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협자 예수 - 87회

11부 심판

등록 2004.12.30 12:51수정 2004.12.30 15:46
0
원고료로 응원
총독부에서 서둘러 유다스의 시체를 치울 무렵에 카이아파스 일행이 호세아를 다시 압송해 총독부를 방문했다. 필라투스는 안티파스가 죽이지 않은 것이 내심 다행으로 여겼으나 호세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희들로서는 총독 각하께서 무엇을 왜 고민하시는지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카이아파스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필라투스는 굳어진 얼굴로 카이아파스를 노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팔레스티나에는 많은 소문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저 죄수에 관한 소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문이란 것이 대부분 신빙성이 없고 논할 가치도 없는 것이지만 그 중 일부의 소문은 현실에 비추어볼 때 진실성을 의심해 볼 만한 것은 있습니다."

필라투스의 얼굴이 사나워졌다.

"어서 말하라."
"소문 중에는 이런 소문이 있었습니다. 저 죄수가 로마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총독부와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카이아파스는 말을 잠시 끊고 필라투스의 눈치를 한 번 본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이 조금이라도 많이 모였다가는 바로 로마군이 출동하곤 했는데 저 죄수의 경우 한 번도 로마군이 출동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 죄수와 총독 각하 사이에 모종의 계약이 있다는 헛소문을 퍼뜨리더군요."


필라투스의 이마에 핏발이 서자 카이아파스는 얼른 말을 매듭지었다.

"어차피 저 자는 왕을 자칭했고 황제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저런 죄수는 바로 사형시켜야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총독께서 머뭇거리시니 저희들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카이아파스가 이렇게 말하자 필라투스로서도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호세아가 인재라고는 하지만 자기의 정치 생명까지 걸고 지켜야 할 인물은 아니었다.

필라투스는 부관을 돌아보고 대야에 물을 떠오라 지시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부관이 물을 떠오자 필라투스는 조용히 손을 씻고는 사제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저 자와 아무 상관이 없다. 저 자에 대한 소송건에서 나는 손을 씻을 테니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

사제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필라투스는 법정을 나가다가 호세아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때 호세아는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미소는 너무나 기묘해서 필라투스가 평생 잊을 수 없는 미소였다.

즐거운 것 같기도 하고 슬퍼하는 눈빛이기도 했으며 필라투스를 조롱하고 비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필라투스는 호세아의 미소를 외면하고 관저로 들어갔다. 호세아는 로마군인에게 체포되어 감옥으로 끌려갔다.

호세아에게 있어 너무나도 긴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29.

"저 새끼, 내일 죽는 놈 맞냐?"
"감옥에서 저렇게 팔자 좋게 자는 놈은 처음 봤어."

밤 공기는 어깨를 움츠리게 할 정도로 차가웠다. 감옥 앞에서 보초를 서던 두 로마 병사는 모닥불을 쬐면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감옥 안에서는 드르렁, 크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며칠째 잠다운 잠을 자지 못한 호세아가 내는 소리였다. 어차피 모든 것이 결정된 이상, 호세아는 체념한 상태로 마지막 잠을 달게 자고 있었다. 벼룩과 쥐가 들끓었지만 호세아의 수면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수고한다."

모닥불을 쬐던 두 병사는 벌떡 일어나 차려 자세를 취했다. 가벼운 평복을 입은 필라투스가 한밤중에 감옥을 방문하는 일은 전에 없던 일이라 두 병사는 무척 놀랐다.

"문을 열어라. 죄수를 보겠다."

필라투스는 어둡고 눅눅한 감옥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온갖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태연하게 잠을 자는 호세아가 한눈에 들어왔다.

"야, 일어나!"

병사가 창살 사이로 창대를 찔러넣어 호세아를 깨웠다.

"물러가라."

필라투스는 횃불 하나만을 들고 잠에서 깬 호세아를 바라보았다. 말없이 지켜보는 필라투스를 보던 호세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한밤중에 여기는 웬일이십니까?"
"자네를 처음 보던 날이 떠오르는군. 조난당한 놈을 구해주니까 활약이 대단했지. 난 아직도 그때의 자네를 기억하네. 특히 그 눈빛."

호세아는 입가에 흐르던 침을 쓱 닦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제 눈빛이 뭐 어쨌다고 그러십니까?"
"아무 것도 믿지 않는 눈이었지. 사람은 물론 신도 믿지 않는 눈빛. 그 불신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어. 나 또한 아무것도 믿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저번에 자네가 한밤중에 총독부에 찾아왔을 때는 눈빛이 달랐어. 사랑에 빠진 눈빛 같기도 했고 믿음에 충만한 눈 같기도 했어. 자네가 꾸미는 일이 잘 풀리는 모양이구나, 생각했지."

"지금은요?"
"전과 같아. 아무 것도 믿지 않는 눈빛, 자신조차도 믿지 않는 눈빛."

호세아는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켰다.

"눈깔 얘기 하려고 오셨습니까?"
"그때 보았던 눈빛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네."
"각하께서는 배신당한 적이 있습니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정선 한 카페 구석에서 발견한 먼지 쌓인 보물 정선 한 카페 구석에서 발견한 먼지 쌓인 보물
  2. 2 쓰레기 몰래 버리던 공간, 주인의 묘안이 놀랍다 쓰레기 몰래 버리던 공간, 주인의 묘안이 놀랍다
  3. 3 신입사원 첫 회식... 선배가 데려간 놀라운 장소 신입사원 첫 회식... 선배가 데려간 놀라운 장소
  4. 4 [단독] 구독자 최소 24만, 성착취물 온상 된 '나무위키' 커뮤니티 [단독] 구독자 최소 24만, 성착취물 온상 된 '나무위키' 커뮤니티
  5. 5 뉴욕 뒤집어놓은 한식... 그런데 그 식당은 왜 망했을까 뉴욕 뒤집어놓은 한식... 그런데 그 식당은 왜 망했을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