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비지찌개 한그릇 드세요이종찬
세월은 빠르다. 세월은 물처럼 느긋하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총알처럼 쌩 하고 날아가는 것만 같다. 꼭 한 장 남은 묵은 달력을 벽에서 떼내고 새로운 달력을 건다. 을씨년스럽다. 해마다 이맘때 새 달력을 벽에 걸 때마다 나는 12월의 마지막 며칠을 새 달력이 고스란히 훔쳐가버리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어 마음이 울적하다.
흐르는 세월을 누가 막으랴. 아니, 어쩌면 세월은 가만히 제자리에 서 있는데 사람이 달력에 제 나이를 새겨넣으며 세월을 매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한 해가 묵은 해라는 꼬리표를 달고 저만치 기억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한다. 또 한 해가 새로운 해라는 이름표를 달고 숨가쁘게 달려오고 있다.
아쉬움과 기대가 서로 숨박꼭질을 하고 있다. 망년회, 신년회라는 이름표를 단 술자리 모임도 잦아진다. 밤 늦도록 이런 저런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평소보다 많이 마시는 술 때문에 이른 새벽마다 목이 탄다. 얼음 같이 찬 물을 벌컥벌컥 마셔보지만 숙취에 시달린 쓰린 속은 좀처럼 달래지지 않는다.
아침상에 앉으면 마지못해 한술 뜨는 밥알이 모래알처럼 껄끄럽게 느껴진다. 쓰린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얼큰한 해장국물 같은 음식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그렇다고 매일 아침마다 해장국만 후룩룩 후루룩 먹을 수는 없다. 이런 때 콩나물과 잘 익은 김치를 숭숭 썰어넣은 비지찌개를 끓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