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현혹하는 '짝퉁' 역세권

등록 2004.12.30 09:05수정 2004.12.3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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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 기자] 역세권은 부동산에 대한 수요를 끌어 들이고, 가격을 높이는 요인이다.

부동산 공급자들이 역세권을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는 이유다. 그러나 `짝퉁` 역세권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역세권 밖인데도 불구, 역세권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어떤 곳에선 역세권이 오히려 수요와 가격을 떨어 뜨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역에서 나오는 소음과 먼지 때문에 역과 가까운 단지의 가격이 오히려 떨어지는 기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짝퉁 역세권〓"20분 걷는데도 역세권인가요?"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심심찮게 듣는 소리다. 역세권이라는데 정작 역과 거리는 걸어서 20분이 넘기도 한다. 도보 10분이라는데 실제 걸어 보면 20분이 넘는 곳도 있다.

과연 역세권은 어느 정도 범위를 말할까?

국어사전은 역세권을 철도나 지하철 역을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주변 거주자가 분포하는 범위라고 설명한다. 역의 영향이 미치는 범위라고 보면 된다. 도시계획상으로는 보통 500미터 이내로 한정한다. 500미터는 차를 이용하지 않고 사람들이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라는 계산에서다.

이 때문에 정부나 지자체에서 도시계획을 짤 때 역에서 500미터로 범위로 역세권을 한정해 적용한다. 역에서 이 정도 거리를 벗어나는 곳을 역세권으로 보기는 곤란하다.

500미터 안 역세권이라는 데도 소비자들을 황당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도로에 막혀 길이 끊기거나 다른 건물에 가로 막혀 돌아가면 실제 500미터가 넘는 곳도 흔하다. 역세권은 현장에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불량 역세권〓모든 역세권 아파트 값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아니다. 1호선이 지나는 지역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다. 서울시내 229개 역세권 가운데 평당 가격이 가장 낮은 곳이 1호선 주변이다.

한 부동산 정보제공업체에 따르면 1호선 신설동역 주변은 평당 평균 425만원, 오류역 주변은 483만원 수준이다. 거주외 유동인구로 인한 소음과 먼지가 역세권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같은 단지 안에서도 역에 인접한 곳보다 단지 후면에 배치된 곳이 높은 값에 거래되기도 한다. 지상의 철도에서 나오는 굉음과 먼지 때문에 역과 멀수록 인기가 높은 것이다. 예컨대 지하철 1호선 창동역에 인접한 A아파트는 동과 위치에 따라 수천만원의 가격 차이가 난다. 개봉역 인근 H아파트도 철로변 가구는 다른 가구에 비해 평균 500만원 이상 가격이 떨어진다.

재건축한 2호선 당산역 인근 S아파트의 분양권 값은 역과 가까운 동이 다른 단지에 비해 500만원 남짓 높았지만 입주를 앞두고는 오히려 안쪽 단지가 100만원 이상 높은 값에 거래되기도 했다.

가격을 움직이는 입지의 대명사 '역세권'

"***역에서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신 역세권 아파트로 교통이 편리합니다."

아파트, 주상복합, 오피스텔을 분양하는 광고나 기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다. 역세권이란 말이 없으면 뭔가 빠진듯한 인상까지 줄 정도다.

지하철 역과의 거리를 강조하는 문구가 부동산 광고에 매번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부동산, 특히 집을 고르는 데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살펴보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역세권이냐, 아니냐가 수요를 가름 짓는 잣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역세권의 가치는 가격이 웅변한다. 건설사들은 역세권이라는 말 하나 더 붙여 수천만원을 더 부르고, 소비자들은 역세권을 차지하기 위해 수천만원을 더 지불한다. 수요와 가격에 영향을 주는 입지의 대명사로 역세권이 힘을 뻗치고 있는 것이다.

입지는 곧 역세권〓부동산을 고르는 데 입지는 가격보다 우선한다. 상가의 경우 입지에 따라 보증금 임대료 프리미엄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상가주인의 경영 노하우에도 있겠지만 `장사는 목`이라고 하듯이 위치가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배경이다.

주택역시 마찬가지다. 소비자들은 보통 직장이나 학교, 기타 편의시설까지 거리를 먼저 따져보고, 가격은 적합한 지 살펴본다. 입지가 떨어지면 가격이 싸도 소비자들은 지값을 열지 않는다.

입지를 좌우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바로 교통여건이다. 이 가운데 지하철과의 거리를 말하는 역세권은 입지의 열악을 좌우하는 대표적인 요소다. 집으로부터 직장이나 학교까지 거리를 재는 데 지하철 역이 일종의 잣대가 된다.

지하철 역까지 얼마나 걸리느냐가 입지의 뛰어남과 열악함을 결정한다. 자연스레 직장, 학교, 각종 편의시설과 쉽게 닿을 수 있는 지하철 역을 끼고 있는 아파트에 수요가 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역세권 아파트에 수요가 몰리는 현상은 무엇으로 입증할 수 있을 까. 가격이 대변한다.

한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조사에 따르면 최근 서울지역 지하철 역세권과 역세권 밖 아파트 값을 조사한 결과 30%의 가격 차이가 벌어졌다. 역세권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는 평균 1305만원인 반면 역세권 밖 아파트는 평당 평균 1007만원에 그쳤다.

32평(전용면적 25.7평) 짜리 아파트를 기준으로 하면 역세권 아파트 값은 평균 4억1760만원, 역세권 밖 아파트는 3억2224만원으로 9536만원의 차이가 난다. 역세권 아파트값(평당 1305만원)은 서울내 전체 아파트 평균값(평당 1126만원)보다도 평당 평균 179만원 비싸기도 하다.

역세권이라도 가격 차이는 크다. 주변 입지와 더불어 가격이 배가 되기도 하고, 반쪽이 나기도 한다.

서울내 역세권 가운데 아파트 평당 분양가격이 가장 높은 곳은 2호선 신천역 역세권으로 서울 지역 평균가격의 2배 수준인 3813만원 수준이다.

32평형 기준으로 한티역 역세권 아파트값은 평균 11억4240만원으로 역세권 밖 32평짜리 아파트 값(평균 3억4208만원)과 비교해 무려 약 3.4배의 차이가 벌어진다. 물론 한티역을 끼고 있는 진달래, 개나리, 도곡주공 아파트 등은 역세권 값보다 재건축에 따른 가격상승 기대감이 더 크게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속철도도 역세권?〓"길이 뚫리는 곳에 사람이 드나들고, 사람이 드나드는 곳에 돈이 따른다."

사람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도시가 생겨나고, 도시에 돈이 모이는 현상은 고속철 주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천안ㆍ아산이 대표적인 곳이다. 천안ㆍ아산시는 기존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생겨난 도심의 중심이 고속철도 주변으로 이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천안ㆍ아산역 주변으로 천안시청을 비롯해 아파트 단지가 급속히 모여 들고 있다.

이런 현상은 오는 2020년이면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고속철에서 가까운 탕정ㆍ음봉ㆍ배방면 일대 800만평에 대규모 신도시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고속철도 충북 오송역 주변도 고속철로 인한 수혜를 보고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고속철 오송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조성되는 오창과학산업단지와 오송보건의료과학단지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행정수도 이전과 맞물려 폭발적이었다. 오창 단지에서 동시분양으로 공급된 5000여 가구의 아파트가 초기 분양을 마감한데는 고속철의 도움이 컸다.

그렇다면 고속철도 역도 입지의 좋고 나쁨을 좌우하는 역세권으로 볼 수 있을까?

광의의 역세권으로 얘기할 수 있다. 다만, 지하철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 정도까지만 영향을 주는 반면 고속철은 차로 이동하기에 멀지 않은 몇 킬로 범위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다르다. 즉, 영향의 범위만 다를 뿐 역세권의 효과는 같은 셈이다.

국토연구원 조남건 박사는 "고속철도가 역세권을 중심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잠재력은 가지고 있다"며 "하지만 연계 교통망과 비용 등이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면 이용 인구가 적고, 이렇게 되면 당초 예상했던 역세권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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