리는 그 삶들의 일상을 그저 관심 없이 지나치다가 이렇게 연말이 되면 관례처럼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가 되돌아오곤 한다.

그러나 때론 사지 멀쩡한 사람들도 정상적인 생활 범주에 들지 못한 이들에게 위로받고, 그들의 눈물겨운 고투에 감동할 때가 있다. 그래서 삶에 지친 우리들에게 너무 상심하거나 낙심하지 말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자신의 의지로 몸조차 움직일 수 없는 한 장애인이 고단한 삶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시집을 냈다는 소식이 추운 세밑을 따뜻하게 한다.

a 이은경씨

이은경씨 ⓒ 심미안

1급 지체장애인 이은경(29세)씨는 옆 사람의 도움 없이는 먹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그리고 그의 말은 그에게 다가가 관심을 가지고 듣지 않으면 알아듣기도 힘들다. 그녀의 하루는 2평 남짓한 방안에서 전부 이뤄진다.

그런 그녀의 삶을 지탱하게 한 하나의 희망은 시였다. 그녀는 이 시를 모아 희망으로 만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자신만의 유일한 공간인 방에서 모아온 그녀의 시 세계를 시집으로 엮은 것이다.

그녀의 시집 출판기념회가 지난 21일 고향동네의 한 회관에서 열렸다. 시집의 제목은 <하루만이라도 새가 되어>(심미안). 그녀가 사는 곳은 바닷물이 마을 앞까지 출렁출렁 들어왔다가 나가는 땅끝 해남의 양정마을이다. 밤새 파도소리만 '쏴아 쏴아' 들려오는 방안에 들어앉아 잠못 이루는 밤에 썼을 그녀의 시는 결코 외로움이나 절망이 아니다.


그 속에는 누구나 그러하듯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갈망과 한 발자국도 자유롭지 못한 자신이 새처럼 자유로운 날기를 꿈꾸는 소망이 담겨 있다. 그녀의 꿈은 그렇게 살아 있다.

이씨의 생활공간이 대부분 방인 탓에 책과 라디오 그리고 이 시대의 최고 문명인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만난다. 이 세계를 통해 정보를 접하고 친구들을 사귀고 이를 통해 구축된 자신의 마음을 시로 표현한다.


이런 그녀를 좀더 너른 세상의 문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장애인복지관에서 갖는 문학회 모임이다. 장애인복지관의 도움으로 그녀는 시를 좋아하는 장애우들과 모여 만든 '동백문학회'에서 시를 이야기하고 문학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이곳에서 좀더 구체화된 시를 접하고 목표를 정하고 그의 삶의 큰 지평으로 만들어 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지나간 삶의 여정을 모은 시집 출간을 축하했다. 그리고 삶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보며, 자신들의 모습을 부끄러워하기도 하였다.

난 누워서 밥을 먹어요/ 난 누워서 노래를 불러요.
난 누워서 인사를 해요/ 난 누워서 친구들을 반겨요/ 난 박수대신 웃음을 지어요.
다른 사람들과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지만/ 그래도 난 불행하지 않아요.
비록 작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행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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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를 중심으로 지역의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인문학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특히 해양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16세기 해남윤씨가의 서남해안 간척과 도서개발>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으며 연구활동과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녹우당> 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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