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의 섬 진도에 올려진 창극 '고려의 혼'

민속의 본향에서 군민들이 만들어낸 지역문화의 진수

등록 2004.12.31 10:37수정 2004.12.3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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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났네∼’

진도아리랑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올 것 같은 민속의 보고 진도 땅. 이제는 섬이 아니지만 진도는 유배길에 오른 정객들의 고단한 일상이 자리하고 있었던 외딴 고도의 섬이었다.

이 섬에 무엇이 있길래,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길래 지나간 시절 삶의 원형들이 아직도 살아 남아 있을까. 문화재로 지정된 민속음악만 6개가 있으니 '민속의 본향'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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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윤섭

이 진도 땅에는 수많은 질곡의 역사가 이어져 왔다. 어쩌면 섬사람들의 이 힘든 삶과 힘든 역사가 다시 흥과 원으로 승화되어 생산된 것이 애증과 해학이 듬뿍 묻어나는 민속이 아니었을까.

진도 땅에는 한때 왕궁이 있었다. 빼앗긴 나라, 짓밟힌 나라의 슬픔이 시작될 무렵 허물어진 나라의 혼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백성들이 모여 왕궁을 짓고 새로운 꿈을 시작했다.

'삼별초', 빼앗긴 고려의 혼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던 삼별초는 이곳 진도 땅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 것이다. 9개월간의 목숨을 건 항쟁, 그러나 그 노력은 허물어지고 말았다.

그 잃어버린 왕국이 1천년의 세월 뒤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고려의 삼별초가 민속의 본향 진도에서 '고려의 혼'으로 창극이 되어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한 해의 끝점에서 옥동자를 순산하듯 이곳 사람들의 예술혼이 하나의 창극을 탄생시켜 무대에 올려놓았다.

지난 29일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는 진도 특유의 전통민요로 진행되는 창극 '고려의 혼'이 무대에 올려졌다. 전문 극단의 단원들에 의해 창극이 올려졌다면 아마 관람자들의 구경거리로만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올려진 창극은 모든 것이 이곳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고려의 혼' 극복을 쓴 곽의진씨는 현재 진도에 뿌리를 내리고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 현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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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윤섭

또한 이 창극에 참여한 사람 모두 훈련된 단원이나 창극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다. 어쩌면 삼별초와 함께 조선시대의 명랑대첩을 승리로 이끈 민중들이 모두 참여한 것과 같다.

농사를 짓는 농부, 생선장수 아줌마, 북을 치는 북쟁이, 들판에서 소리를 하며 농사를 지었던 동네 아짐 등 이 땅의 무지렁이 백성들이 모두 배우였다. 이들은 그동안 생업이 끝난 뒤 향토문화회관 대공연장에 하나둘 모여 익숙치 않은 몸 동작과 대사를 익히느라 밤잠이 편할 날이 없었다.

민요창극 '고려의 혼'은 고려시대 삼별초의 대몽고 항쟁을 벌였던 이곳 진도사람들의 모습을 진도북춤, 만가, 씻김굿, 육자배기, 흥타령, 진도아리랑 등 남도소리로 풀어낸 창작민요로 진도만이 해낼 수 있는 농축된 쟁이들의 예술혼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끼는 벌써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12월 창극 '진도에 또하나의 고려 있었네'를 진도향토문화회관 무대에 올리고 이듬해 서울 국립국악원의 초청으로 서울에서 원정공연을 벌인 것. 이들 공연을 통해 생활에서 농축된 진도 사람들의 '끼'를 유감 없이 발휘했다. 이번에 다시 이를 각색하여 올려진 '고려의 혼'은 4년간의 시간 속에서 '업그레이드' 된 창작의 산실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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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윤섭

'고려의 혼'은 고려왕실이 강화도를 버리고 개경으로 천도할 때, 대몽항쟁에 앞장섰던 배중손 장군이 '자주고려'의 깃발을 들고 진도로 들어와 주민들과 함께 9개월 동안 싸움을 벌이다 결국 패배하면서 최후를 맞는 삼별초의 호국항전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이 창극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시선을 흩어지게 하지 않는 것은 이 지역의 민요를 창극으로 만들어낸 지역민들의 혼이 듬뿍 담긴 음악뿐만 아니라 이 창극속에 녹아들어 있는 '씻김굿', '진도북놀이', '진도아리랑' 등의 진도민속 음악이 적절히 배합되어 있어 진도문화 속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섬이라는 진도의 고단한 역사처럼 잘 엮어지는 삼별초의 짧은 9개월 동안의 항쟁의 이야기는 북놀이나 강강술래처럼 흥이 나기도 하였다가 씸김굿이나 진도만가에서처럼 억눌림의 한풀이로 다가오며 끝나는 시간까지 시선을 놓지 않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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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윤섭

모든 문화의 생산과 전파가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저 남녘땅 외진 진도땅에서 올려진 창극은 신선함을 넘어 지역문화 창달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문화의 뿌리는 서울이 아니라 지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문화의 활동 공간이 주로 대도시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제 그 문화의 태생적 공간인 지방이라는 원천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지역문화의 원천을 향한 정부와 문화인들의 관심과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

바다건너 진도 땅 섬나라에서 올려진 '자주의 혼', '지역문화의 혼'은 민족자존에 대한 자각과 문화의 힘을 보여준 쾌거라고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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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활동과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녹우당> 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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