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과잉의 시대, 새해는 없다

등록 2004.12.31 15:14수정 2005.01.0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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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의 마지막 날이 저물고 또 새날이 밝지만, 새해는 없다. 매양 그렇듯 1월의 첫날은 돌아오지만, 우리에게 새해는 없다. 신년벽두라고 저마다 새로운 기분을 가져보지만, 새해는 없다. 떡국을 끓여 먹고 세배를 하며 양력 설이라 들썩여도, 적어도 이번만큼은 새해는 없다.

송년회니 망년회니 어쩔 수 없이 취해봤지만, 그 술기운에서 깨어나도 새해는 찾아볼 수 없다. 새해라고 우겨보았자 그것은 달력만 알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태양을 우러러 서양인들이 잘 만든 것이라 해도, 역법의 새해는 허망하다. 변화 없는 새해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년 전에도 사람들은 새해를 맞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셈이었다. 새해라면 적어도 무슨 일이든 일어나야 한다는 기대가 있다. 그런데 우리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새해가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는 까닭은 그럴듯한 꿈을 꿀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한 해는 너와 나에게 어떤 꿈을 심어 주었는가. 아무리 그래도, 갈 것은 가고 올 것이 와야 진정 새해인 법이다. 그냥 보내버린 일년이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한 해라면, 그것은 하릴없는 시간의 흐름 외에 무엇이겠는가. 지난 해에도 이번 해에도 달력만 바뀌었을 뿐이지, 새해는 없다. 우리에게 바뀐 것이 없다면, 여전히 새해는 없다.

우리게게 바뀐 것이 없다면

많은 사람이 변화를 원했는데 왜 바뀐 것이 없는가. 그토록 개혁을 부르짖었건만 제도는 어찌 그대로인가. 노력이 부족했는가 아니면 여전히 벽이 너무 두터웠는가. 새해를 맞지 못한 사람들은 마냥 1월을 허투루 보낼 일이 아니다. 무참해진 심사를 회복시킬 수 있도록 성찰을 거듭해야 한다. 그 감정의 맞은 편에서 승리인지 패배인지 분간하기 힘든 혼돈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깨달아야 한다. 변화와 개혁이 가진 사람의 몫을 함부로 빼앗고 평온의 방석을 일순에 뒤집는 일이 결코 아니란 것을.

실패했다고 허탈해하는 쪽이나 상대를 일순 좌절케 했다고 성공한 것으로 착각한 쪽이나 진실로 새해를 맞지 못한 건 매한가지다. 다시 한번 출발점에 서서 원칙을 생각하고 규칙에 동의해야 한다. 자기 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와 내가 속한 사회의 성숙을 위해서. 그리고 그쯤에 가서야 가능할 진짜 새날을 기대하기 위해서.

정치든 뭐든 만사가 뒤죽박죽이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모두 제각각 감정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다시 돌이켜봐도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한 해는 보기 드문 감정 과잉의 시대였다. 그러니 격정적이긴 했을 테지만, 제대로 바뀐 것은 없다. 결국 누구에게도 이로움이 되는 사회 변화,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해악이 되지 않는 제도 개혁은 감정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이 남용된 증거는 얼마든지 들이댈 수 있다. 주장이나 논리로는 이런 것도 있었다. 어쨌든 새 정부가 시도하는 변화와 개혁은 무조건 반대하는 논객이 있다. 어쩌다 정부의 정책이 시민단체의 주장과 비슷하기만 해도 홍위병을 들먹이는 위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이 땅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보수주의자들이 대동단결했다. 광복과 정부 수립 이래 유례가 없던 일이다.

점잖게 양비론으로 일관하던 보수 지식인들도 이제야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조동중의 칼럼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보수주의자는 애국주의자로 불러도 무방하다. 그래서 시국을 판단한다면, 낙관적이다. 최소한 이런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의미에서는 노무현의 집권도 긍정적이다.

이런 고상한 통찰력은 현실로도 드러나고야 말았다.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마는, 관습헌법을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만들어버리고만 헌법재판소가 첫 손가락에 꼽히지 않겠는가. 관습헌법의 해괴한 논리는 오히려 다음의 문제다. 누구보다도 감정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하는 최고위 공직자들이 거침없이 감정을 드러내고 말았다는 현실이 개탄스런 것이다. 사법부의 정점에 있는 법률가들이 미리 작심한 결론에 견강부회격으로 꿰맞춘 위헌 결정문은 감정 폭발의 결정적 증거로 역사에 남을 터이다.

감정 과잉의 시대

사소한 이유로 대통령 탄핵 소추를 의결해버린 행위도 오직 감정의 산물이지만, 국가보안법에 대한 야당의 태도도 그 대열에서 유달리 눈에 띈다. 반세기도 더 전에 억지로 통과시킨 법률, 개인의 사상과 양심을 교묘히 유린하여 사회의 반쪽을 짓눌러 왔던 이념의 흉기를 없애려는 노력은 당연한 것이다.

문명 사회와 현대 국가의 수치일 수밖에 없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이번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염원이었다. 게다가 법의 폐지로 나타날 현상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야당의 대표부터 당운을 걸고 그 법을 사수하겠다는 건 무엇인가. 역시 감정의 폭발에 불과하다.

걸핏하면 내세우는 경제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여기저기서 부르짖는 경제는 누구를 위한 경제인가. 목소리 높이는 자 스스로를 위한 경제인가, 모두를 위한 경제인가. 근본적으로 부자를 위한 경기 회복을 바라는가, 빈자를 위한 제도 개선을 바라는가. 부자의 생활 기반이 안정되고 존경 받아야만 빈자에게 반기라도 끼쳐질 수 있단 말인가. 이 지구 위에 완전한 사회주의도 순수한 자본주의도 존재하지 않는데, 분배만 얘기하면 색깔론을 들고 나서는 것도 유치한 감정의 표현일 따름이다.

이런 세상이다. 이렇게 지나친 감정만 앞세웠기에 우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바람직한 변화나 이상적인 개혁은 감정만으로 안 되듯 이성만으로도 부족하다. 그것은 이성과 감정이 균형을 유지할 때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변화와 개혁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새해란 필요없다.

그래서 새해는 없다. 하지만 똑같은 삶이 되풀이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새해는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새해는 변화와 개혁을 위해 저만치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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