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추억을 끄집어 내는 <개그 콘서트>의 '복학생'KBS
최근 <개그콘서트>에서 주목 받고 있는 인물은 바로 '복학생(유세윤)'입니다. "내 밑으로 다 조용히 햇!" 같은 말이 처음에는 권위적이었던 '옛날' 선배들을 떠올리게 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대부터 40, 50대를 아우르며 공통 분모의 기억을 끄집어 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합니다. 웃음과 추억의 공유, 복학생은 두마리 토끼를 잡은 셈입니다.
"마데 인 코리아, 한번 빠져 보시겄습니까?"를 천연덕스럽게 읊어 대는 '안어벙(안상태)'도 눈에 띕니다. 카메라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꿋꿋하게 풀어 놓는 모습이 어쩌면 오랫동안 사랑 받았던 '친숙하고 밉지 않은' 바보의 전형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개그 콘서트>에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키가 크지 않은 개그맨에게 "너, 앉은 키랑 일어선 키랑 똑같지?"라고 한다거나 살이 조금 찐 개그맨은 "나 하루 여덟끼 먹는다"며 자기 비하식의 언어 유희를 쏟아냅니다. 한 때는 "가슴이, 가슴이…"라며 자신의 가슴을 무기(?) 삼던 한 여자 개그맨이나 남자도 여자도 아닌 몸으로 우스꽝스런 행동을 일삼던 '황마담'이 그 인기 만큼이나 비난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그 콘서트>에는 코미디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룰, 즉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그 안에서 웃음을 찾는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영화를 패러디한 <집으로>에서는 철 없는 손자에게 구박 받던 할머니가 보여 주는 반전이 쏠쏠한 재미를 안겨 주고, <新동작그만>은 내무반 내의 생활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물론 이런 서사성 있는 구조가 모든 코너에서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런 골격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건 <웃찾사>의 <장하다 한국 말>에서 극 중간 일본식 복장을 하고 나와 아무 뜻 없는 "미끼 미끼, 후까시 후까시"를 외치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웃음도 중요하지만 단편적인 말이나 개성 강한 캐릭터보다는 이야기 구조 안에서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코미디, 복고 바람 타고 새로움 추구
개인적으로는 2년 전 온 국민을 웃음으로 몰아 넣었던 <3자 토론> 같은 코너를 좋아합니다. 노무현(배칠수), 이회창(박명수), 권영길(김학도)가 등장해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나아졌습니까"라는 말을 던지는, 그 기상천외한 코미디 앞에서 저는 배꼽을 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즘 코미디의 트렌드는 '복고'에 있는 듯합니다. 어려워진 경제 상황과 지나간 시절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사람들의 속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힘들었던 시절을 웃음으로 회고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가 바뀌었다는 의미도 될 수 있습니다. '복학생'이나 '안어벙'의 인물 설정도 톡톡 튀는 근래의 분위기보다는 과거형에 가깝습니다.
KBS 2에서 방송되는 <폭소클럽>의 잔잔한 인기도 사실은 복고형 웃음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떴다! 김샘>과 "맞아, 그땐 그랬지"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7080 홈쇼핑>이 그렇습니다. 통기타와 어우러지는 형태를 취한 <화니지니>도 과거형에 가깝습니다.
<폭소클럽>으로 입지를 넓혀 지금은 최고의 입담꾼으로 손꼽히는 김제동의 재담도 80년대형에 가깝습니다. 음악 다방에서 음악 선곡이라는 본연의 임무보다는 소위 '이빨'로 명성을 날리던 80년대 DJ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김제동의 재치에 새로움보다는 친숙함을 떠올릴 겁니다.
21세기 초 팍팍한 한국 사회는 드디어 코미디에도 복고 바람을 불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안에서 '사회 풍자'라는 쌀쌀한 칼바람도 함께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블랑카의 뭡니까, 이게> 같은 코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재미있게 긁어 준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이 코너는 시청자들을 웃기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뜨끔하게 하거나 미안하게 만드는데 이는 삶에 대한 따스한 관찰 없이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젊은이들만이 아닌 다양한 세대들이 공유하고, 재미있지만 경박하지 않고, 박장대소하면서도 삶의 애환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코미디 어디 없나요? 한번 웃고 말면 되지, 뭐가 그리 복잡하냐구요? 몸의 650개 근육 중 231개 근육이 움직여 만들어 내는, 인간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복잡다단한 표현이 바로 '웃음'이니까요. 그 중요한 것을 사람들이 점점 잃어 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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