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취생의 밥상

등록 2005.01.02 21:52수정 2005.01.0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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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마지막 날.
집안 구석 구석을 청소하고 부엌도 깨끗이 치우고 목욕탕에서 묵은 때도 말끔하게 벗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것저것 하다보니 저녁을 먹기는 좀 늦은 시간이지만 누군가 그랬던가. 한 번 못 먹은 끼니는 평생 찾아먹을 수 없다고. 그래서 올 해 마지막 식사를 위해 근사한 식탁을 준비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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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혁

내 상차림은 요즘 대체로 이런 형식이다. 밥과 국은 항상 빠뜨리지 않고 끼니 때마다 새로 만들며 기본 반찬에 중국식 볶음요리 하나.

며칠 전에 집에 다녀온 탓에 홍어가 눈에 띈다.

아래 사진 속 요리는 표고버섯과 피망 고추마늘소스 볶음이라는 긴 이름을 가졌다. 원래 중국요리 제목들이 다 이런 식이다. 요리에 사용한 재료와 조리법을 이어서 적으면 된다.

작년부터 시작한 중국요리는 간편하고 기존의 한식 반찬과는 색다른 느낌을 줄 수 있어 즐겨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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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혁

만드는 법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사실 요약할 것도 없이 정말 간단하다).

준비물
표고버섯 3개, 피망 1개, 대파, 마늘 약간, 고추마늘소스(또는 두반장) 1큰술, 굴소스(약간), 식용유, 참기름 약간, 물전분


1. 일단 표고버섯과 피망을 적당한 크기로 썬다. 크기를 비슷하게 썰어주는 게 좋다.

2. 대파, 마늘을 잘게 썰어 준비한다. 대파와 마늘을 기름에 튀겨내어 기름에 향을 배게 하는 것이 중국요리의 시작이다.

3. 고추마늘소스 1큰술에 굴소스 1/3큰술을 준비한다.

4. 녹말과 물을 1대 3정도 비율로 섞어 물전분을 준비해둔다.

5.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팬을 뜨겁게, 아주 뜨겁게 달군 후 2에서 준비한 것을 넣고 튀긴다. 기름이 많이 튀니 조심할 것.

6. 기름에 향이 어느 정도 배면 썰어놓은 피망을 넣고 몇 초간 볶는다.

7. 표고버섯을 넣고 볶는다. 오래 볶지 않아야 한다.

8. 3에서 준비한 소스를 넣고 재료와 잘 섞이도록 뒤집어준다.

9. 재료에 골고루 소스가 묻으면 물을 20-30 cc 정도만 넣어 조금 더 볶아준다.

10. 불을 줄인 후 물전분을 넣어가며 농도를 조절한다. 불을 너무 세게 하거나 물전분을 한꺼번에 다 넣으면 전분이 다 엉기게 된다.

11. 걸쭉하게 되면 마지막을 참기름으로 마무리하고 접시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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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혁

다음 반찬은 돼지고기 김치찌개. 묵은 김치와 돼지고기만 있으면 맛은 특별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처음 끓일 때 물을 조금만 붓고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오래 끓여야 깊은 맛이 우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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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혁

내 고향 함평쌀에 검은콩과 보리 그리고 이름이 기억 안 나는 또 하나의 잡곡이 모여 나름대로 4곡밥. 모두 어머니가 챙겨주신 것이다. 직접 어머니가 해주신 건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전부 어머니가 지어주신 밥이나 마찬가지다. 압력솥에서 지어내니 더 고슬고슬하니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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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혁

2004년 내가 제일 맛있게 먹음 음식 중에 하나인 홍어. 나의 홍어중독에는 김규환 기자님의 홍어기사도 한 몫 단단히 했다. 며칠 전 고향에 갔을 때 어머니가 챙겨주셨다. 홍어를 맛있게 먹었다고 몇 번 말씀드렸더니 내려간다고만 하면 이제 자동으로 사서 얼마 만큼 삭혀두신다. 요번 것은 별로 삭지 않았지만 어머니표 홍어 전용초장에 김치에 싸서 싱싱한 채로 먹으니 나름대로 멋도 있고 맛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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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혁

산초를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나도 절에 다니고서부터 알기 시작했으니까. 산에 지천으로 널려있다고 한다. 추어탕을 먹어본 사람은 이 산초 가루를 넣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맛이 맵고 소화를 돕는 효능이 있어서 한약재료로도 쓰인다. 산초를 짜서 만든 산초기름은 꽤 비싸단다. 내가 다니는 절인 화순 마하연의 스님이 챙겨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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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혁

만날 짠 것만 있는 식탁에 유일하게 짜지 않은 반찬이다. 또한 유일하게 신선한 생 것이기도 하다. 근데 이 짜지 않은 반찬을 짠 된장에 또 찍어먹으니 우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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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혁

깍두기와 파김치. 파김치는 내가 좋아하는 김치다. 푹 익은 것이 정말 파김치가 돼버렸다. 물론 김치도 어머니가 담그셔서 고속버스로 보내주는 걸 먹고 있다. 그러고보면 어머니 손길이 닿지 않으면 내 밥상은 한없이 초라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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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혁

식사가 끝났으니 다음은 후식이다. 자취생일수록 잘 챙겨먹어야 부모님 걱정을 덜어드린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내가 '천원짜리 여섯 알의 노란 행복'이라 이름 지은 동네 과일가게에서 파는 6개 천원하는 귤. 시원할 때 먹어야 제 맛이다. 그리고 크림 넣은 커피를 싫어하는 내가 즐겨마시는 블루마운틴.

이렇게해서 2004년 마지막 만찬은 끝났다. 배가 불러오니 드는 생각은 딱 하나 뿐. 2005년에도 이렇게만 잘 먹고 잘 살아보자! 그리고… 2005년 마지막 날에는 꼭 저 건너편에 예쁜 색시를 앉히자!

덧붙이는 글 | 제 미니 홈피에도 실렸습니다. 
http://cyworld.com/prjana

덧붙이는 글 제 미니 홈피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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