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제대로' 읽어 보자고요

[책이 있는 삶 9] 가슴에 울리는 책을 찾자

등록 2004.12.31 14:39수정 2004.12.3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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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오늘로 2004년은 마지막인가요? 올 한 해 동안 읽은 책과 구경한 책을 차근차근 돌아봅니다. 저는 책을 퍽 많이 읽는 편인데, 책 만드는 일을 하기 때문에도 많이 읽지만, 텔레비전이나 영화나 장보기를 안 즐기고 자동차도 몰지 않기 때문에 책읽을 시간이 넘칩니다.

책읽을 시간이 '넘친다'고 하니 자칫 한갓진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군요. 하지만 저에게는 일할 시간이 모자라 책읽을 시간도 퍽 모자란 편이에요.

그런데도 책읽을 시간이 '넘칠' 수 있는 건 자는 시간 조금 줄이고 아침에 좀더 일찍 일어나는 한편, 밥하는 사이나 밥집에서 기다리는 동안 짬짬이 책을 보고, 뒷간에서 큰일 볼 때도 보고, 전철이나 버스로 오갈 때도 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쓰는 건 서로 다르게 쓰잖아요.

어쨌든 이래저래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제게 어떤 책이 좋으냐, 책을 어떻게 읽어야겠느냐 묻는 분들이 퍽 있습니다. 이런 물음은 대답하기 참 어려워요. 저마다 좋아하는 게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잖아요.

저한테는 참 재미있는 책도 그분에게는 어렵거나 따분할 수 있어요. 그래서 "마음에 와닿고 가슴을 울리는 책을 사서 읽으세요. 인터넷으로 주문하지 말고 책방에 가서 10분이나 20분 동안 읽어보고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사서 보세요" 하고 말씀드립니다.

따로 어떤 책을 읽으라고 말씀드리기보다는, 그분 스스로 여러 가지 책을 찾아본 뒤 느끼면서 골라내는 일이 참으로 도움이 되거든요. 어쨌든 자기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서 책을 사서 읽으며 '잘 골랐다'와 '잘못 골랐다'를 느낄 수 있어야 책을 보는 눈길이 나아집니다.


<2> 마음에 든 한 구절을 깊이깊이 되새기기

지난주에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사기사와 메구무, 자유포럼, 1998)이라는 책을 사서 차근차근 읽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퍽 이름난 소설가 메구무씨가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배우면서 지낸 이야기를 쓴 책입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지은이와 책 모두 낯설었어요. 그런데 이 책을 고른 까닭은 출판사 이름 때문입니다. '자유포럼'이 어떤 출판사인지는 모르나 <스물네 개의 눈동자>(쓰보이 사카에)라는 대단히 훌륭한 소설을 우리 말로 옮겨냈거든요.

<스물네 개의 눈동자>는 1961년에 처음 우리 말로 나왔다가 판이 끊어진 뒤로 거의 마흔 해 만에 다시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출판사 책도 오래지 않아 사라졌고 지난 7월에 문예출판사에서 새로운 판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아무튼. 제 가슴을 울린 책 가운데 하나를 펴낸 곳이라서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이란 책을 집어서 구경했습니다. 책방에 서서 서른 쪽쯤 읽다가 뭉클한 대목 하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서슴없이 이 책을 샀습니다.

.. '외국에 나가면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지극히 일반적인 상식을 미국인은 깨닫지 못했지만, 앞으로 점점 확실하게 형성될 '세계의 아시아' 속에서 일본인이 그것을 답습하지 않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아시아에서 일본이 '미국의 미니어처'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빈다 .. <29쪽>

이 대목을 읽으며 별을 둘 그렸습니다. 책도 잠깐 덮고 생각해 봤어요. 아, 우리도 이제는 이렇게 따라가지 않나 싶었거든요. 아직 한국사람은 다른 나라에 나갔을 때 '한국말이 안 통하는 것' 때문에 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땅에 돈벌러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에게 어떻게 하나요? 모질게 푸대접하죠? 이런 데에서 안 좋은 낌새를 느낄 수 있어요.

글쓴이 사기사와 메구무씨는 미국사람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다른 나라로 간다면 그 나라 말을 할 줄 알아야 하며, 그 나라 사람이 미국말을 못해서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건 스스로 짐질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 대목은 있는 그대로만 생각하고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책장을 잠깐 덮고 곰곰이 더 헤아리면서 "우리는 어떤가? 이 이야기를 다른 곳으로 이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가지를 차근차근 쳐 봐요. 그러면 뜻밖에도 더 깊은 생각과 슬기를 얻을 수 있어요.


<3> 책 한 권 제대로 읽어 보자구요

괜찮다고 느끼는 책에 푹 빠져들어서 그 책을 서너 시간 만에 다 읽어내는 일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책을 쓴 사람은 책 한 권을 쓰느라 서너 시간만 들이지는 않았겠죠?

그래서 저는 책 한 권을 읽을 때, '이 책을 쓴 사람은 얼마나 긴 시간을 들이고 많은 것을 보았으며 얼마나 숱한 사람과 일을 부대끼고 겪으면서 자기 안에서 곰삭이고 담아냈을까?'를 헤아려 봅니다. 그러면서 책을 좀더 느긋하게, 차근차근 읽는 편이에요.

제 가슴을 울리는 한 마디, 별을 하나나 둘, 또는 셋까지 그릴 만한 글월을 썼다면, 그 글월 하나는 하루이틀 사이에 나올 수 없거든요. 그래서 그런 대목은 몇 날 며칠이고 입안에서 굴리면서 곱씹습니다. 그러면 그 글월을 처음 읽을 때는 미처 못 느낀 새 맛, 새삼스러움도 다가와요.

우리가 하는 책읽기도 이런 테두리에서 생각해 봐요, '제대로' 읽기와 '빨리' 읽기를 말입니다. '빨리'라고 해서 그냥 후닥닥 읽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후닥닥 읽는 것은 처음부터 이런 테두리에 넣을 수 없어요. 뭐랄까, 가슴을 울리는 책 한 권을 서너 시간이나 하루이틀 만에 읽어내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한 번 읽은 책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읽는다지요? 그런데요, 그렇게 여러 번 다시 읽는 일도 좋지만, 한 번 읽는 시간을 좀 늘여 보면 어떨까요?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읽을 만한 책이라면, 그 횟수를 줄여서 두 번이나 세 번만 읽어보는 겁니다. 그 대신 열 번이나 스무 번 읽을 시간을 들여서요.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배웠던 학교 공부가 떠오르기 때문이에요.

우리들이 학교에서 교육받는 일을 생각해 봐요. 열~스물~서른 가지가 되는 과목을 차근차근 배우죠? 그 어느 과목도 한꺼번에 한 권을 다 뗀 뒤 다른 과목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한 가지만 쭉 배우는 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학문을 하고 무슨 일을 하건, 어느 것 한 가지만 안다는 건 대단히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마음만 착해서도 안 되고 지식만 많아서도 안 돼요. 마음과 지식을 골고루 갖춰야 좋아요.

이 얘기는 나중에 좀더 꼼꼼히 할 텐데요, '널리'라는 대목은 둘레를 차근차근 살피면서 알맞게 나아간다는 뜻도 담습니다. 돈버는 바깥일만 하는 게 아니라 밥하기, 빨래, 청소 같은 집안일도 두루 할 수 있어야 좋고, 집에만 매여 살기보다 바깥 나들이도 두루 다니며 세상을 맛보고 부대껴야 좋아요. 이러는 가운데 살아가는 일과 보람을 찾지 싶어요. 내가 태어나서 일하고 노는 밑바탕, 본질이 무엇인가를 찾는다고 할까요?

그러니까요, 우리 마음에 들고 참 좋다고 느끼는 책을 열 권이고 스무 권이고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 그 책을 날마다 다섯 쪽이나 스무 쪽씩 읽어 나가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열 가지나 스무 가지 책을 날마다 다섯 쪽이나 열 쪽씩 읽는 거죠.

이렇게 읽으면 왔다 갔다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긴 소설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긴 소설은 대체로 한꺼번에 읽어야 좋은데, 헷갈린다면 '가계도'를 그리면서 읽으면 괜찮아요.


<4> 책읽기를 얼마나 즐기나요?

문제는 책 한 권 제대로 읽는 데에 있습니다. 책 한 권 제대로 읽는다는 이야기는 한 번 태어나서 부대끼는 우리 삶을 좀더 알차게, 좀더 제대로 꾸려 나가자는 이야기예요.

그럭저럭 좋은 책이니까 읽는 게 아닙니다. '참으로 좋은' 책을 가려내어 읽어야 좋습니다. 연애를 할 때, 대충 아무나 만나서 놀고 헤어지는 게 좋은가요? 참으로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인연으로 맺으면서 즐기는 게 좋은가요? 돈버는 일을 할 때, 대충 아무거나 돈벌이가 되는 거만 하면 좋은가요? 참으로 자기 마음에 들고 보람이 있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게 좋은가요?

그냥 재미 삼아서, 심심풀이로 책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켤 때 '아주 좋은 다큐멘터리나 풀그림'을 보려고 하지 않듯, 책이나 영화도 그렇게 볼 수 있어요. 뭐, 사람이 어떻게 언제나 '가장 좋은 일'만 하고 '가장 마음에 닿는 책'만 읽을 수 있느냐 물으실 수 있을 텐데, 그럴 수 있습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하면 얼마나 괴롭고 슬프고 따분하고 고단한가요? 마음에 있는 일을 하면 얼마나 즐겁고 신나고 재미있고 기운이 샘솟나요? 지금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안 해도 좋은 것, 아니 안 해야 할 것도 하잖아요?

밥도 그래요. 꼭 먹어야 좋은 것, 입맛에도 맞고 맛있는 것을 알맞게 먹기보다는 맛있지도 않은 것을 배 채운다고 꾸역꾸역 먹지 않나요? 혀가 달고 짜고 매운 것에 길들어서 배가 불러도 밥먹기를 멈추지 않아 배가 터질 듯하게 먹어대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뱃살은 늘고 운동하기는 싫어지지 않나요?

책을 '많이 널리 빨리' 읽는 일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덜 좋을' 뿐입니다. 좋다는 잣대를 1부터 10까지 있다고 할 때 '많이 널리 빨리'는 1이나 2만큼만 좋은 일입니다. 한 번 태어나서 사는 이 삶, 얼마나 소중합니까? 시간은 얼마나 아깝습니까?

그렇다면 이 삶을 꾸리는 동안 우리에게 '10만큼 좋은 책읽기'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처음부터 '10만큼 좋은 책읽기'를 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5만큼은, 그래서 다음엔 7이나 8만큼 좋은 책읽기를 할 수 있다면 더욱 좋아요.

바로 이 7이나 8만큼 좋은 책읽기가 '제대로' 읽기입니다.


<5> 좋은 책 즐기는 마음을 품어 보기

어떤 책을 만들어 한 해 만에 100만 권을 팔아 '널리' 읽혀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책이 널리 팔려서 읽히기는 했어도 '제대로' 만든 책이 아니라면 어떻겠습니까? 출판사나 우리 책마을 문화로 헤아린다면, 100해 동안 1만 권씩 팔아서 널리 읽힐 만한 책이 있는 게 더욱 도움이 되고 좋습니다.

한 해 만에 100만 권이 팔렸으나 이듬해에는 사라져 버리는 책이 많아요. 팔리기로는 참 많이 팔리지만 그다지 우리 삶과 일과 놀이에 도움이 안 되는 책 또한 많습니다. 거의 안 팔리는 책이지만 몇 번이고(십 년이나 이십 년마다 다시 펴내면서) 다시 살아나는 책도 있어요.

어느 쪽이 더 좋은 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무리 많은 사람들 눈길을 끌었다고 해도 이듬해에는 사라지거나 10해쯤 뒤, 나아가 쉰 해나 백 해쯤 뒤에는 어느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하고 잊어버리는 책이라면 우리도 굳이 읽을 만한 찾을모가 없다고 말입니다.

꼭 오래도록 남는 책(고전이 될 만한 책)을 읽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읽는 책이 모두 오래도록 남는 것도 아니고, 오래도록 남는 책이라고 해서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우리 자신에게 참 좋다고 느껴지는 책, 우리 마음을 울리고 움직이는 책, 이 책 하나를 읽는 동안 아주 행복하고 뿌듯한 책, 읽고 나서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서 즐거움을 선사하는 책, 이런 책을 손수 사서 읽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런 책을 너무 후닥닥 읽어치우지 말고 느긋하게 제대로 읽자는 이야기예요.

참 쉽고 마땅한 소리를 너무 길게 늘어뜨렸나요? 한 해가 지나가는 마당이라 좀 주책을 떨었습니다. 2005년 한 해에도 우리네 책마을이 좀더 살뜰할 수 있으면 좋겠고, 책읽는 우리들도 좀더 책읽는 눈높이를 다잡아서 '참으로 좋은 책 하나'를 기쁜 마음으로 찾아내어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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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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