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찾사>보다는 <개콘>이지~"

이야기가 실종된 코미디, 삶의 애환 담긴 웃음 보고 싶다

등록 2005.01.07 00:00수정 2005.01.0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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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 TV를 켜고 이 채널 저 채널을 돌리다 보면 '웃음 주고 기쁨 주는' 프로그램이 눈에 띕니다. 별 생각 없이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코미디 프로그램이야? 토크쇼야?'

가수와 탤런트, 개그맨들이 나와 각자의 입담과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는 걸 보면 웃음을 주는 코미디와 토크쇼, 그리고 소위 버라이어티쇼의 경계가 사라지고 그 찌꺼기만 남은 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도 지상파 3사는 대표적인 정통 코미디나 개그를 선보이는 프로그램을 하나 정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KBS의 <개그 콘서트>와 <폭소클럽>, MBC의 <코미디 하우스>, SBS의 <웃찾사> 등이 그것입니다.

정통 코미디의 힘 <코미디 하우스>, 젊은 피가 부족하다

<코미디 하우스>는 가장 전통적인 코미디의 모습을 지켜 나가고 있다는 데 점수를 줄 만한 프로그램입니다. 젊은 사람들 일색인 타 방송사와는 달리 무게 있는 '중견' 코미디언들과 신인 코미디언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무대가 나이 많은 시청자들까지 끌어들입니다.

하지만 그런 면이 오히려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지명도 있는 코미디언들이 각 코너의 중심을 맡다 보니 재기발랄한 신인들은 '양념' 역할에 그칠 때가 많습니다. 대표 코너인 <클레오파트라의 부활>의 경우, 출연자는 십수 명이 넘지만 실제 극을 이끌고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노련한 고참 이경실과 조혜련입니다. 조연이나 신인에게는 짧은 대사 한마디도 감지덕지입니다.

신인 개그맨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콘테스트 식으로 진행하는 <최강의 콤비>도 '선배님'들끼리 뒷자리에 둘러앉아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식으로 후배들의 점수를 채점합니다. 그 후배들은 선배들의 눈에 띈 재능있는 자들로 자기를 발탁한 선배의 응원을 등에 엎고 대결을 펼칩니다. 방청객 100명의 현장 투표로 우승을 가린다고는 하지만 뒤에 자리잡고 있는 선배 코미디언들의 존재가 더 위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그건 나를 두번 죽이는…"이란 유행어를 만들어 낸 <코미디 하우스>의 '노 브레인 서바이벌'.
"그건 나를 두번 죽이는…"이란 유행어를 만들어 낸 <코미디 하우스>의 '노 브레인 서바이벌'.mbc 코미디 하우스
관객들을 심사위원이라는 불편한 자리에 놓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그런 장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코미디 하우스>는 '꽤나 접하기 힘든' 목소리로 혼신의 힘을 다해 라이브를 소화(?)하던 김미연과 "그건 나를 두번 죽이는…"이란 유행어로 시청자들을 '여러 번 죽이던' 정준하 이후로는 이렇다 할 신인이나 대표 코너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 기획 의도에서 '짧고 즉흥적인 것보다는 감동적이고 따뜻한 웃음을 지향한다'고 밝혔으니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듯합니다. 웃음의 속도가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반 박자 느린 것은 분명하지만, 웃을 수 있는 권리는 눈치 빠르고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이들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웃찾사>, 코미디는 사라지고 개그만 남았다

일요일 오후에서 목요일 밤으로 시간대를 옮기고 많은 신인들을 출연시켜 시청률이 급상승한 <웃찾사>는 2004년 많은 유행어를 탄생시켰습니다. 하지만 코미디가 가지는 극(劇)적인 요소보다는 '개그 그 자체'에만 충실한 듯합니다.

물론 '코미디에서 웃기면 그만'이고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프로그램을 엮어 가는 과정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단편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에만 과도하게 치중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듭니다.

<웃찾사>의 대표 캐릭터 '리마리오'. 사진은 리마리오를 닮았다는 말을 듣는 탤런트 이세창이 출연한 모습.
<웃찾사>의 대표 캐릭터 '리마리오'. 사진은 리마리오를 닮았다는 말을 듣는 탤런트 이세창이 출연한 모습.SBS
좀더 과하게 말하면 심한 말장난, 그 자체일 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코너 <뭐야>는 "뭐야"로 시작해서 "뭐야"로 끝나 버리는 도돌이표 같은 고함의 순환일 뿐, 그것 자체로 어떤 웃음을 만드려는 건지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게다가 <단무지 아카데미>, <행님아> 등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몸집이 있는 여자 개그맨을 놓고 "너도 여자냐, 돼지가 말도 하네" 등등 너무하다 싶은 비하 발언을 끝도 없이 늘어 놓습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한지 <비둘기 합창단>에 재무이사 역으로 나오는 한 개그맨은 그녀를 향해 "여기 돼지가 난동을 피워요"하며 재차 삼차 듣기 민망한 발언을 쏟아 냅니다.

물론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외모를 소재로 억지 웃음을 만든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별 고민 없이 그 자체로 웃음을 만들어 내려는, 그야말로 몸으로 '때우려는' 행태에는 다소 어이가 없습니다. 매주 같은 내용으로 타인의 외모와 신체적 특징을 비하하면서 웃음을 만드는 것은 코미디언으로서 '책임 방기' 혹은 '나태함'이 아닌가요?

또 '일단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소위 '엽기'적인 캐릭터에 의존하는 경향도 종종 찾을 수 있습니다. 최근 새롭게 등장한 <동남아 보이즈>는 매주 노래 한곡을 패러디해 선보이는 코너입니다. 한명은 알앤비(R&B) 버전, 또 한명은 영화배우 전도연과 가수 자두의 흉내를 번갈아 냅니다. 나머지 한 사람은 트로트 가수 흉내를 냅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입니다. 기묘한 표정과 어색한 엇박자만 넘쳐날 뿐 그 이상의 내용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아하!"하고 호응할 수 있는 웃음을 보여 달라

사진은 <웃찾사>의 인기 코너 '그때 그때 달라요'
사진은 <웃찾사>의 인기 코너 '그때 그때 달라요'SBS
이는 <웃찾사>를 이끌어 나가는 중심축인 '컬투(정찬우, 김태균)'의 영향이 큰 듯합니다. 수많은 공연 무대에서 다져진 그들의 임기응변식 개그는 어색한 상황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순간 순간 재빠르기는 하지만 깊은 맛이 다소 덜합니다.

지금은 없어진 코너인 <장하다, 한국 말>에서는 한국말처럼 들리는 세계의 언어를 소개했습니다. 다소 억지스러워 보이는 우격다짐식 개그는 <그때그때 달라요>에서도 이어집니다. 순간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재치가 번뜩일 때도 있지만 어색한 상황에 몰리면 "맞죠~!"라고 받아치며 빠져 나가는 순발력(?)을 보면 과연 저게 코미디의 본질일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이벤트식 개그가 <웃찾사>의 극적인 요소를 반감시킵니다. 그래서 극을 진행한다는 것보다는 단순히 쇼를 보여준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염려에도 불구하고 <그런 거야> 같은 일부 코너는 '수긍 가는'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군에 다녀 온 남자들이라면 대부분 "아아~"하며 고개를 끄덕일 만한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의 발굴', <웃찾사>에게 시급한 과제입니다. 과감한 신인을 기용하고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그들의 눈물 나는 노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단발마의 이벤트성 웃음보다는 삶의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찐한' 웃음도 보고 싶습니다.

신인과 코미디극의 조화 <개그 콘서트>

<개그 콘서트>는 앞서 살핀 두 프로그램이 지니고 있는 장·단점을 적당히 잘 안배하고 있습니다. <하류인생> <깜빡 홈쇼핑> <집으로> 등에서 보이는 극의 속도는 중년층에게도 그리 숨차지 않습니다. <개콘>은 한때 식상하다거나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비판도 받았고 지금도 듣고 있습니다만 스스로 연구해 새로운 웃음을 찾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 나라에 콘서트 개념의 코미디를 정착시켰다는 데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무와 파인애플을 갈아 대고 우비와 교련복을 갈아 입으며' 고군분투한 박준형의 노력 등으로 <개그콘서트>는 주축 멤버의 이탈에도 별 타격을 입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빈자리를 참신한 신인들이 메우며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추억을 끄집어 내는 <개그 콘서트>의 '복학생'
그 시절 추억을 끄집어 내는 <개그 콘서트>의 '복학생'KBS
최근 <개그콘서트>에서 주목 받고 있는 인물은 바로 '복학생(유세윤)'입니다. "내 밑으로 다 조용히 햇!" 같은 말이 처음에는 권위적이었던 '옛날' 선배들을 떠올리게 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대부터 40, 50대를 아우르며 공통 분모의 기억을 끄집어 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합니다. 웃음과 추억의 공유, 복학생은 두마리 토끼를 잡은 셈입니다.

"마데 인 코리아, 한번 빠져 보시겄습니까?"를 천연덕스럽게 읊어 대는 '안어벙(안상태)'도 눈에 띕니다. 카메라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꿋꿋하게 풀어 놓는 모습이 어쩌면 오랫동안 사랑 받았던 '친숙하고 밉지 않은' 바보의 전형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개그 콘서트>에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키가 크지 않은 개그맨에게 "너, 앉은 키랑 일어선 키랑 똑같지?"라고 한다거나 살이 조금 찐 개그맨은 "나 하루 여덟끼 먹는다"며 자기 비하식의 언어 유희를 쏟아냅니다. 한 때는 "가슴이, 가슴이…"라며 자신의 가슴을 무기(?) 삼던 한 여자 개그맨이나 남자도 여자도 아닌 몸으로 우스꽝스런 행동을 일삼던 '황마담'이 그 인기 만큼이나 비난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그 콘서트>에는 코미디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룰, 즉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그 안에서 웃음을 찾는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영화를 패러디한 <집으로>에서는 철 없는 손자에게 구박 받던 할머니가 보여 주는 반전이 쏠쏠한 재미를 안겨 주고, <新동작그만>은 내무반 내의 생활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물론 이런 서사성 있는 구조가 모든 코너에서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런 골격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건 <웃찾사>의 <장하다 한국 말>에서 극 중간 일본식 복장을 하고 나와 아무 뜻 없는 "미끼 미끼, 후까시 후까시"를 외치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웃음도 중요하지만 단편적인 말이나 개성 강한 캐릭터보다는 이야기 구조 안에서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코미디, 복고 바람 타고 새로움 추구

개인적으로는 2년 전 온 국민을 웃음으로 몰아 넣었던 <3자 토론> 같은 코너를 좋아합니다. 노무현(배칠수), 이회창(박명수), 권영길(김학도)가 등장해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나아졌습니까"라는 말을 던지는, 그 기상천외한 코미디 앞에서 저는 배꼽을 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즘 코미디의 트렌드는 '복고'에 있는 듯합니다. 어려워진 경제 상황과 지나간 시절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사람들의 속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힘들었던 시절을 웃음으로 회고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가 바뀌었다는 의미도 될 수 있습니다. '복학생'이나 '안어벙'의 인물 설정도 톡톡 튀는 근래의 분위기보다는 과거형에 가깝습니다.

KBS 2에서 방송되는 <폭소클럽>의 잔잔한 인기도 사실은 복고형 웃음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떴다! 김샘>과 "맞아, 그땐 그랬지"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7080 홈쇼핑>이 그렇습니다. 통기타와 어우러지는 형태를 취한 <화니지니>도 과거형에 가깝습니다.

<폭소클럽>으로 입지를 넓혀 지금은 최고의 입담꾼으로 손꼽히는 김제동의 재담도 80년대형에 가깝습니다. 음악 다방에서 음악 선곡이라는 본연의 임무보다는 소위 '이빨'로 명성을 날리던 80년대 DJ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김제동의 재치에 새로움보다는 친숙함을 떠올릴 겁니다.

21세기 초 팍팍한 한국 사회는 드디어 코미디에도 복고 바람을 불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안에서 '사회 풍자'라는 쌀쌀한 칼바람도 함께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블랑카의 뭡니까, 이게> 같은 코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재미있게 긁어 준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이 코너는 시청자들을 웃기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뜨끔하게 하거나 미안하게 만드는데 이는 삶에 대한 따스한 관찰 없이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젊은이들만이 아닌 다양한 세대들이 공유하고, 재미있지만 경박하지 않고, 박장대소하면서도 삶의 애환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코미디 어디 없나요? 한번 웃고 말면 되지, 뭐가 그리 복잡하냐구요? 몸의 650개 근육 중 231개 근육이 움직여 만들어 내는, 인간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복잡다단한 표현이 바로 '웃음'이니까요. 그 중요한 것을 사람들이 점점 잃어 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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