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녀석들 키우려면 칠십까지 일해야겠어요"

오십이 가까워지는 후배 부부에게 딸 둘이 생겼습니다

등록 2004.12.29 18:44수정 2004.12.3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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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여자 아이 둘이 생겼습니다


한 후배가 내게 여자아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생각을 털어 놓은 것은 서너달 전쯤이었다.

"언니, 내가 여자아이를 데려다 키우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여자아이를? 입양하겠다고?"
"응.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일이야. 현구도 이제 다 커 대학엘 들어갔고, 생활도 이만 하면 여유 있어 졌으니 가여운 아이 데려다 예쁘게 키우고 싶어. 현구와 남편 승락도 받아 놨으니 준비는 끝났거든."

후배의 말을 들으니 이미 결심은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후배의 그 어려운 결심에 나는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조건이 충족된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제 새끼도 키우다 보면 내쫓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하물며 남의 자식이야. 한 사람을 바르게 성장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을 요구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키우고 싶은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 그래도 이 문제는 심사숙고 했으면 좋겠다. 입양보다 위탁모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 정도로 얘기를 끝냈는데 얼마 후 후배에게 한꺼번에 딸이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생겼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는 너무 놀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5살, 6살 여자아이에 맞는 옷을 사들고 후배 집으로 달려갔다.

현관 문을 여니 계집아이들의 재재거리는 웃음소리가 집안에 떠들썩했다. "어머, 이모 오셨네. 얘들아, 우리 이모한테 예쁘게 인사해야지?" 제 엄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두 놈이 쪼르르 달려와 머리가 땅에 닿게 인사를 한다.


부모에게 버림 받은 아이들, 그들이 갈 곳은

갸름한 얼굴에 뽀얀 피부. 6살짜리 언니는 곱상한 외모에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고 반면에 둘째는 쭉 째진 눈꼬리에 짱구 머리, 한눈에도 고집이 보통 아니게 생긴 아이였다.

"아이구, 우리 이쁜 새끼들. 이모가 너희들 옷 사왔는데 입어 보자."

선물꾸러미를 펼쳤더니 두 놈이 내게 매미처럼 달라 붙어 좋아라 야단이었다. 이 집에 온 것이 불과 20일도 안됐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노래 테이프를 틀어 놓고 신나게 뛰는 녀석들을 바라보는 후배의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처음 입양 의사를 털어 놓았을 때 정색을 하고 만류했던 내 행동이 생각나 무안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언니, 작은 놈은 20일 전에 데려왔고 큰 놈은 일주일도 안됐어. 우리 부부가 양부모 나이 커트라인에 걸려 연말 안에 서둘러 데려왔다우. 처음엔 현구와 현구 아빠가 어떻게 나올까 걱정됐는데. 웬걸? 나보다 한수 더 떠. 쟤들 아빠는 딸들 생기고 세상이 다 새롭게 보인데. 딸 보고 싶어 일 하다가도 뛰어 들어오고. 저것들은 아빠 바지가랑이에 매달려 가지 말라고 떼를 쓰고…. 우스워 죽겠다니까."

두 놈은 어린 아기 때 길거리에 버려진 기아였단다. 부모도 모른 채 시설에 들어와 이만큼 자랐는데 그 중에도 둘째 놈은 2번이나 입양이 됐다가 얼마 못가 돌아왔다니 어린 마음에 박힌 상처가 얼마나 깊었을까.

"세상에…. 입양했다 마음에 안들면 반품하듯이 돌려 보내니?"
"응, 그렇데. 수녀님도 나 보고 키우다 힘들면 언제든지 다시 데려오라고 하시더구만. 입양 부모들이 아무래도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를 선호하나 봐. 그런데 저 놈은 아주 꼴통이거든. 하하하. 우리는 그래서 더 귀엽고 매력적인데, 다른 사람은 그걸 몰라 봤나 봐. 저 놈이 다른 집에 있을 때는 한번 울면 2시간을 울었다는 거야.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 집에 와선 한번도 안 울더라니까."

외롭게 자라 상처가 많은 아이들이 낯선 사람과 한 가족이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어떤 아이는 무려 1년 만에 되돌아 오기도 했단다. 1년이 다 되도록 엄마 아빠 소리도 안할 만큼 적응이 안됐던 것이다.

작은 놈도 처음에 와서는 수시로 깨고 잠을 못 이룰 만큼 불안해 하더란다. 잘 놀다가도 괜히 비죽비죽 눈물을 비치고 행여 다시 보내질까 봐 산책에 데려 가려 해도 자지러지게 싫다고 떼를 쓰고 했단다.

"저 놈이 얼마나 재미있는 놈인줄 알아? 우리 식구들은 아침을 생식으로 하거든. 그래서 저 놈에게도 우유에 생식을 타서 주었지. 한 그릇 뚝딱 마시더니 혼자서 중얼거리데. 이 집은 아침을 안 먹나? 하하하."

속 깊고 눈치가 빠른 큰 놈은 이 집에 계속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아는 것 같았다. 제 밥그릇은 개수대로 달려가 잽싸게 물 부어 놓고, 장난감도 알아서 제 자리에 깨끗하게 정리 정돈해 놓는단다.

"작은 놈은 급하면 아줌마, 아저씨 소리가 절로 튀어 나오는데 큰 놈은 온 지 며칠 안됐어도 한번도 실수를 안했다우. 꼭 엄마 아빠라 부른다니까. 눈치껏 행동하는 게 너무나 안쓰러워 수시로 꼭 껴안아 준다니까. 수녀님도 1년 동안 만큼은 엄마 아빠가 품에 안고 자라고 신신당부 하시데."

천진난만하게 웃고 떠드는 두 놈을 보니 복이 많은 아이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제 친부모에게서도 학대 받고 버림 받는 아이들이 숱한 세상인데 하늘에서 준 복이 아니라면 어떻게 저런 부모를 만날 수가 있을까?

자식에게 베풀지 못한 사랑을 그 아이들에게

후배 부부는 농민 운동가였다. 농사라곤 구경도 못해 본 서울 토박이들이 오로지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 하나 믿고 농촌 생활을 시작한 것이었다.

제 땅 하나 없는 생초보 소작농의 결실이란 게 뻔한 거였다. 고추도 심어 보고 참외, 수박 농사도 지어 보고…. 사이사이 품팔이를 하며 이웃과 어울려 지냈던 세월. 보람도 많았지만 고생은 말할 수 없었다.

이들은 갓난 아들은 어려서부터 이 집 저 집 되는 대로 맡겨져 키워졌다. 엄마 아빠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자란 아들 놈이니만큼 자라는 과정에 닥친 위험도 수없이 많았다.

놀다가 혼자 담벼락에 기대어 잠들기도 했고, 재래식 화장실에 빠질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다 한번은 사용하지 않아 쌀자루로 뒤집어 씌워 놓은 우물 위에 올라가 조금 늦게 발견하면 우물에 빠질 뻔한 위기도 겪었단다. 그러니 후배 부부의 가슴이 얼마나 새까맣게 탔을까?

이렇게 자라 헌헌장부가 된 아들놈을 바라볼 때마다 후배는 늘 미안하고 감사했단다. 아들에게 주지 못한 사랑, 방치돼 혼자 자란 아들에 대한 미안함. 그 마음의 빚을 아들보다 더 가여운 다른 아이들을 돌보는 것으로 갚고 싶겠지.

유기농 농산물을 가공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하는 사업을 활발하게 운영하는 후배 부부. 정직하고 성실하게, 언제나 고통 받는 이웃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언제나 행복하다.

두 딸을 양쪽 가슴에 안고 후배의 남편은 함박웃음을 웃었다.

"아이쿠야, 딸들 안아 주려면 아빠가 밥 많이 먹고 기운이 세져야겠다. 형수님 딸들 잘 키워 독립시키려면 아무래도 칠십까지는 열심히 돈 벌어야지 은퇴는 꿈도 못꾸겠어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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