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동지, 잘 가시게나"

민주통일지사 고 이재형 선생 민족민주장 치러

등록 2004.12.27 02:04수정 2004.12.3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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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 이재형 선생 영결식장에서

고 이재형 선생 영결식장에서 ⓒ 한은영

슬픔을 무너뜨리며 기러기 떼 옵니다.
푸른 문장의 시를 읽으며 기러기 떼 옵니다.
더운 삶 시린 사랑을 찾아
북국의 얼음 감옥을 뛰쳐나온 기러기 떼 오는데
투쟁가를 부르던 절벽의 시절 만나러 가셨습니까
캄캄한 조국, 서러운 시대의 질문이
삼각파도로 달려들던 혹한의 70년대,
총칼로 세운 군사독재 괴뢰정권의 만행
유신 파쇼의 폭설을 기억합니다.
먼 구름 눈보라 비바람 우레 불러 격문을 쓰고
시대의 절망을 벼리어 힘을 키워서
비겁한 시대의 정곡을 아찔하게 찔러버린
그 이름 추사체로 늠름한 낙락장송 같습니다.
...

시근머리 없는 세상 귀싸대기 후려치던
붉은 그 음성 다시 들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이 땅의 쇠북이 목놓아 웁니다.
붉은 기 토하며 쇠북이 웁니다.

- 이중기 시인의 조시 <쇠북이 운다, 쇠북이 운다> 중에서


지난 24일, 흩날리는 눈발 속 경북 칠곡의 현대공원묘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망자의 무덤 앞에서 나즈막히 노래를 읖조렸다.

"재형이, 이 친구야! 그리 먼저 가니 속이 편하냐? 함께 하자고 할 땐 언제고…. 그래도 이재문, 여정남이 하고 만나니 좋겠구먼. 조금만 기다리게 금세 따라감세."

지병인 폐암으로 고생하다 지난 21일 세상을 달리한 고 이재형(66) 선생이 한줌의 재가 되어 칠곡 현대공원묘지에 묻혔다.

고 이재형 선생은 1960년대 4·19 민주혁명을 주도하고 굴욕적인 한일수교회담 반대투쟁에 앞장서는 등 질곡의 한국 현대사 한가운데에서 독재와 반민주에 저항했던 분이다. '사법살인'으로 8명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인혁당 재건위' 조작 사건으로 20년형을 선고 받고 8년 동안 복역했던 고인은 민족민주운동의 '큰 어른'이셨다. 하지만 그렇게도 바라던 통일과 명예 회복의 날을 끝내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a 경북대 4·19열사 추모비 앞에서 노제를 지내고 있다.

경북대 4·19열사 추모비 앞에서 노제를 지내고 있다. ⓒ 한은영

24일 오전 8시 대구파티마병원, 고 이재형 선생의 영결식에는 전국 각지의 민주인사와 선후배, 동기들이 한자리에 모여 떠나는 망자의 넋을 기렸다.

추도 묵념이 끝난 후 이어진 추도사에서 서정복(4월 혁명회)씨는 "4월 혁명 세대로 식민지 조국에 태어나 민족과 민중 해방이라는 역사의 숙명을 짊어지게 되었던 것은 우리가 가야할 당연한 길이라고 말했던 자네. 22년 전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끝까지 가자'"고 맞잡던 손과 미소가 아직 느껴진다. 무거운 역사의 짐을 넘기고 편히 가시게. 잘 가시오. 그리운 사람. 자랑스러운 동지"라며 말을 끝내 잇지 못했다.


이어서 서훈(전 한나라당 의원)씨도 "현대학생운동사의 선구자로 이승만 정권 시절 2·28 학생의거, 4·19민주혁명, 6·3한일회담 반대, 3선개헌 반대, 유신철폐 등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한가운데 있었다"며 "남북 통일과 민중이 잘사는 세상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형님의 말과 행동은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평생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살아온 고인의 넋을 기려 민족민주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은 파티마병원에서 영결식을 치르고 경북대학교 대강당 앞 이재문·여정남 추모비(인혁당 사건으로 사형 당함)에서 노제를 지낸 후 만촌동 화장장으로 향했다. 한줌의 재로 변한 고인을 본 가족과 선후배들의 울부짖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아프게 했다. 고인의 유해는 바로 영천 자택으로 발길을 돌려 노제를 지낸 후 경북 칠곡군의 현대공원묘지에 안장됐다.

고 이재형 선생 민족민주장의 호상을 맡은 임구호(58)씨는 고인에 대해 "당시에는 3선개헌 반대운동, 4·19민주혁명 등 초보적 수준의 민주화 운동도 워낙 당국의 탄압이 거세 지하 운동하듯이 했다.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후배들을 만나 격려하고 힘을 줬던 선배가 바로 고인"이라고 회고했다. 임씨는 또 "그의 삶은 민주, 평화, 통일 그 자체였다. 후배가 바른 길을 가지 않으면 호되게 꾸짖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 진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a 유해가 안치된 칠곡 현대공원묘지

유해가 안치된 칠곡 현대공원묘지 ⓒ 한은영

고인과 가까이 지냈다는 함종호(전 민주주의민족통일대구경북연합 의장)씨는 "대구경북 민주통일운동가들의 마음의 고향이자 4월 혁명부터 6·10항쟁까지의 주도적인 운동가들의 인적 가교 역할을 한분"이라며 "통일 조국에 대한 선생의 열망은 상투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화된 진정성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말했다.

밝은 거울과 정지된 물처럼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리라고 늘 다짐했다는 고 이재형 선생. 굴곡 많은 현대사의 산증인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삶은 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는 듯했다.

"통일을 소원하고 민주를 말했던 놈들아! 다시 뭉쳐라."

고 이재형 선생

▲ 고 이재형 선생의 생전 모습

■ 출생 및 학력
- 1938년 7월13일 경북 상주 출생
- 1958년 경북고등학교 졸업
- 1964년 경북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 1967년 경북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민주 통일 운동 경력
- 1960 4.19 민주혁명 학생시위 주도
- 1960 4.19 민주혁명후 혁신정당 참여 / 2대악법 (국가보안법, 집시법)반대 투쟁 주도
- 1965 굴욕적인 한일 수교회담 반대투쟁 참여
- 1969 3선개헌 반대투쟁 참여
- 1974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구속(징역 20년 선고, 8년 복역)
- 2004년 현재 4월 혁명회 회원, 경북대 민주동문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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