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길 있음을 인정않는 이들은 슬퍼한다”

2004 세밑, 절망과 좌절의 여행길에서 희망을 발견하다

등록 2004.12.31 00:00수정 2005.01.0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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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초순 극심한 절망속에서 추자도에 지는 해를 아프게 바라보았다. ⓒ 이주빈

지친 눈으로 추자도에서 노을을 보다

그때 나는 추자도 거친 바다 한가운데 있었다. 천년을 기약했던 사랑은 떠나고, 오년을 하루처럼 해왔던 일은 어긋나 나를 침몰시켰던 잔인한 가을. 허허로운 마음을 겨우 다잡으며 겨울을 맞았지만 둘도 없이 착했던 백부는 죽음으로 내 곁을 떠났다.

슬프고 힘겨운 일이 마치 나를 시험이라도 하듯 연달아 터졌다. 늙은 아버지는 병원신세를 지고, 벌이를 잃은 가난한 나는 치료비 한 푼 보태지 못했다. 아프고 쓸쓸했다, 스스로를 위무할 의욕조차 생기지 않을 만큼.

도망치고 싶었다. 지구라는 이 삭막한 별에 와 맺었던 모든 관계로부터. 멀리, 영원히 도망치고 싶었다. 밥과 돈이 강제하는 어설픈 꼭두각시놀음으로부터. 관계는 나를 지치게 만들었고, 돈은 나를 좌절시켰다.

도시에 진저리치며 떠난 곳이 왜 하필 추자도였는지 모르겠다. 고향 흑산도 검푸른 바다도 있는데 말이다. 속내 깊은 어디에서 징처럼 울리던 그 소리 때문이었던 같다. ‘넌 고향에 돌아갈 자격이 없어, 넌 흑산 바다에 잠길 자격이 없어….’

고향에 돌아가는 이들의 부류가 크게 두 가지라 했던가. 출세해서 금의환향하든지 망해서 지상의 마지막 숨을 거두러가든지. 고향은 관계에 지친 나에겐 포근한 곳이 아니었다. 나를 기대하는 그 순한 눈들을 어떤 눈빛을 하고 마주할 수 있단 말인가. 두려웠다. 아니 주눅이 들었다. 기대에 찬 순한 눈들에 눈물을 뿌릴 수 있다는 것에.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할 만큼 왜소해진 난 그렇게 추자도 시린 바다 한가운데 있었다. 겨울바람에 일렁이는 파도가 무언가 말을 건네는 것 같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시퍼런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어떤 마음 길을 내고 있었던 것일까.

늙은 배처럼 바다 한가운데 떠있다 지는 해를 만났다. 쓴 눈물이 잠시 고였다. 한숨조차 사치스러웠다. 지난한 인생이 덧없고 덧없다는 생각에 모든 게 체념됐다. 이상한 일이었다. 왜 절망의 끝에서 평온이 찾아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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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병으로 온몸이 굳어가는 제주도 사진작가 김영갑의 두모악 갤러리. 아름다운 정원은 죽음앞에서 당당한 김영갑의 피눈물나는 투병일지다. ⓒ 이주빈

김영갑의 정원에서 새 길을 찾다

후배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나의 어설픈 도피는 추자도에서 맥없이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후배는 제주도에 사는 사진작가 김영갑과 그의 갤러리를 안내했다.

제주도 성산읍에 있는 김영갑의 사진갤러리 ‘두모악’을 찾았던 날은 내 마음의 풍경처럼 흐렸다. 폐교를 임대해 만든 갤러리 두모악은 그의 사진만큼이나 슬프게 아름다웠다. 제주도 사람이 아니면서 제주도에 살며 20여 년 동안 제주도를 사진 속에 품어온 김영갑. 그가 아름답게 꾸민 갤러리 정원은 그의 피눈물 나는 투병일지이기도 하다.

김영갑은 루게릭병으로 3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병원의 진단을 받았다. 70kg이 넘었던 그의 몸무게는 지금 40kg을 갓 넘기고 있을 뿐이다. 그가 아름답게 꾸민 정원은 갈수록 굳어가는 근육을 놀리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이다.

‘어쨌든 죽음이 가까이 와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가 만든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그의 사진 속을 걷는 것보다 더 깊은 걸음으로 그의 정원을 걸었다. 부끄러웠다, 그에게 혹은 내 인생에게.

어리석고 유약한 나는 누구나 겪을 법한 인생의 고비 앞에서 체념함으로써 평온을 구했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끝을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일을 찾았다. 김영갑은 예정된 죽음처럼 굳어가는 근육을 쉬지 않고 놀리며 평온을 찾아갔던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호흡 곤란으로 죽음과 맞닥뜨려야 하는’ 그는 당당하게 절망을 대면하고 있다. 2003년 봄부터 김영갑은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치료를 해오고 있다.

“모든 치료를 거부하는 나를 보고 지인들은 안타까워한다. 찾으면 치료방법이 없지도 않을 텐데 기어코 고집을 부린다고 가여워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 죽음으로 치닫는 지름길이라 하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그 길을 웃으면서 갈 것이다.”-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에서

김영갑의 갤러리를 방문한 후 난 서둘러 도시로 돌아왔다. 내가 상처 입었던 곳, 나를 좌절케 했던 곳 그러나 여전히 내가 해야 할 일의 몫이 있는 곳으로. 인생의 생채기나지 않았던 그 먼 어느 날처럼 유쾌하게 일을 다시 시작했다. 서먹했던 이들도 만났다.

그렇게 세밑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 내겐 그럴싸한 지위도 넉넉한 돈도 없다. 그리고 분주하지도 않다. 그러나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부터 바쁘고,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며 즐겁다.

간혹 생각한다, 추자도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던 날의 나를. 그때 아프고 쓸쓸했던 나도 소중한 나일뿐이다. 잊고 산다고 그날의 기억이 완전히 소멸되진 않는 것처럼 애써 부끄럽게 여기며 감출 지난날의 아픔도 아니라는 것을 이젠 안다. 죽음에 당당함으로써 생명을 이어가는 제주도 사진작가 김영갑처럼, 절망과 좌절에 당당함으로써 희망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을 이젠 말할 수 있다.

2004년의 마지막 해가 지는 자리에 2005년의 새로운 해가 떠오를 것이다. 새해엔 체념하고 포기해서 얻을 수 있는 평온이라면 나는 두 번 다시 평온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새해엔 아픔 없이 얻을 수 있는 풍요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죽음처럼 굳어가는 몸을 움직여 아름다운 정원을 만든 김영갑처럼 내 진정을 바쳐 내 힘으로 얻을 수 있는 만큼의 평온과 풍요만 새해엔 누려야겠다.

“내 앞에 펼쳐진 새로운 길을 볼 수 없는 이들은 나를 몹시 가여워한다. 새로운 길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슬퍼한다. 막다른 골목에서 새 길을 발견했으므로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조금 힘들고 불편해도 나에게 허락된 오늘을 즐길 수 있어서 마음이 평화롭다. 구원은 멀리 있지 않다. 두려움 없이 기꺼이, 기쁘게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구원일 게다.”-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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