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의 마지막 작업, 아쉬움과 경건함 속에서

등록 2004.12.31 11:38수정 2005.01.01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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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04년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가 지나면 2004년은 '지난해'가 되고 2005년이 시작되겠지요.


2004년의 마지막 날에 2004년의 마지막 글을 쓰려니 문득 지난 1월 1일의 아침 풍경이 떠오르는군요. 2004년의 첫 아침을 나는 고장의 명산 백화산의 정상에서 맞았지요. 고장의 유수한 사회봉사단체에서 주최하고 태안군이 후원한 '새해 새아침 해맞이 행사'에 참여하여 기원제(祈願祭)의 기원문을 낭독하고, 또 신년 축시를 낭송했지요.

그때 일이 조금 전의 일 같은데, 그 '아까'가 벌써 365일 전이라니…! 여기에서 다시 한번 세월 빠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군요.

나는 내일 아침에도 백화산을 오르게 됩니다. 2005년에도 새해 첫 아침에 백화산 정상에서 '새해 새아침 해맞이 행사'가 열린답니다. 주최측으로부터 또 신년 축시를 지어 낭송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그런 뜻 있는 일을 혼자만 하는 것 같아 면구스럽기도 해서 처음에는 사양을 했지만 결국 그게 통하지를 않았지요.

아무튼 새해 아침에 백화산 정상에서 또 그 일을 하겠지만, 그것 역시 금세 과거가 되고 먼 옛날 일이 되겠지요. 또 그렇게 사노라면 내 인생도 흘러흘러 어느덧 영원한 '정박'의 시기에 도달하게 될 터이고….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은 2004년을 보내면서 잠시 한해의 일들을 되돌아봅니다. 역시 2004년도 나에게는 실속 없이 바쁜 한해였습니다. 소설가 명색이 소설 생산의 부실함과 초라함을 다시 확인하자니 이미 체념적이리만큼 익숙해진 비애가 다시금 가슴을 저미는 듯싶습니다. 오로지 소?창작에만 몰두하며 살고 싶었던 긴긴 꿈이 또 한번 덧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는 그 사실 확인은 여전히 서글픔과 무안함을 안겨 주는군요.


직장에 매인 몸이 아니면서도, 그래서 때로는 '자유직업인'이라는 말을 내세우면서도 왜 그렇게 내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고 수만 가지 실속 없는 일들에 얽매이고 채이면서 늘 바쁘게 쫓기며 사는 것인지, 그 딜레마의 근원적 이유를 아직도 확연히 가늠할 수가 없군요.

하여간 그렇습니다. 한없이 자유롭게 맘껏 게으름도 피우며 살고 싶은 마음은 노상 굴뚝같지만, 이 세상을 나 혼자 사는 것도 아니니, 나를 감싸 안고 흐르는 물결 속에서 그저 마냥 자맥질이나 하며 사는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내 본업에 대한 절망의 손짓을 확연히 감지하고, 또 애써 외면하기도 하면서….


비록 내 본업에는 충실치 못했을지라도, 인터넷 덕분에 내 삶의 편린들을 나름으로 알뜰히 기록할 수가 있었고, 또 국가와 민족과 사회 속의 갖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굳이 외면하지 않고 내 인식 속에 담아 뜨겁게 고뇌하는 글들은 제법 썼지 싶습니다. 내 이념적 체질적 성향을 분명히 표시하는 글들로 말미암아 사이버 상에서 더 많은 '적'들을 만들어내고 '삼류작가'라는 야유도 많이 들었지만, 내 양심에는 결코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군요.

하느님을 믿고 사는 탓에 교회공동체의 중요한 책임을 맡다 보니 그쪽으로도 많은 시간과 노고를 할애할 수밖에 없었지요. 내 본업에 전념하지 못하는 현실에 한 가슴 비애를 안으면서도, 내가 이 세상의 나그네임을 늘 생각하곤 했지요. 결코 이 세상의 삶이 내 목적이 아니고, 이 세상은 잠시 동안의 순례 과정일 뿐임을 되새기면서도, 현실적인 이해 앞에서 때로는 고뇌 어린 한숨을 삼키기도 했지요.

2004년 한 해도 여러 예술인들을 만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지방에서 나름 대로 열심히 활동하는 각 예술 장르의 인물들을 찾아 대담을 하고, 그의 작품세계와 삶의 과정 안에 담뿍 어려 있는 갖가지 애환들, 지금의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앞으로의 희망 등을 종합 취재하여 비교적 긴 분량의 글로 알뜰히 정리 기록하는 일이었지요.

내 나이 탓인지 장거리 출장도 불사해야 하는 그 일이 좀 고달프긴 했지만, 그 일은 내게 좋은 의미와 가치를 안겨주는 듯싶습니다. 내 꼼꼼하고 세밀한 글로 다른 이들의 삶과 업적과 정신세계를 최선을 다해 잘 기록해 드리는 일도 한가지 내 중요한 몫이라는 생각을 하곤 하지요.

이 일을 하면서 나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을 매번 새롭게 가지곤 합니다. 이 일 가운데서 내가 가장 의미 있게 느끼는 것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을 스스로 키우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어느 누구를 볼 때 그 사람의 일면만을 보고 판단하고 평가하기 쉽습니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 또는 한가지 행동이 쉽게 전체적인 판단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요.

그리고 예술가의 경우 작품을 통해 그의 내면을 유추해보거나, 이런저런 평가들을 통해 그를 아는 것이 전부일 듯싶습니다. 전혀 생소하거나 막연하게 알고 있던 그를 내 작업이 계기가 되어 일단 만나서 오래 얘기를 나누다 보면, 대개는 외길로 살아와서 단순할 듯싶은 그의 삶 안에 놀라운 이야기들이 잠복해 있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런 경험들을 통해 나는 어느 누구를 보든지 그를 지레 예사롭게 보지 않으려는 눈을 갖게 되었지 싶습니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의 삶이나 내면에는 내가 미리 알지 못했거나 상상할 수도 없었던 놀라운 이야기들이 잠복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내게 일종의 외경심 같은 것을 갖게 하지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존경심 같은 것이 잘 마련되어 있다는 얘기도 될 듯싶습니다.

올해는 회화작가, 여성조각가, 시인, 사진작가, 연극인 등을 만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16일 천안에서 만난 한 연극인의 삶은 내게 참으로 질감 좋은 감흥과 찬탄을 안겨주었지 싶습니다. 한 개 지방극단을 위해 쏟은 반생 동안의 열정과 희생, 지역의 문화예술계를 위해 사재를 털다시피 하며 헌신하다가 날거지가 되어 원양어선에 한 시절을 의탁해야 했던 그의 기구했던 세월은 나를 참으로 숙연하게 만들더군요.

그에 관한 이야기를 2004년의 내 마지막 작업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착수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쓰는 작업은, 분량이야 200자 원고지로 100여 매밖에 되지 않지만, 고도의 긴장이 필요할 듯싶고 서둘러서는 안될 것 같더군요. 그래서 그 일을 2005년 새해의 첫 작업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일은 올해 시작해서 내년에 끝내는 일이니, 2년에 걸친 작업이 되는 셈일 듯싶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2004년의 마지막 작업이 되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나를 잊지 않고 웹상에서 내 글을 꾸준히 읽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여기에서 송년 인사를 드립니다.

내가 본업인 소설 쓰기를 외면하다시피 하고 웹상에 잡문 쓰는 일에 더욱 열중하는 듯한 태도를 보며 염려의 눈길을 보내시는 분도 많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삼류작가'라는 야유도 증폭되는 것 또한 내가 잘 알고 있는 일입니다.

2005년 새해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 그저 이런저런 사회적 연결구도에서 오는 갖가지 제약들을 극복하거나 초연한 채로, '고독의 성' 안에서 오로지 소설 창작에만 전념하며 살고 싶은 꿈이야 늘 굴뚝같겠지만, 그게 정 어렵다면 잡문 쓰는 일이라도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방 문예 마당의 이런저런 인물들을 만나 그의 삶을 정리 기록해 드리는 일도(나름으로 잘 챙기고 있는 가치인식도) 쉽게는 포기할 수 없을 것 같군요.

무슨 일이 되었건 기본은 성실과 진실, 그리고 진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경건함과 진지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지요. 비록 '잡문'이라는 항목으로 분류되는 글일지라도 결코 쓰레기 글은 되지 않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과 양심의 눈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2004년의 마지막 글을 마칩니다.

다시 한번 웹상에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께 머리 숙여 감사하며, 이 인터넷 매체에도 감사와 함께 경의를 표합니다.

2004년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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