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승진하면 안 되나?

20년간 승진에서 누락된 장애인 사서의 진정을 조사하며

등록 2004.12.24 10:57수정 2004.12.2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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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4월 1일 7급으로 승진되어 2004년 4월 1일이면 만 20년이 됩니다. 처음 국가공무원으로 임용되었을 때는 타 분야와는 달리 그나마 공직사회가 더 장애인에게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를 부여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저의 바람은 단순히 꿈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 제 몸이 불편하다는 생각에 참고 기다려 왔습니다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20여 년씩이나 승진에서 누락시킨다는 생각을 하면 이제는 더 참을 수 없습니다."(진정인의 진정 내용 중 일부)

20년 동안 승진에서 제외된 장애인

2004년 2월 16일, 국립대학인 부산대학교 한 사서직원으로부터 진정이 접수되었다.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20년 동안 승진에서 지속적으로 제외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진정인은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 자신에게도 기회가 주어지겠지 하며 스스로 달래왔다고 한다. 그러다 정년이 5년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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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이우일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료뿐만 아니라 평정자, 총무과 직원 등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3월 하순 학교를 방문했다. 도서관에서 만난 진정인은 3급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몸이 조금 불편하고 말하는 것이 좀 느린 편이었다.

그는 2급 정사서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1977년에 부산대학교 도서관에 9급 공무원으로 신규 임용되어 열람과와 정리과에서 일서·중서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도서를 분류·정리·수정하는 일을 했다. 1984년 7급 공무원으로 승진한 후 현재까지 7급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일서·중서 정리 업무를 하고 있다.

장애의 유무를 경계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가르는데 너무나 익숙하고, 격리가 무척 자연스러운 사회에서 살아온 나는 지금까지 비장애인 쪽에 소속돼 있었다. 그런 내게 장애인이란 그다지 친숙한 대상이 아니었다. 가족과 친구들 가운데도 장애인은 없으며, 그밖에 내 주변 집단이 다 비장애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그런 내 주변 환경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난 장애인들과 함께할 기회가 없었고, 내게는 그들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눈에 띄지 않는 존재이거나 어쩌다 가끔 스치는 풍경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동안 장애 관련 진정 사건들을 다루면서 장애인과 함께 한 시간도 공감의 경험도 없는 사람이 조사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를 고민했다. 그런 내게 장애인 관련 진정 사건을 조사하는 일은 내 머리와 마음과 몸의 불일치를 극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조사에 착수했다.


"정신지체 장애인이라 6급 업무 수행 힘들다"

조사 과정에서 학교로부터 대학 내 사서직원의 현황, 근무성적 평정표, 승진후보자 명부, 보통승진심사위원회 회의자료 등을 받았다. 총무과 직원과 평정자 등도 만났다. 진정인은 지속적으로 거의 꼴찌의 평정점수를 받고 있었다. 다른 직원의 경우 7급이 된 지 평균 9년 반이 지나면 6급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진정인은 20년간 7급 직에 고정돼 있었다. 진정인을 제외하고 7급 직에 가장 오래 근무한 직원의 경력이 10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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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이우일

20년이나 승진이 이뤄지지 않은 진정인의 예외적인 상황에 대해 학교 관계자 그 누구도 적절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최하위의 평정점수를 준 평정자도 진정인의 업무능력이 특별히 떨어진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승진 여부는 자신이 판단할 사항이 아니라고 비껴갔다. 별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장애인이란 이미 그 장애로 인해 예외성을 인정받은 존재일까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승진심사위원회의 1999년 회의록을 검토하다가 당시 도서관장이 보통승진심사위원회 위원장에게 말한 대목을 발견했다. 진정인이 정신지체 장애인이기 때문에 7급의 업무는 할 수 있어도 6급의 업무는 수행하기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2000년에는 진정인이 승진 후보자 1순위였는데도 참석한 위원들이 도서관의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하여 승진에서 배제된 사실도 확인했다.

뇌성마비 장애인인 진정인은 정신지체 장애인이 되어버렸고, 결국 진정인은 승진 후보자 1순위인 상황에서도 승진에서 제외됐다. 장애의 유형과 특성에 대한 철저한 무지 혹은 의도적 왜곡이었다.

장애인에 대한 인사를 행하려면 인사권자를 비롯한 인사 관련자들은 장애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장애를 가진 이의 능력을 비장애인의 눈으로 판단하고 평가하기 이전에 최소한 장애에 대해 기초적인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조사과정에서 알아가게 되었다.

진정인의 동료 직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진정 건이 장애에 대한 무지와 편견 속에서 관행으로 굳어진 차별적 인사의 한 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동료 직원들은 진정인의 업무수행 능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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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이우일

11월 16일, 국가인권위는 이 사건에 대해 부산대학교가 진정인에게 지속적으로 낮은 평정점수를 주고, 승진에서 누락시킨 행위를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이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밝히고 있다. 또한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을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법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는 장애인 공직임용 확대방안을 마련하고 '장애인공무원인사관리지침'을 제정하여 고용뿐만 아니라 고용 이후의 승진 등에서도 장애인의 불이익을 최소화하려는 제도적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제도적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기관에서 개별적으로 시행되는 평정과 승진 등의 심사 과정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에 국가인권위는 차별행위의 중단과 재발방지를 위하여 대학의 근무성적평정지침 등에 실효성 있는 장애인차별금지조항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드디어 해냈구나!'

이런 순간은 조사관으로서 참으로 가슴 뿌듯한 시간이다. 밀려드는 사건을 처리하느라 쫓기다 보면 개별 사건마다 애정을 갖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애정 없이 약간의 지식과 관성만으로 타인의 가슴아픈 사연에 개입한다는 것은 나와 남을 동시에 지치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 일인 듯하다.

꿈같은 사회를 꿈꾼다

당위와 상식으로 꿈꾸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 없는 사회, 그러나 아직도 장애인은 내게는 너무나 멀고 낯선 존재다. 내 안에 존재하는 이 관념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데, 또 한편으로는 관성화 되어가는 조사관이란 업무, 이 불편한 공존을 힘들어하면서도 이 사건의 결론은 나를 기쁘게 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내 안의 불편함을 넘어 내가 좀더 변화할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품는 계기가 됐다.

인권은 지식을 필요로 하지만, 마음 속 감수성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에 비춰 보면 나는 아직 인권을 실천하기보다는 감수성의 메마름을 치유하는 과정에 있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래서 내 직업이 그런 치유의 도구가 돼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사관이란 업무를 받아들이려 한다. 그래서 장애인들이 조사대상은 될지언정 아직까지 친밀한 친구가 되지는 못하는 이 불편한 간격을 극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함께 '장애인'이라는 단어도 거론할 필요가 없는 사회, 위가 아프고 안 좋은 사람, 만성적으로 두통에 시달리는 사람 등과 마찬가지로 다리가 불편한 사람, 정서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육체적·정신적 차이들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고, 그래서 서로 처지에 따라 배려하고 존중받아 행복한 그런 꿈 같은 사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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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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