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리에 적힌 아버님 성함장승현
두루마리에 적힌 아버님 성함
"통장에 남은 것 보니께 돈이 많이 남아 있는디. 환갑 안 넘은 사람이 여기 보니께 4명밖에 없어요. 여기 모이신 분들이 다들 환갑 넘으신 분이니 이 돈 뒀다가 뭐할규? 내년부텀 노인네들 관광이나 보내주자고요. 나중에 모자라면 젊은 사람들이 걷으면 되고요."
항상 입 바른 말 잘 하는 봉현이형이 화두를 꺼냈다. 다들 찬성이었고, 30명 중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사자라 아무 발언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내년에는 이런 식당에서 모이지 말고 돌아가면서 옛날처럼 집에서 음식 좀 푸짐하게 준비합시다. 동네 안안팍이 다 모여야지. 한 집에서 한 사람씩만 이렇게 참석하라고 하면 이게 무슨 동네 계에요."
"일년에 한 번씩 동네 사람들 다 모여 술 한 잔 하는 건데. 식당에서 모이니까 이렇게 인심이 없어져요."
모인 시간이 아침나절이었는데도 벌써부터 소주잔이 돌아갔다. 술안주가 모자라니, 점심 밥때가 너무 이르다니, 몇 마디를 하자 주문하지도 않은 밥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골의 긴 겨울날 농사를 다 지어놓고 겨우내 하는 일들이 이런 일들이었다.
얼마전에는 동네 형들이 고기를 잡는다고 경운기, 트랙터 등을 동원해 냇가를 막아 물을 품어 고기를 잡기도 했다. 조금 날이 더 추워지면 삽자루를 들고 독막골이나 절골로 미꾸라지 잡으러 다니겠지? 요즘은 나무할 일도 없고, 텔레비전이 낮에도 나와 옛날처럼 사랑방에 모여 앉아 있을 시간도 없다. 옛날에는 겨울에 어른이든 아이든 사랑방에 모여 만나기만 하면 노름이든 뭐 사먹기 뽕이든 화투를 많이도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풍경들도 없어져 가고 있었다.
앞으로 5년만 지나도 우리 동네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아니 10년이면 우리 동네는 모두 빈집이고,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동네가 될 텐데. 이런 계도 없어지고, 동네 사람들이 정겹게 만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하긴 지금도 결혼식장이다, 장례식장이다, 집에서 하는 큰일은 거의 없다. 그러면 그릇도 필요 없고 그걸 쓰는 사람도 없어지니 우리들의 전통적인 이런 계야말로 사라져가는 풍경 중에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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