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을 깨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왼손잡이가 본 세상-‘좌측통행’과 지하철 1호선 타기의 헷갈림

등록 2004.12.30 16:20수정 2004.12.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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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좌측통행"이라구요? 좌측통행은 기본이랍니다. 아닐 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 김규환

나와 <메밀꽃 필 무렵> 동이는 왼손잡이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문득, 그는 나귀를 몰고 가는 동이의 채찍이 동이의 왼손에 잡혀 있음을 똑똑히 보았다. 아둑시니같이 어둡던 그의 눈에도 이번만은 그것이 똑똑히 보이는 것이었다."

허생원이 이 하나를 보고 자신의 핏줄임을 확신하는 순간이다. 그만큼 조선과 해방전후, 70∼80년대까지도 왼손 사용에 대한 금기는 철저했다. 버릇이거나 유전이었다. 또한 고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왼손잡이다. 밥 먹고 낫질하고 글씨 쓰고 밑을 닦을 때 정도만 오른손을 쓸 뿐이다. 담배 피고, 술 잔 기울이고,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들거나 도끼질, 괭이질, 삽질과 전화 통화를 해도 언제나 난 왼손잡이다. 차 한 잔 마셔도 왼손이다. 그렇게 난 왼손에 익숙하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홀대받았다. 어렴풋이 기억하지만 왼손으로 밥을 먹다가 귀싸대기를 맞은 적도 있었다. 평소 오른손으로 일을 하다가도 멀리서 아버지 헛기침 소리가 들리면 얼른 손을 바꿔 오른손을 사용하는 척 했다.

몰래 상황 봐가며 썼기에 부모형제는 내가 왼손잡이인줄 모른다. 이 정도면 내 처세술도 괜찮은 편인가 보다. 양손을 쓸 수 있었기에 왼손잡이의 비애를 뼈저리게 느끼지 못했던 건 천만다행이었다.

지금도 나는 힘이 필요치 않고 정교함을 요구하지 않으면 오른손을 쓴다. 뭔가 무게를 잡거나 힘센 일, 중요한 사안은 왼손을 썼다. 7할 가까이는 도구가 왼손에 들려있어야 편하다. 무게 중심이 왼쪽에 쏠려 있어 닭싸움을 할 때도 오른발을 들고 왼발로 종종걸음 깨금발로 상대와 겨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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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일방통행도 있습니다. 절대 반대편에선 들어오면 안 됩니다. 이를 어기면 아이들이 위험합니다. ⓒ 김규환

밥 먹는 손과 오른손

해강이 솔강이가 태어나 두 살 될 때까지는 곧잘 왼손에 물건을 쥐고 쭉쭉 빨아댔다. 아비를 닮은 게 아니라 그건 천성이었다.

얼마 전 아이들 고모가 "해강아, 밥 먹는 손!" 하기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밥 먹는 손'이라면 필시 오른손(옳은 손)을 두고 한 말일진대, 밥 먹는 손이 정해졌단 말인가. 유아교육과정을 이수한 동생이 이렇다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지 한 번은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 나쁘지 않게 타일렀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론 밥 먹는 손이 왼손이어도 좋다. 왼손으로 밥을 먹든 글씨를 쓰던 문제될 게 없으니 꼭 우측 손만 말하지 말자."

동생은 곧바로 자신이 실수했음을 인정하고 주의한다고 했다. 이왕 꺼낸 이야기 계속했다.

"왼손은 어찌 보면 오른손잡이가 볼 때 불편할 뿐이다. 어떤 아버지는 왼손을 쓰는 아이와 밥 먹을 때 부딪치니까 싫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다르다. 오히려 왼손과 왼발을 자주 쓰고 주시(主視)가 왼쪽 눈이라면 우뇌(右腦)에 영향을 주어 창의력과 언어, 예술방면에 기지와 재치를 발휘하고 아이디어가 풍부하다. 젓가락질 하는 민족이 머리가 좋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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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은 방향이 다르다는 걸 아시나요? 다른 호선이라면 의정부로 가려면 제가 사진기를 들고 있는 곳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김규환

좌측통행 공교육 효과

오른손만 쓰라는 사회에서 벗어나오자 마자 좌측통행을 배워야 했다. 나는 오늘도 좌측통행을 한다. 이 습관은 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좌로 돌아!", "좌향좌!", "왼발! 왼발!" 구령에 맞췄다. 걸음을 디딜 땐 왼발을 먼저 힘차게 내디뎌 박자를 맞추곤 했다.

하교할 땐 줄줄이 늘어서 마을대표가 호루라기를 불며 인솔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앞에 달구지가 와도 왼쪽 귀퉁이에 몸을 바짝 붙여 걸었다. 상황판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왼쪽에 도열하여야 한다고 가르쳤으니 우린 그것만 원칙인 줄 알았다. 중고등학교 소풍-행군(行軍) 갈 때 차가 쌩쌩 달리던 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집을 나서면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늘 확인한다. 사람이 오지 않으면 어색하다. 내 지조(?)나 원칙(?)이 흐트러져서 갈지자(之) 걸음으로 인도(人道)에서 헤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상생활에서 하루에 반성 한 번 하기 힘들지만 철칙으로 알고 가다듬는다. 기초질서 하나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오해받기 싫어서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좌측에 바짝 붙는다. 공교육의 탁월한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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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도로와 철도체계 개념. 이 그림을 보고 글을 다시 읽어야 쉽게 이해가 됩니다. ⓒ 김규환

1호선도 좌측통행-자동차 핸들도 왼쪽에 있는 우리 나라

지하철 1호선도 나를 닮아 좌측통행을 한다. 1974년 개통한 서울 지하철1호선은 국유철도와 연결되어 있다. 그때까진 아무 문제가 없었다. 10년 후 2호선이 완전 개통하면서 사람들은 내가 처음 서울로 올라와 몇 차례 지하철을 타면서 겪던 혼란에 빠졌다.

새롭게 개설된 2~8호선은 우측통행이다. 자동차가 달리는 방향에서 곧장 내려가면 바로 목적지로 가는 방향과 동일하다. 사람들은 타자마자 우측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버텨야 한다. 현재 지상의 교통체계와 같다.

부연하면 북쪽인 신촌에서 홍대-합정을 거쳐 강 건너 당산역, 신도림으로 가려면 남쪽 서강대쪽이 아니라 연세대 쪽인 현대백화점이나 홍익문고 앞에서 곧바로 개찰하고 서남쪽으로 가면 된다.

1호선은 다르다. 종로 3가에서 수원이나 인천 행을 타려면 북쪽 '피카디리'나 '단성사' 쪽이 아닌 남쪽 '서울시네마' 방향에서 개찰을 해야 하니 방향이 확실히 거꾸로 인 셈이다. 한 번 돌아가는 수고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방향감각을 상실할 때도 더러 있다. 신설동역이라면 그 혼란은 극에 달한다. 현재 지방에서 올라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사람은 헷갈리기 일쑤다.

전동차도 여느 호선과 다르게 진행한다. 1호선은 선로 위를 좌측통행으로 달리고 여타 노선은 우측통행을 한다. 왜 그렇게 됐을까는 철도공사에 묻지 않아도 된다. 일본이 조선을 둘러싼 여타 열강을 물리치고 철도부설권을 거머쥔 결과다.

80년대 이후 본격화된 2호선~8호선은 왜 달리는 방향과 사람이 타는 플랫폼이 바뀌었을까. 사회간접자본 SOC 확충을 위한 자본과 기술이 미국 중심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레 변화한 측면이 강하다.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미국문화에 나도 절어 살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왜 자동차 핸들이 왼쪽에 붙어 있는지 무감(無感)하게 살고 있다. 그게 세상의 모든 질서인 줄 안다. "자동차는 우측통행, 사람은 좌측통행"이 지상명령이나 진리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웬걸? 가까운 일본과 입헌군주제로 한 가지인 영국, 인도, 호주, 뉴질랜드 같은 나라엔 운전대가 우측에 있다. 반면 미국 영향을 받은 한국과 러시아, 중국은 왼쪽에 달려 있어 차는 우측통행, 사람은 좌측통행을 원칙으로 하고 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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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선 보문역. 요즘은 중앙에 승하차를 같이 하는 역이 많습니다. 그래도 차 진행방향은 우측통행입니다. ⓒ 김규환

좌측통행에 이의를 제기함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좌측통행에 이의제기를 하고 나서는 이유를 말하리라. 사람끼리 다니는 길에선 아무 문제가 없다. 일방통행로에 정면으로 차가 오면 왼쪽에 기대 걷는 게 상호 약속이므로 편하다.

차가 내 등 뒤에서 쏜살같이 달려온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우측통행이나 좌측통행 자체가 무용지물이다. 눈 뜬 봉사다. 아무 데나 피신해 있어야 안심이다. 걷는 건 포기하고 차량우선인 우리네 운전문화를 탓하며 쉬어야 한다. 잠시 비키지 않으면 "빵빵!" 울려대는 운전수의 인내심 없음을 탓하면 된다.

여기까지는 양보할 수 있다. 대로(大路)로 나가보자. 양쪽에 보도가 있고 가운데에 왕복 2차선 또는 최소 3~4차선이다. 이때 차와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간다면 나는 좌측통행을 무시하고 싶다. 왜 인고 하니 무방비한 채 좌측통행을 하다보면 차가 와서 덮칠지 모르는 불안이 엄습한다.

앞에 사람이 없어도 바짝 도로변에 붙어 가다보니 센 바람이라도 휙 한 번 불어 내 옷을 스치고 지나갈 성 싶은 착각, 발을 헛디뎌 도로 턱에 고꾸라지면 언제 어느 때 와서 치고 지나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돼 있다.

종로에서 길가다가 뺨맞아본 사람은 그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무작정 길을 가고 있는데 차가 인도로 올라타 "콰당!" 하면 바로 죽음이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한 방법은 도로와 인접한 보도를 걸을 때는 우측통행을 해야 맞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은 온갖 상황에 대처할 최소한의 자기 방어능력을 갖춰 만일의 사태를 모면할 수 있다. 이들에게만 시혜를 베풀지 말라. 차와 목적지가 같은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세상을 하직하라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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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가면 학생회관, 문과대, 정경대 후문이었던 대학 정문. 왼쪽으로 가면 좌익이라 했는데 저는 날마다 왼쪽으로 갔답니다. ⓒ 김규환

동행(同行)의 조건-반대편 손을 잡는 것

왜 선생님과 내가 사는 이 사회는 좌측통행만을 강요하는가? 좌(左)편향이나 우(右)편향은 사람 생각까지 치우치게 한다. 왼손으로 밥 한 숟가락 떠먹다가 귀싸대기 맞았던 기억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는데 나는 아직도 좌측통행을 강요받고 있다.

학창 시절 엄연히 교문을 통과할 때도 학생회관 쪽으로 걸으면 좌익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한쪽 뇌만 무한히 자라게 하고 우뇌가 자라는 걸 금기시 했다. 이 사회가 내 놓은 사회 통제수단치고 꽤 편리했고 질서를 잡는데 일조한 측면이 강하지만 다시 돌아봐야할 때가 되었다.

내가 오른쪽으로 가면 상대편은 좌측에 있고 내가 우측으로 가면 스치는 이는 좌측에 있기 마련이다. 동행(同行) 하려면 두 손을 잡는다. 한 사람이 오른손이면 다른 한 사람은 왼손이다.

동행을 위한 첫 걸음은 왼손 오른손을 맞잡을 때 가능하다. 같은 편 손을 내미는 소개와 인사 때 쓰는 악수와는 다르다. 그대도 나를 인정하기 바란다. 나도 그대들의 사고와 사상, 인생을 흔쾌히 인정하리라.

질서를 잘 지키는 건 어찌 보면 길들여진다는 의미다. 알게 모르게 규칙과 도덕 교육을 받아온 우리는 각자 해석하는 방법도 다르다. 모름지기 법(法)이란 '흘러가는(去) 물(水)'과 같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새기며 다만 시대에 역행하는 어떤 규범도 마땅히 수정되고 폐기되어야 한다.

나는 왼손잡이다. 나는 좌측통행을 한다. 지하철 1호선도 좌측통행을 한다. 우리 사회는 좌회전도 맘대로 허용한다. 몸에 밴 생각이나 관념에 의하면 왼쪽으로 살기는 꽤 불편하다.

대체 누가 만든 규칙이고 법이기에 만날 좌측으로만 다녀야 하는 건가. 우측으로 갈 수도 있고 좌측으로 갈 수 있게 상대를 인정하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다. 좌측통행만 옳다고 하면 나는 단연코 반대한다. 그마나 1호선이 있어 참 다행이라고 위안하기에는 퍽이나 힘겹다.

이 해가 가기 전 케케묵은 국가보안법 하나 없애고 좌우의 날개로 함께 가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2004년을 보내는 시민 한 사람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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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선로가 나란히 갑니다. 어느 길을 택하실 겁니까?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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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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