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도 한때는 힘센 수탉이었다

<그림책 속 인생이야기1>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등록 2005.01.06 15:58수정 2005.01.0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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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물기가 젖어든 '아빠'의 목소리에 내 마음이 씁쓰름해졌던 기억이 있다. 딸 자식이 젊어질수록 아빠는 늙어간다. 좌충우돌 어리던 내가 진짜 젊음을 만끽할 나이에 다다랐을 때, 아빠의 머리엔 어느새 흰머리가 나 있었다. 그토록 당당하고 거칠 것이 없었던 씩씩한 우리 아빠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 '내가 아빠에게 뭘 해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a 겉그림

겉그림 ⓒ 재미마주

재미마주의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을 보면 우리 아빠 같은 수탉이 나온다. 한때 그 동네에서 잘나가던 수탉은 나이가 들어 더이상 목소리가 우렁차지 않고, 고기도 잘 씹히지 않고, 술도 많이 마실 수 없는 '늙어 버린 나'를 발견하게 된다. 수탉이 절망에 잠겨 있을때, 수탉의 아내가 조용히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여보, 힘내세요. 당신은 아직도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에요. 이리 좀 와 보세요."
"보세요. 당신 손자, 손녀들이 얼마나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는지…."
"당신 아들들은 또 얼마나 힘이 센데요. 물론 당신 한창 때 보다야 못하지만요."
"당신 딸들은 이 동네 암탉들 중에서 제일 좋은 알을 낳는다고요. 물론 나보다야 못하지만요! 당신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에서 제일 힘세고 행복한 수탉이에요."

얼마 후 수탉은 환갑잔치를 열었다. 수탉이 태어나던 따뜻한 봄날처럼 꼭 같은 날에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즐거운 잔치를 열면서 수탉은 '더 이상 영영 늙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 늙지 않는 나의 모습은 바로 아들, 딸, 손자, 손녀의 모습이다.

어린이들이 보는 그림책을 보노라면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수려한 문체로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아도 가족의 소중함, 우리의 소중함,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 사는 나의 소중함이 인생의 참맛을 느끼게 해 준다.

이 책은 이호백 글, 이억배 그림으로 만든 그림책이다. 여타의 그림책과는 달리 한국적인 색채가 푸근하게 묻어나와 아이들에게 읽어 줄 때도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해 주는 느낌이었다. 우리 어린이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이 이 그림책을 보면서 팔씨름을 하는 수탉, 술을 먹고 뱅글뱅글 도는 수탉의 모습에 마냥 즐거워한다. 하지만 이 아이들도 언젠가 나처럼 아빠의 모습에서 이 그림책 속 주인공 수탉의 근심 어린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을 것이다.

최근 모 회사 CF에서 아이들이 나와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생각난다.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한테 꼭 이 노래를 독파하게 해서 집에 가서 부르게 해야겠다. 그리고 나도 모처럼 마음 먹고 아빠에게 힘내라고 전화를 해야 겠다.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이호백 글, 이억배 그림,
재미마주,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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