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근
작가는 작품을 쓰면서 등장인물의 이름을 짓게 마련이다. 이때 작명하는 하나의 철칙이 있다면 실명을 등장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명을 쓰게 되면 상상력이 위축될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고소 고발의 후유증마저 따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원칙을 충실하게 지켜 왔지만 창작집 <은행나무 사랑>에서만은 유일하게 한 사람의 실명을 밝혔다. "그의 이름은 이근안보다 더 잔인한 고문 기술자 이OO였다"고.
1984년 난 대전교도소 지하실에서 그로부터 이른바 '비녀꽂기' 고문을 당했다. 보안과장 면담을 신청했는데 이OO 부장이 면담을 시켜주겠다며 어두컴컴한 지하실로 데려갔다. 작은 키에 뱀눈처럼 소름끼치는 눈빛을 지닌 그는 다짜고짜 내 손목에 수갑을 채우더니 포승줄로 손목을 친친 묶었다. 묶은 두 손을 머리 뒤로 젖혀 빼내어 줄을 당기자 등이 활처럼 휘어지고 팔은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줄을 당기는 데 힘이 부치자 조수인 '조폭' 출신 수용자 한 명에게 힘을 보태게 했다.
당긴 포승줄을 엉덩이와 사타구니 쪽으로 뽑아 다시 몸을 한 바퀴 감은 뒤 허리에 묶어 단단하게 고정시키자 금세 어깨 인대가 엿가락처럼 쭉 늘어나면서 어깨가 찢어지고 쇄골이 으스러지는 듯 격심한 통증을 느꼈다. 어깨와 등줄기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0.1초 간격으로 찾아와 마치 한 시간이 1년처럼 느껴졌다.
난 그의 발밑에서 덫에 걸린 짐승처럼 뒹굴며 괴로운 비명을 지르다, 나중에는 "부장님, 잘못했으니 제발 좀 풀어 주세요!"하고 눈물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애걸했다. 그래도 그는 풀어 주지 않은 채 냉정하게 지하실을 나가 버렸다.
난 텅 빈 지하실에서 무려 두 시간 동안 땅바닥을 뱅글뱅글 뒹굴며 쉰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살려 달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제서야 비명을 들은 다른 담당이 달려와 나를 풀어 주었다.
이 끔찍한 고문을 겪은 후 가족 면회 때 비인간적인 비녀꽂기 고문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당시 인권운동을 하던 이태복씨가 찾아와 교도소 소장에게 고문에 대해 항의했다.
그러자 이OO는 나에게 찾아와 일절 고문을 당한 사실이 없다는 거짓 진술서를 강제로 받아갔고 그 뒤 다시 나를 지하실로 데리고 가더니 두번째로 비녀꽂기 보복을 가하는 잔인함을 보였다. 그 때의 절망감이라니. 그러나 용기를 내어 면회를 통해 외부로 이 사실을 알렸고 부산에서 송기인 신부가 와서 고문에 대해 항의했다. 그러자 교도소 측은 고문한 적이 없다고 다시 부인한 뒤 날 대구로 이감시킴으로써 상황은 종료되고 말았다.
난 출소하고 작가가 되었다. 간간이 이OO 부장에 대한 복수심이 타올라 직접 대전으로 찾아가려고도 했지만 글 쓰는 일로 바빠 번번이 그만두고 말았다. 그리고 난 1997년 다시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으로 대구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이OO 부장을 옆에서 도와주던 박아무개라는 수용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 박아무개는 소위 '꼴통' 짓을 하다가 이OO의 '비녀꽂기'에 걸려 들어 항복한 뒤 그의 하수인이 되었다고 한다. 박아무개는 그때 줄을 당기고 사려 준 것이 미안했다고 사과하며 비녀꽂기 고문의 실체에 대해 말했다. 자신이 고문을 거들어 준 경우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데 하물며 이OO에게 직접 고문을 당한 수용자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난 그 사람 행방에 대해 물었다.
"퇴직했지요. 그런데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교통사고로 죽었다더군요."
옛말에 법이 악을 징벌하지 않을 때 하늘에서 천벌을 내린다고 했던가. 그때의 고문 후유증으로 오른쪽 어깨가 망가져 지금도 글을 쓸 때마다 격심한 통증을 느낀다. 특히 긴 글을 쓸 때는 어깨에 파스를 몇 개나 갈아 붙이며 써야 한다.
그리고 지금도 간혹 소름끼치는 '비녀꽂기' 고문을 당하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벌써 20년도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초자연적인 인과응보의 시스템만에만 의존해야 하는 인권 사각지대는 없는지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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