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16

대원군 집정기 무장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여지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4.12.31 08:35수정 2004.12.31 14:22
0
원고료로 응원
“대감마님, 저 사람은 훈련대장 신관호가 아닙니까?”
“흠… 그렇구먼.”

안기주의 말에 한참을 응시하던 김병학이 답했다.

견마잡이도 없이 이 단신으로 군마에 올라, 배행하는 기마 군관 하나만 동행한 채 김병학 쪽으로 훈련대장 신관호가 다가왔다. 원래 무관에겐 가마가 금지되어 있다고 하지만 좌찬참 겸 훈련대장이라는 정이품 품계에 있는 사람치고는 단촐한 행보였다.

“전 훈련대장 신홍주의 손자이지. 전형적 무관가문에서 태어났는데도 당대의 이름난 실학자들 문하에서 수학하고, 무관이면서도 독특한 학문적 소양을 쌓아 유장(儒將)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사람이라네.”

안기주가 역시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가오는 신관호를 곁눈으로 보며 김병학이 말을 꺼냈다.

“소인도 익히 명성을 들은 바 있습니다. 다산이나 추사 같은 분 밑에서 수학하여 실사구시의 학풍이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개화적 사상을 가진 강위(姜瑋), 박규수(朴珪壽) 같은 이와도 교유가 있다고들 합니다.”
“뿐만 아닐세. 자네 고산자 김정호라는 이를 아는가?”
“몇 해 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만들었던 이 말이오니까?”
“그자가 지도를 제작하도록 조력한 이도 신관호 저 사람일세. 헌종 임금 급서 시에 금위대장이었던 저 사람을 우리 가문이 배척하여 정계에서 빼냈는데 대원위 대감 치세에서 다시 승승가도를 달리는구먼.”

“그럼 우리 쪽으론 끌어들이기 어려운 인물이란 말씀이오니까?”
“글쎄… 사람 속이란 게 알 수가 있나. 그러나 지금으로선 아무래도 확실한 대원군 파라고 보는 게 좋겠지. 병권의 핵심인 훈련원을 내줬다면 그만큼 신임을 얻고 있다는 이야기니까”

둘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주고받는 사이 신관호가 말에서 내려선 채 다가와 군관과 같이 인사를 올렸다.

“좌상 대감께오선 그간 기체후일양만강 하셨사옵니까?”

김병학보다 11살이나 많은 57세의 노장이었지만 여전히 무인의 풍채가 남아 있었다.

“예, 대장께서도 무고 하시지요?”
“예, 성은과 좌상대감의 보살핌으로 잘 지내고 있사옵니다.”
“운현궁으로 행하시는 길이신가 보오?”
“예, 대원위 대감께서 들라 이르기에 황급히 길을 줄이는 길이었사옵니다.”
“그래요, 국사에 바쁘신 몸이실 터인데 그만 가 보시오.”
“예”

김병학이 다시 가마꾼들을 재촉하고 신관호도 말을 끌고 움직였다. 신관호와의 거리가 제법 멀어지자 안기주가 넌지시 말을 건냈다.

“상을 보아하니 보통 인물은 아니겠습니다. 우리 쪽에 서면 천군만마를 얻은 듯 하겠고 적이 된다면 큰 벽이 될 사람 같습니다. 저 나이에 군마라니요.”
“흠… 지켜볼 일이지.”

김병학은 말을 남기고 다시 침묵했다. 가마의 행렬이 점차 멀어져 갔다. 그때 먼발치 초가지붕들 틈에서 이 가마의 행렬을 눈 여겨 보고 있는 무리들이 있었다.

“저 치가 좌의정 김병학이야. 거사일이 잡히면 '영감' 다음으로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인물이지.”

무리 중 나이가 수긋해 보이는 자가 지게에 있는 장작을 손보는 척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가마꾼과 호위 군졸이 각각 넷, 일산(日傘)을 든 군졸이 하나, 안롱(按籠)과 호상(胡牀)을 든 수행원이 각각 하나, 집사로 보이는 수행원이 하나이고… 도포 차림에 환도를 차고 있는 자가 하나. 도합 열 셋입니다. 수행원이야 비무장일 테고 저깟 허수아비 군졸 너덧이야 있으나 마나고…. 이쪽은 그리 어렵지 않겠는데요.”

마찬가지로 장작 지게를 옆에 세워 둔 사내가 말했다. 주변에도 몇 명의 사내가 더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만 도성 안에 작은 낌새라도 있으면 호위 군졸이 배 이상 따라 붙을 것이야. 아니, 저 자의 치밀한 성격이라면 세 배, 네 배라도 증원 시킬 것이 뻔해. 그래서 명이 떨어지면 각 부서가 일시에 일을 처리하는 것이 최상의 방도야.”

“제깟 녀석들이 스물이면 뭐하고 서른이면 뭘 하겠습니까. 방포 한 번으로 저 돼지만 없애면 되는 것 아닙니까요.”
“없애는 것도 없애는 것이지만 거사 후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지. 저 쪽의 군졸이 많으면 뿌리치고 달아나기가 어려워.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저 치 하나를 없애더라도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그냥은 죽을 수가 없단 말이지. 그러니 작업 후 살아남을 방도를 궁리하는 것도 필요해. 그래서 집으로 쳐들어가는 것 보단 길에서 저격으로 깔끔하게 해결하는 것이 좋지. 그것도 방비가 강화되기 전이라면 첫 방포에 실패하더라도 우리 넷이서 저들 군졸 몇 해치우는 것은 어렵지 않을 터이니 낌새를 채기 전에 일하는 것이 편타는 것이야.”

“역시 오장(伍長)님이십니다. 오장님하고만 다니면 우리 오(伍)는 걱정할 게 없겠습다요.”
“후(後), 잘 봐 둬라. 저 자가 김병학이다. 혹 다른 자가 변복을 하고 저 자리에 앉아 있어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저 자라면 능히 그런 술수를 부리고도 남을 인물이야. 기회는 단 한 방뿐이다.”
“잘 알겠습니다.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후'라 불리운 이가 대답했다.

“그리고 '좌(左)'와 '우(右)'는 항상 후의 건너 편에 매복한다. 표적과의 거리는 항상 이삼십 보 이내를 유지하고 있을 것. 만약 '후'가 저격에 실패하면 이 쪽에서 '전(前)'과 내가 뛰쳐나갈 것이다. 때를 같이 해 그때 덮치면 된다. 만약 저격이 성공한다면 너희들은 노출시키지 말고 그대로 빠지도록 해. 일의 성사 여부와 상관 없이 작업 후에는 지정된 장소로 집결하면 된다.”
“예, 알겠습니다.”

오장(伍長)이라는 이의 말에 나머지 넷이 낮지만 엄정한 목소리로 답변했다.

“아까 말 탄 장수는 누구지요? 행렬은 단촐해도 꽤 관등이 높아 보이던데요?”
“글쎄다. 병인양요 때 총융사로 강화의 염창을 수비했던 훈련대장 신관호 같기도 하고….”
“저 치도 표적인가요?”
“그건 알 수가 없지. 각 오별로 할당된 표적이 다르고 활동도 독자적으로 하니 도성 안에 몇이 활동하는 지도 몰라. 우린 그저 우리 맡은 일만 완수하면 되네. 이제 그만 가지”
“예!”

대답을 마친 이들이 받쳐 두었던 짐바리들을 메고 처마 모퉁이를 돌아 총총히 사라졌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이 기자의 최신기사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횡단

AD

AD

AD

인기기사

  1. 1 일본 언론의 충격적 보도...윤 대통령님, 설마 이거 사실입니까
  2. 2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농담, 김건희 여사 뼈 때리다
  3. 3 "그날, '윤석열 만세' 보냈고 바로 답장이 왔다, '이정섭 만세'"
  4. 4 버려진 옷 먹는 소의 모습... 더 불편하고 충격적인 사실
  5. 5 "'맘껏 풍자하라, 당신들 권리'... 윤 대통령 SNL 200만 영상은 뭔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