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정리 어떻게 하십니까?

내년이면 5년차가 될 다이어리를 정리하며

등록 2004.12.31 09:28수정 2004.12.3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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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번씩 다이어리를 펼칠 때면 좌우명과 닮아가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 김희경

해마다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한 해를 마무리 한다. 누구는 송년회가 아닌 '망년회'에 나가 밤새도록 폭음을 하고, 또 누구는 가족과 여행을 떠나 새해 첫 일출을 바라보며 희망을 다지기도 한다.

나도 해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며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이어리 정리다. 다이어리를 꾸준히 쓰는 사람도 있고, 청소년 시절을 지남과 동시에 다이어리 쓰는 일을 졸업한 사람도 있지만 나는 20살에 시작해 앞으로도 주욱 다이어리를 사용할 예정이다.

나와 다이어리의 첫 만남은 대학에서 있었다. 학기 초, 기념 다이어리를 학생들에게 나눠주는데 성실하게 들고 다니는 사람, 받자마자 집에 처박아두는 사람, 각양각색이었다. 내가 다이어리를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공부한 분야가 문예창작이라는 것과 지갑을 유달리도 잘 잃어버리는 징크스 때문이다.

아직도 문학도들은 대부분 메모 노트를 들고 다닌다. 언제 어디서 무슨 생각이 떠오를지 모르기 때문에 메모하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탓이다. 그때부터 나는 다이어리를 습작노트 겸해서 사용했다. 갑자기 생각이 떠오르거나, 인상에 남는 것을 보면 길 한복판이든 엘리베이터 안이든 간에 펼치고 기록하는 것이다.

처음엔 날짜, 스케줄, 자유 메모, 주소록 이런 구분이 있지만 나중에 가면 그런 것들은 모두 '메모지'로 통일되어 이런저런 사연들이 적혀있게 마련이다. 좋은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다이어리를 사용하면서 지갑 분실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다.

그것은 '크기'라는 물리적인 면에 근거한다. 다이어리는 웬만한 책 한 권의 사이즈이고, 중량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이중 날개로 되어있는 나의 다이어리는 카드며, 동전을 제외한 현금이 다 들어갈 수 있는 정말 실용적인 디자인이기 때문에 1년 365일 들고 다닌다.

그렇게 한 개의 다이어리를 속지만 바꿔가며 쓰기를 4년, 나에게는 4개의 묶음 뭉치가 생겼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되돌아보며 다이어리를 정리하는데, 그것을 차마 버리지 못해 모아둔 것이다.

거기에는 지인들의 생일이 기록된 날짜들과 약속 장소, 비 오는 날, 슬펐던 날, 면접 등, 때로는 또박또박하게 또 때로는 급하게 흘림체로 쓴 나의 일년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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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동안 무엇을 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각종 입장권들, 왼쪽에 가장 최근에 다녀온 단양 기차표도 보입니다. ⓒ 김희경

남는 것은 비단 글자뿐이 아니다. 다이어리 맨 후면에는 한 해 동안 보았던 각종 영화, 연극, 전시회, 놀이공원, 국립공원, 동물원의 입장권이 들어있다. 이미 다 사용한 것이므로 어찌 보면 보잘것없지만 하지만 이것만큼 나의 한 해를 증명해주는 것도 없다.

입장권마다 날짜가 찍혀 있고 제목이 있으니 내가 그날 무엇을 했는지 딱 보면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입장권들도 다이어리 속지와 함께 벌써 4년째 모으고 있다.

다이어리는 나의 일상이다. 아침에 지하철 패스를 꺼내려고 한 번 열고, 은행가서 현금 카드를 쓸 때 한 번 열고, 불현듯 생각나는 게 있을 때 또 한 번 열고, 친구에서 적을 주소를 볼 때 한 번 열고, 친구와 만나 밥을 먹고 나서 계산할 때 한 번 열고, 마지막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탈 때도 한 번 연다.

내 다이어리의 무게는 묵중한 하드커버 소설 한 권의 중량이지만, 내가 다이어리에 갖고 있는 애정은 그 열배가 넘는다. 학교 시절엔 술자리에 있다가 다이어리를 두고 온 게 생각나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뛰어갔었다. 다행히 수업을 듣던 강의실 베란다에 다이어리는 그대로 있었다.

또 전에 근무했던 사무실에서는 다른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누가 현금은 다 가져갔어도 몸체는 그대로 있었다. 이렇듯 두 번이나 분실할 뻔 했지만 결국 내게 돌아온 다이어리였기에 그 애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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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부터 2004년까지 모아온 다이어리 내지, 고무줄로 동여맨 사이에는 각종 티켓들이 숨어있습니다. ⓒ 김희경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다이어리를 정리하며 한 해를 마무리 한다. 그리고 2005년 을유년에는 사람들이 가진 '마음의 다이어리'가 아름다운 사연들로 채워질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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