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의 소풍 사진 속의 선생님. 그때는 '전적지 순례'라는 명칭으로 다녔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교련복 입고 보물찾기하는 영 이상하지만, 그런 시대였다.한준명
누군가의 편지를 받아보고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던 것이 언제였던가. 아침마다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넘쳐나는 스팸 메일을 지우는 것이 더 익숙하다.
학교 우편함에는 각종 카드 명세서나 연수 자료만 무심하게 꽂혀 있기 일쑤다. 가끔 편지 봉투가 들어 있어 뜯어보면, 그것도 무슨 무슨 안내문 아니면 무슨 무슨 모임에 참석해 달라는 초대장이다. 역시 마음이 아닌 머리가 움직이는 순간들이다.
며칠 전 동료 국어 선생님이 내미는 손에 들린 편지 한 통을 받아 보았다. 우리 학교에서 교감을 지내시다가 지난해 평교사로 정년 퇴임하신 선생님 한 분이 보내오신 편지다.
백지의 양면에 볼펜 큰 글씨로 꾹꾹 눌러쓴 편지는 "새로이 진출하는 나의 후배(후학)에게"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졸업을 앞둔 고3학생을 위해 쓰신 편지로, 교내 신문 발간이 졸업 무렵이라면 신문에 올려주었으면 하는 메모도 함께 적혀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여느 졸업식이라면 반드시 있을 법한 당부의 말들에서 몇 마디 빠지지 않는다. "이제 가정과 학교라는 둥지를 떠나"는 졸업생들에게 "각자의 꿈을 이루라"는 당부와 함께, 소중한 가치로 "한국인이란 자긍심과 가족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잊지 말 것을 빼놓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배우고 또 배우는 자세로 말과 행이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진하는 나의 후배되기를 기원"하는 것까지…….
그런데 내 마음이 크게 출렁인 것은 마지막 대목에서이다.
① 영원한 태성인 or ② 태성의 산 증인 중 택 1
전 태성고 교감 유 성 희
그리고 마지막에 "내용은 적절히 보충해 주시고, ①, ② 또는 옛 직함이 사리에 맞는지도 검토 요망"이라는 당부의 스티커까지 붙어 있다.
지난 봄 학교 뒷산의 약수터 오르는 길에 만나 뵈었던 선생님의 모습이 일순간 겹쳐졌다. 약수터 가는 길에 놓인 다리가 지난 여름의 태풍 후에 무너졌다고, 저러다가 아이들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냐고 미소 반 걱정 반으로 이야기하시던 선생님. 30여년 오르내렸던 언덕에서 선생님은 아직도 아이들을 바라보고 계셨다.
편지 마지막 대목의 "영원한 태성인"과 "태성의 산 증인" 사이에서 고민에 잠기시는 모습이 다시 한번 겹쳐진다. 선배라고 해야 할지, 옛 스승이라고 해야 할지, 전 교감이라고 해야 할지. 한참이나 이런 고민을 하다가 그 부분만큼은 후배 교사에게 맡겨야겠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과연 후배 교사들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여겨줄지 내내 궁금해 하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선생님은 진정 "영원한 산 증인"으로 오래 오래 남고 싶으셨다는 사실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20여년 지나 정년퇴임까지 하고 난 뒤, 나는 후학들을 위해 이런 편지를 보낼 수 있을까. 학교 신문에 내가 쓴 글이니 실어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을까. 아침마다 학교 뒷산을 오르며 아이들을 걱정하고 잔소리할 수 있을까. 아니, 그 때까지 학교에 남아 있기는 할까.
지난날의 가치관이 세대를 뛰어넘어 전해지기 참 어려운 요즘이다. 아니 지난 세대의 가치관들은 이미 낡은 것으로 치부되거나, 서둘러 폐기시켜야 할 것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그러나 오랜 세월 자신의 몸과 정신을 담았던 곳으로 지난 세대가 보내는 메시지는 시간의 부피와 함께 여전히 우리를 가르친다. 그 넓은 터전에서 우리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자랐고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지난 세대로부터 크나큰 자산을 물려받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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