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5위 확보가 급선무"

[인터뷰] 드림위즈 이찬진 사장 "인생은 마라톤, 꿋꿋이 나아갈 뿐"

등록 2005.01.03 12:03수정 2005.01.0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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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사랑 이정일

“요즘 별로 바쁘지 않은데요. 언론에서 다루지 않으니 더 잠잠해 보이죠.”

‘한국의 빌게이츠’가 요즘 너무 조용한 것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씩 웃으며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밀린 숙제를 끝낸 듯 이찬진 사장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렇게 카메라 앞에 섰다. ‘한가하다’고는 했지만 최근 두어 달은 인티즌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9월 계약해서 서비스를 통합하고 10월 데이터 센터를 옮기느라 진땀을 흘렸다. “혼란스러워하는 인티즌 회원들을 다독이는 일도 만만치 않았지만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는 분위기”라며 한시름 놓았다.

창립 5주년, 재도약 노린다

드림위즈가 인티즌을 인수한 것은 지난 해 9월. 게임사업과 웹진을 뺀 커뮤니티와 도메인 모두를 넘겨받았다. 온라인 게임 ‘군주’를 중심으로 게임 전문업체로 거듭나려는 인티즌과 포털 경쟁에서 앞서려면 새로운 커뮤니티가 필요했던 드림위즈의 계산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지금처럼 선두권 포털에만 방문자가 몰리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서비스를 덧붙이는 ‘몸 불리기’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몸집만 키운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파란이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습니다. 혜택을 본 것은 광고비만 잔뜩 받아 챙긴 신문사들뿐이지요. 네티즌들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왜, 내가 거기 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없기 때문이지요. 드림위즈도 같은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드림위즈는 경쟁 사이트보다 e-메일 서비스가 강하다는 평을 받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그의 말마따나 “e-메일은 좋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게 네티즌들이다. 방문자를 오랫동안 붙잡아놓을 서비스가 아쉬웠던 이 사장은 인티즌 커뮤니티가 그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인티즌은 DVD 사이트 ‘DVD 프라임’, 결혼정보 사이트 ‘결사모’ 등 내로라 하는 마니아 커뮤니티들이 즐비합니다. 전체 회원은 20만명 정도지만 마니아의 특성상 트래픽이 대단히 높습니다. 이로써 드림위즈는 커뮤니티 포털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드림위즈는 인티즌을 인수한 뒤 성적이 한결 좋아졌다. 11월 셋째 주(15~21일) 인터넷매트릭스 발표에서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에 이어 포털 부문 5위를 차지했고 방문자와 페이지뷰에서도 엠파스와 파란을 근소하게 앞섰다. 하지만 아직은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5위를 굳히려면 인티즌과의 통합 작업을 말끔하게 끝내야 한다.

“메뉴는 웬만큼 정리가 된 것 같은데, 종전 드림위즈와 인티즌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한쪽에서 놀다 다른 곳에 가면 다시 로그인해야 하는 문제를 비롯해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게 남아 있습니다. 1월까지 마무리하면 그때부터 통합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겠지요.”


5위권 확보가 급선무

현재 포털 사이트는 1, 2위 그룹으로 나눠 있다. 선두 그룹에는 다음, 네이버가 앞서는 가운데 그 뒤를 네이트와 야후가 쫓고, 2위 그룹에는 드림위즈, 엠파스, 파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드림위즈가 선두 그룹에 들어가려면 엠파스와 파란은 물론 옥션을 제쳐야 합니다. 명색이 포털인데 전자상거래에 밀려 있으니 자존심이 상합니다. 옥션을 넘어 단독 5위 자리를 굳히는 게 가장 급한 숙제입니다.”

99년 설립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드림위즈는 이번 인티즌 인수로 설립 5주년을 뜻 깊게 맞았다. 이와 함께 매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광고영업에도 자신감을 얻었다.

“내수가 위축되면서 모두들 지갑을 꼭 잠궜지만 마니아들은 살 것은 반드시 삽니다. 기업들이 전체 광고비를 줄이면서도 마니아 사이트만큼은 챙길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요. 지금까지는 클럽이 개별적으로 광고를 받았지만 아마추어라서 서툴렀습니다. 앞으로는 회사 차원에서 관리해 회원들은 더 많은 혜택을 받을 것입니다.”

광고에도 욕심을 낼 뿐 아니라 지금까지 손을 대지 않았던 사이버 머니에도 눈길을 돌리는 등 최근 이 사장은 ‘돈 되는 일’에 부쩍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사이버 머니만 해도 얼마 전까진 “꼭 그렇게 돈을 벌어야 하느냐”며 애써 외면해왔지만 ‘사업은 사업’이라는 생각에 모질게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그는 “회사를 꾸려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원칙을 깼지만 그래도 드림위즈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고 털어놨다.

드림위즈는 ‘생활 인터넷’을 추구한다. 이사장은 “자극적이면서 유행만 좇는 사이트가 아니라 누구나 편안하게 들러 즐기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곳”이라면서 “인티즌 인수를 계기로 미니 홈피와 블로그를 함께 꾸려가는 ‘1인 미디어’ 서비스를 완성, 그 목표에 한발 다가섰다”고 자평했다.

블로그 타입의 홈피에서 탈바꿈한 ‘뻔뻔(funfun)한 홈피’는 10대와 20대 초반을 노리고, 인티즌 블로그 ‘마이 미디어’는 20대 이상 청장년층을 공략한다. 여기에 메신저 서비스 ‘지니’가 10대 이용자를 탄탄히 이끌고 e-메일 서비스도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어 드림위즈의 미래는 한결 밝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서비스를 적극 늘려나갈 계획이지만 실탄(돈)이 넉넉하지 않은 게 아쉽습니다. 하지만 드림위즈의 미래를 믿고 손을 맞잡을 상대가 나타나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공학도의 호기심이 인생 바꿔

이찬진 사장은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2학년 때 ‘서울대 컴퓨터 연구회’(SCSC)에 가입하면서 IT 인생을 걸었다. 동아리에 들어가기 전부터 컴퓨터 전문지를 통해 실력을 부쩍 키워놓았던 그가 대외적으로 이름을 날린 것은 체신부가 주관한 ‘우편번호 자동변환 소프트웨어 공모전’에서 우승하고서다. 1988년 우리나라 우편번호가 5자리에서 6자리로 늘어나면서 체신부는 이를 자동화하는 프로그램을 뽑는 공모전을 열었고, 이사장은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상을 거머쥐었다. 산뜻한 신고식을 치른 이사장은 그렇게 자신의 분신인 ‘아래아한글’을 향해 나아갔다.

아래아한글이 나오기 전에는 삼보컴퓨터의 ‘보석글’과 금성의 ‘하나워드’가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외국 워드프로세서를 한글화한 것에 불과했다. 그 외에도 몇 가지가 더 나왔지만 제각기 서로 다른 코드를 써 특정한 시스템과 프린터에서만 돌아가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러던 1988년 여름, 모든 컴퓨터가 갖춘 그래픽 기능으로 한글을 그리는 ‘한글 2000’이 선보였다. 호환성이 좋아 한글 카드가 없어도 아무 데서나 돌아갔지만 이 사장이 보기에는 아쉬운 구석이 많았다.

‘한글 2000’을 모델로 '아래아한글'에 도전한 그는 “당시에는 젊은 공학도의 순순한 도전이었을 뿐이다. '아래아한글'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오랜 산고 끝에 ‘아래아한글 1.0’이 탄생하자 이 사장은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생산과 유통, 판매를 ‘러브리 컴퓨터’에 맡기고 수익을 50대 50으로 나눴다. 그렇게 번 돈 5천만원으로 한글과컴퓨터(한컴)를 차렸다. 1990년 한글날(10월9일)이었다.

'아래아한글'은 대박을 터트렸다. 91년 1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한컴은 92년 7월, ‘아래아한글 2.0’을 내놓았다. 워드프로세서로는 처음 한글 철자를 검색했고 윤곽선 글꼴을 써서 확대와 축소가 자유로웠던 '아래아한글 2.0'은 두 달간 3만 카피가 팔리는 인기를 누렸다. 한컴의 상승세는 거침이 없었다. 93년, 드디어 매출액 100억원을 이뤘고 아래아한글 이용자는 무려 10만 명에 이르렀다. 한컴의 무서운 상승세는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MS)를 만나면서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쓰디쓴 경영 실패 맛봐

90년 대 초반 MS는 워드, 엑셀 등 업무용 프로그램을 두루 갖춰놓고 한컴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에 맞서 한컴은 1994년 종합 소프트웨어 회사로 나아간다는 ‘한컴비전 2000’을 선언했다. 이 사장은 “워드프로세서만으로는 MS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전선을 넓힌 것”이라고 털어놨다.

한컴은 사무용 프로그램 패키지 ‘한아름 1.0’을 내놓은 데 이어 MS워드에 맞서는 아래아한글 3.0과 엑셀을 견제하는 로터스 1-2-3, 그리고 그래픽 프로그램인 ‘한그림 1.1’로 이뤄진 ‘한글오피스 3.0’을 선보였다. 94년에는 멀티미디어 전문기업 ‘지오시스템’에 이어 윈도 워드프로세서 ‘지필묵’을 만든 창인시스템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95년에는 한국IBM과 OS/2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한 협력을 시작했고 오피스웨어 업체 ‘나라소프트’와 네트워크 기업 ‘한마이크로시스템즈’를 잇달아 합병했다. 그러나 무리한 확장이 결국 화를 불렀다.

1998년 6월 15일, 이 사장은 한컴이 아래아한글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MS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단기부채 100억 원을 막지 못해 부도 위기에 처했던 한컴은 260억원에 지분 19.9%를 넘기는 것으로 위기를 벗어나려 했지만 시장은 큰 충격에 빠졌다.

세계를 휩쓴 MS 워드가 유독 한국에서만 2인자에 머물렀던 이유는 아래아한글이 버티고 있어서였다. 그런 아래아한글이 맥없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여론은 들끓었다. ‘토종의 자존심’을 이대로 죽을 수 없다며 한글학회를 비롯해 15개 사회단체가 ‘한글지키기국민운동본부’를 세우고 국민 모금에 나섰다.

“어쩔 수 없이 MS에 도움을 청하긴 했지만 내 자식인데 제 마음은 오죽했겠습니까. 외부에서 그렇게 반대하니 결정을 번복할 수밖에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내부에서 반대하더군요. 이왕 시작한 일이니 밀어 붙이자고요. 하지만 제 고집이 좀 센 편이어서요.”

그렇게 아래아한글은 살아났지만 이 사장은 경력에 큰 흠집을 남겼다. 회사가 어려워진 것은 불법복제라는 외부적 요인이 있었지만 회사를 무리하게 키워나가는 바람에 내실이 약해진 내부적 원인도 컸다. 경영자로서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마라톤 경주처럼 꾸준히

한컴에서 물러난 이 사장은 드림위즈로 컴백하지만 인터넷에 대한 관심은 이미 오래 전부터 품어왔다. 한컴 시절 심마니를 만들었고 뒤이어 네띠앙을 출범시킨 것도 ‘미래 경쟁력은 인터넷’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패키지 상품에 대한 한계를 일찌감치 느끼고 있었다.

“워드프로세서의 특성상 수출이 만만찮았고 무엇보다 불법복제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머잖아 PC에 프로그램을 깔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습니다. 인터넷으로 프로그램을 띄워 쓰는 서비스가 본격화되면 패키지 상품은 사양 산업이 되겠죠.”

그렇게 미련 없이 한컴을 박차고 나왔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당시 포털 업계는 다음, 야후, 네이버, 엠파스, 라이코스, 프리챌 등이 경쟁하는 춘추전국 시대였다. 누구도 미래를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정내권 한컴 개발 총괄 이사(현 드림위즈 부사장), 박순백 한컴 부사장(현 드림위즈 부사장) 등 핵심 멤버들은 묵묵히 그를 따라 나섰고, 지금껏 옆을 지키고 있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는 없지만 격식을 따지지 않는 편안함으로 사람들을 은근히 사로잡는다. 이런 매력이 탤런트 김희애씨를 아내로 맞게 해줬다.

김희애씨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너무나 편안한 성품에 마음이 끌렸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로 그는 소탈하고 수수하다. 그리고 대단히 긍정적이다. 드림위즈가 선두권 진입과 코스닥 등록에 실패하는 등 성적이 영 시원치 않았지만 “별 것 아니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국의 빌게이츠’로 벼락 스타가 되었지만 그는 더 이상 100미터 선수가 아니었다. 마라톤을 경주하듯 조금씩 나아가면서 꿋꿋이 재기를 노리는 장거리 선수로 거듭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PC사랑 2005년 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이정일 기자는 PC사랑 취재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PC사랑 2005년 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이정일 기자는 PC사랑 취재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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