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대야, 울지마"

왕따 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내짝궁 최영대>

등록 2005.01.03 14:26수정 2005.01.0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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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운동화에 물이 자꾸 스며들어 '실한' 운동화 한짝을 고르려고 인터넷 쇼핑몰을 뒤적거리고 있을 때다. 인터넷을 하면서 옆에 있던 동생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거 어때?"
"..."
"어?"
"'찐따' 같애."


새해 첫날부터 나는 '찐따'라는 말을 들었다. 이제 스물여섯 먹은 내가 스물네살 먹은 여동생에게 '찐따'라는 말을 들으면서 그 순간에는 배를 꺄르르 잡고 둘 다 웃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말은 상당히 심한 말이었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 습관적으로 상대를 '따'시키는 문화나 언어가 자꾸 만들고 그에 따른 죄책감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다.

학교를 다니면서 누군가를 '따'를 시키거나 '따'를 당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어느 조직에 들어가나 그러한 '따'가 존재하는 사회적 구조를 만들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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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얼마 전 저학년 창작 동화인 <내짝궁 최영대>를 보면서 다시금 '왕따'에 대해 생각해 봤다. 초등학교 때 늘상 '따'의 대상이 되고는 했던 아이들의 전형이 바로 '최영대'다.

영대는 아주 조용했어요. 공부를 할 때도 조용하고 쉬는 시간에도 조용했어요. … 천천히 소리 안 나게 일어나서는 소리 안 나게 걸어다녔어요.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느렸어요. 글씨 쓰는 것도 느리고 밥 먹는 것도 느렸어요. 누가 자기 흉을 보아도 잠자코 있었어요. 아이들은 영대를 놀렸어요. "굼벵이 바보! 쟤는 말도 잘 못한대. 아마 듣지도 못할 거야."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영대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씻지도 않고 준비물도 안 가지고 오고 언제나 같은 옷을 입었다. 아이들은 "생각해 보면 불쌍한 아이였지만 우리는 모두 영대를 따돌렸어요"라고 말한다. 알고는 있지만 무리 속에 묻혀 그냥 놀이 문화처럼 한 친구를 희생시키는 것. 그게 바로 '왕따'의 시작이다.


영대네 반 아이들이 여행간 날 밤이었다. 방귀 소리가 '뽕'하고 나자 아이들은 굼벵이가 방귀를 뀌었다며 영대를 몰아붙인다. 결정적으로 반장이 "이 애요. 엄마 없는 바보 말이에요"하고 소리를 치면서 결국 영대는 "으앙!"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늘 조용했던 영대가 큰 울음을 터뜨리자 아이들은 깜짝 놀란다. 다들 미안하다며 영대를 말려 보지만 영대는 그 뒤로도 한참을 북받쳐 울게 된다. 그리고 영대네 반 아이들은 하나 둘 울음소리가 퍼지더니 다같이 울게 된다.


우리는 울음바다가 되어 버린 방에서 마음껏 울었어요. 모두 영대한테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나처럼 사과를 하고 싶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저 울기만 했어요. 모두 영대 마음이 되어 영대처럼 울기만 했어요. 동이 틀 때까지 그러고만 있었어요. 울다가 잠이 들었어요.

아이들은 진심으로 영대에게 사과하고 그 뒤로 영대를 붙잡고 말하는 연습을 시켰다. 영대가 잘 안된다고 울상을 지으면 아이들은 엄마처럼 영대를 달래 준다.

영대는 우리반에서 제일 소중한 아이가 되었어요. 나에게도 그래요. 영대는 지금 내짝궁이예요.

영대의 큰 울음이 아이들에게도 느껴지고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영대를 짝궁으로 받아들인다. 아이들은 심각하게 '왕따'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왕따'를 당하는 아이는 가슴에 씻을 수 없는 멍이 생기고 만다. 우리 아이들에게 다른 이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서로 보듬어 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 책을 통해 더 절절하게 느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선미기자는 춘천시민광장 꾸러기어린이도서관에서 일하면서 꾸러기공부방을 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선미기자는 춘천시민광장 꾸러기어린이도서관에서 일하면서 꾸러기공부방을 하고 있습니다.

내 짝꿍 최영대

채인선 글, 정순희 그림,
재미마주,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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