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첫 눈이 왔어요!

등록 2004.12.29 17:56수정 2004.12.30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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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눈이에요~ 눈! 신난다!!

눈이에요~ 눈! 신난다!! ⓒ 임미옥

오늘 오전부터 도쿄에 첫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3시인 지금도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여간해서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없는 도쿄에서 쌓이는 눈을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엄마, 지구 온난화 때문에 눈을 보기가 힘든 건가요?"

무슨 일이든지 학문적으로 해석하기 좋아하는 책벌레 큰 딸 아이의 물음에 헛웃음을 보냈던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6년째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겨울에 눈을 볼 수 있었던 해는 올해로 4번째, 매년 볼 수 있는 눈도 아니고 겨우내 몇 번씩이나 볼 수 있는 눈도 아니라서 우리집 아이들은 유난히도 눈을 반기며 바깥으로 튀어 나갑니다.

a 눈사람의 키스신 보실래요?

눈사람의 키스신 보실래요? ⓒ 임미옥

눈덩이를 뭉쳐서 던지기도 하고 눈사람도 만드는 아이들.

"엄마! 이것 보세요~ 겨울연가 눈사람이에요"


<겨울연가>에서 남녀 주인공이 작은 눈사람 두 개로 키스 신을 연출하던 장면을 아이들이 흉내내고 있었습니다. 눈사람을 만들면서 아이들은 제일 먼저 '눈사람 키스 신'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어디 우리 아이들 뿐이겠습니까?

아마도 지금 이 시간, 일본의 많은 아이들과 연인들이 눈사람을 만들며 한 번쯤 <겨울연가>의 한 장면을 흉내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눈발이 제법 굵어지면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하는 것을 오랜만에 보고 있노라니 어른이나 애나 동심으로 돌아가는 듯합니다. 눈이 내리는 모양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건 왜 일까요?

"엄마 아빠도 보셨어요? 눈이에요 눈!"

학원에 갔다 돌아오는 작은 아이의 들뜬 목소리가 인터폰을 통해 크게 울려 옵니다. 눈이 내리는 것이 좋아서 폴짝폴짝 뛰어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강아지의 행동은 사실 색맹이라서 그렇다고 하던데, 우리집 커다란 강아지(?)들은 색맹도 아니면서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이렇게 눈이 오는 날엔 친구를 불러서 같이 놀아야 하는 거 아녜요?"
"그러게 그렇지 않아도 넌 친구도 없냐고 물어보려던 참이닷!"
"그럼 친구들하고 놀아야겠다."

창 밖에 푸짐하게 내리는 눈을 보며 같은 생각을 했던 남편과 큰딸의 대화를 들으며 언뜻 연애 시절, 남편과의 데이트가 떠올랐습니다.

"첫 눈이 내리면 만나기로 약속하던 그 찻집 이름이 뭐였더라? 그 때 흐르던 음악은 그래! '나자리노'였지, 아마?"

나 혼자 옛 추억을 회상하며 잠시 생각에 잠긴 것도 잠시. 부산스럽게 드나들며 이것저것 요구해대는 딸내미들 시중 드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엄마, 고무장갑 좀 바짝 위로 당겨 주실래요?"

털장갑이 젖어서 안 되겠다고 들어 온 딸아이에게 작업용 피수갑(면장갑)을 끼게 하고 부엌용 핑크색 고무장갑을 덧씌워 주었더니 손도 젖지 않아 아주 안성맞춤 입니다.

우리집에 놀러 온 큰아이의 친구 미키도 같이 눈사람을 만들고 놀았습니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눈사람 만드는 줄 알면 엄마가 가지 말라고 했을 거라며 놀고 있는 미키의 얼굴은 즐거움에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더군요.

좀처럼 그칠 낌새를 보이지 않는 눈발이 조금 가늘어 지고 질척한 아스팔트 길을 가르는 자동차 소리가 잦아지면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 했습니다.

첫 눈이 내린 하루의 소란함도 따스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커튼 뒤로 숨어 버렸습니다. 매년 어딘가 반드시 첫 눈은 내리고, 첫 눈과 더불어 따스한 추억이 만들어지고 있겠지요. 하얗게 쌓였던 눈이 녹아 내릴 땐, 한결 더 맑은 눈으로 맑아진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a 눈오는 동네 풍경

눈오는 동네 풍경 ⓒ 임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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