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은 희망의 상징이다이종찬
그 때문에 우리 마을 아이들은 솔개로부터 닭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담벼락에 긴 장대를 세워두었다가 초가지붕 위에 솔개가 떠돌면 솔개를 향해 후여후여 휘젓기도 했고, 아예 닭을 닭장에 그대로 가두어 놓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종일 닭들을 닭장 안에 그대로 가두어 놓을 수는 없었다.
"저 넘(놈)의 솔개 땜에 오늘 우리집 닭들 모두 굶어죽게 생겼다카이."
"나는 겨울철만 되모(되면) 저 넘의 솔개 땜에 골치가 딱 아푸다카이. 잘 생각하모 솔개를 잡는 머슨(무슨) 뾰쪽한 수가 있기는 있을 낀데."
"워낙 빨라야제. 장대로 솔개집을 털어뿔라 캐도(털어버리려 해도) 솔개 저 넘은 집을 낭랑끈티(낭떠러지) 지은께네 우짤 수가 있나."
그 당시만 하더라도 닭에게 따로 모이를 주지 않았다. 그저 때마다 끼니를 때우고 난 뒤 어쩌다 쬐끔 남는 음식물 찌꺼기가 곧바로 닭의 밥이었다. 그런 까닭에 지금처럼 음식물 찌꺼기가 남을 게 없었다. 아니, 지금처럼 넘쳐나는 음식물 찌꺼기 때문에 분리수거를 한다거나 하는 그런 고민을 할 까닭이 없었다.
눈깔사탕 하나 제대로 사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고 배 고팠던 그 시절, 사람조차도 먹을 게 모자라 쩔쩔 맬 때였다. 끼니 때마다 닭에게 줄 음식물 찌꺼기가 모자라서 걱정이었다. 또한 그 때문에 닭을 하루종일 황토마당에 풀어놓아 제 나름대로 모이를 쪼아먹게 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수도 있었다.
그때 하루에 서너 번씩 우리 마을에 나타나 초가지붕 위를 빙빙 떠돌던 솔개는 우리 마을의 살림 밑천을 훔쳐가는 날강도였다. 아니,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손등이 터져 피가 나도록 딱지치기와 얼음지치기를 하던 우리들에게 가장 큰 훼방꾼이자 날도적이었다. 어쩌다 솔개에게 닭을 한 마리를 뺏기기라도 하면 마을 어르신들께서는 당장 살림이 거덜난 것처럼 길길이 날뛰었으니까.
비단 닭을 훔쳐가는 것은 솔개뿐만이 아니었다. 족제비도 밤새 닭을 훔쳐가는 큰 도둑이었다. 솔개는 그나마 중병아리보다 더 큰 닭은 함부로 낚아채지 못했지만 족제비는 어미닭이든 중병아리든 가리지 않고 물고 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무섭고 큰 날강도는 이웃 마을에서 살아가는 마을 형들이었다.
그래. 예나 지금이나 늘 사람이 문제였다. 솔개나 족제비야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 애지중지 기르던 닭을 가끔 한 마리씩 훔쳐갔지만 마을 형들은 한꺼번에 몇 마리씩의 닭을 훔쳐갔다.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을 솔개와 족제비에게 억지로 덮어 씌웠다. 사람이 저지른 죄를 애매한 동물들에게 마구 뒤집어 씌웠던 것이다.
"니, 닭 지키라 캤더마는 오데 갔다 왔길레 닭이 한꺼번에 몇 마리씩이나 없어지뿟노?"
"닭을 훔쳐가는 기 오데 솔개하고 족제비뿐입니꺼?"
"그라모 누가 닭을 훔쳐갔단 말고(말이냐)?"
"아까 낮도깨비 몇 마리가 나타나가꼬 그랬다 아입니꺼."
"낮도깨비? 내 이 넘의 손들을 고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