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농학,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귀한 유산

[신년인터뷰] 원로농학자 김영진 선생

등록 2005.01.07 11:38수정 2005.01.0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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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영진 선생. 연도까지 정확히 기억할 정도로 기억력이 비상하다.

김영진 선생. 연도까지 정확히 기억할 정도로 기억력이 비상하다. ⓒ 이우성

한국농업사학회 명예회장 김영진(73) 선생은 노익장에도 불구하고 기억력이 엄청 비상하다. 한국 농학사를 다 꿰뚫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큰 사건이 일어난 연도까지 기억한다. 그러니 자신이 몇 년도에 무슨 일을 했는지를 기억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

평생 공부하면서 살아온 것이 기억력을 잃지 않게 한 것 같다고 말씀하는 선생에게서 청년의 혈기를 느낀다.

새해를 맞아 원로농학자인 김영진 선생을 만나 '전통농업을 살리자' 흙살림 캠페인에 대한 고견을 듣고 한국 농업이 과연 어떤 길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들어보았다.

질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하나하나 짚어주는 김 선생의 말씀은 안개 낀 밤바다를 항해하는 나룻배에서 등대가 쏘아대는 빛줄기를 발견한 심정이었다. 이 인터뷰는 지난 해 12월 24일 선생이 사는 분당 근처 한 음식점에서 했다.

- 민간 농업단체 중심으로 어려운 우리 농업의 대안을 전통농업에서 배우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사단법인 흙살림에서는 한해 캠페인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농학자로서 이 캠페인을 바라보는 생각은 어떠신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때늦은 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 농업으로 농사지으면 생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품질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농가소득은 조심스럽군요. 농약이나 화학비료 안 쓰고 생물학 방제를 해야 하므로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그만큼 힘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니 생산과 판매조직이 뒷받침되면 좋겠군요. 지력은 살아날 것입니다. 수량은 떨어지겠지만."

- 전통농업을 오늘에 어떻게 되살려낼 수 있을까요? 방법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을 해주신다면?
"전통농업과 현대농업의 가장 큰 차이는 화학비료와 농약입니다. 벌레 먹은 상품이 더 건강한 식품이라는 것을 많이 홍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부들을 대상으로 현지 견학을 많이 하게 하고 땅이 살아나고 지렁이가 많은 땅을 직접 보여주는 것보다 더 나은 교육은 없습니다."

- 2005년 들어 농사짓는 현실은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수입되는 농산물도 참 많을텐데요. 우리 농업에 가장 걸림돌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현명한 소비자라면 수입 농산물을 좋게 보지 않을 것입니다. 대체로 값이 싸긴 하지만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라면 잘 사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수입되는지 소비자들이 알게 해야 합니다. 세관을 통해 나오는 모든 수입 농산물은 대부분 농약으로 샤워한다고 보면 됩니다. 수입농산물은 위험하다는 것과 국산 농산물의 안전한 재배 현장을 잘 보여주고 매체를 통해 선전하면 좋겠습니다."


- 이 땅을 지키며 농사짓는 농부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농민은 그야말로 농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실한 마음으로 마음 편히 농사지어야 합니다. 그렇게 농사짓도록 정책 환경을 잘 조성해 주는 것이 가장 큰 급선무겠지요. 농부들은 농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농사 짓고 그런 환경을 잘 조성해주는 우리 농촌을 빨리 보고 싶군요."

- 도시 소비자들에게 요구되는 태도 변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소비자들에게 친환경농산물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시각적으로 교육하고 홍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이 1906년에 생겼고 서울대 농대가 그때 생겨 농업근대화 100주년이 되는 2006년에는 기념사업을 크게 할 생각입니다. 100주년 추진위원장을 제가 맡았습니다. 농업박람회를 통해 도시소비자들에게 농산물과 한국 농업을 홍보할 생각입니다.


소비자들은 싸고 품질이 우수한 것을 찾습니다. 밥 한 끼를 돈으로 환산하면 170원 정도입니다. 품질이 좋다 하면 값은 큰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값이 비싸도 사먹을 것입니다. 농산물 구매층이 대부분 주부들이므로 주부들을 상대로 아침시간대에 공영방송을 통해 우리 친환경농산물의 안전성과 우수성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 좋을 것입니다.

사실 농협은 은행 수준의 높은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농민을 생각한다면 농협 직원들 월급의 10%씩은 떼어서 이런 주부 대상의 우리농산물 홍보비로 써도 될 것입니다. 방송을 통해 식품영양학 전문가를 초빙해서 수입 농산물은 독약을 먹는 것과 똑같다는 것을 얘기하게 하면 효과가 클 것입니다. 국가운영을 잘 하려면 정말 홍보를 잘 해야 합니다."

- 농업 근대화 100주년 기념사업은 어떻게 추진할 생각이신가요?
"1906년에 서울대의 전신인 수원농림학교가 세워지고 농사시험장이 일제 통감부에 의해 처음 생겼습니다. 나중에 한국정부에서 인수를 했지만.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면 1884년에 이미 고종이 내탕금으로 남대문 밖에 농무목축시험장을 설치했습니다. 최초의 미국 외교관이었던 최경석 무관이 미국 국무장관에게서 얻은 씨앗 42꾸러미를 가져와 이곳에 보관하고 관리했지요.

그 후 2년 후에 종목국(種牧局)으로 고쳐서 의정부 직속으로 두었지요. 이로 보면 고종은 우리 농업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대단했어요. 1881년에 나온 <농정신편>은 최초의 서양농학을 소개한 책이지요. 신사유람단이 일본에 갔을 때 통역관이었던 안정수가 일본의 신진농학자 쓰다를 만나 나무는 광합성 작용을 하고 산소를 먹고 탄소를 뱉는다는 사실과 땅에도 여러 성분이 있다는 것, 나무 뿌리도 숨을 쉰다는 따위의 서양농학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것을 정리한 것이 <농정신편>입니다. 일본과 거의 같은 때 신농학이 들어온 것이지요.

2006년에 농업박람회를 통해 이렇듯 고유 전통이 있는 우리 농학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지금부터 여러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한국 농업사학자들의 자기반성과 요구되는 역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농학 교육 담당자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서울대에는 농업사 강의가 없습니다. 자기 농업의 전통을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서양학문만 최고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경험농학을 중시했습니다. 서양은 식물을 해부하는 등 내관을 중시했다면 우리는 외모를 중시합니다.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지 않습니까.

민족농학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농업교육을 해야 합니다. 농업연구방법론을 농학과에서도 배워야 합니다. 경제사, 의학사처럼 농업사도 연구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농업사를 연구한 사람은 밥을 빌어먹을 수 없어서 농업사를 전공하고도 규장각이나 박물관에서 근무하여 과학기술사로 전공을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농촌경제연구원장 시절 농업사연구실을 만든 것도 이런 이유이지요."

- 한국, 중국, 일본 농업사학자들은 매년 교류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성과가 많은지요.
"한국, 중국, 일본 농학자들이 2001년 중국 북경대에서 세미나를 하면서 교류를 시작했지요. 그때부터 우리도 한국농업사학회를 조직해서 2002년 일본에서, 2003년에는 농경연 예산으로 경주에서 3국 국제농학세미나를 열었지요. 나는 명예회장으로 있습니다. 2004년에는 중국 북경대, 남경대에서 행사를 했고 2005년에는 일본에서 다시 행사를 열게 됩니다. 국내에 농업학회가 40여개 되는데 조직적인 학회는 농업사학회가 유일하지요. 농업사학회 주최로 3년마다 국제세미나를 국내에서 열게 됩니다. 2006년에는 근대농학교육 100주년 사업과 맞물려 행사를 열 계획입니다."

- 정부 농업정책에 대한 실질적인 지적과 보완책에 대한 의견은 어떠신지요.
"쌀시장 개방이 되고 의무 수입물량이 8%에 합의되면 280만섬 정도 되는데 그걸 어떻게 할지 걱정입니다. 속상합니다. 농업정책에 대해 난상토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농민도 참여시켜 농민에게 정책의 선택권을 일부 주었다면 국가적인 혼란은 이렇게 크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정부는 과감하게 정책을 추진했으면 합니다. 농민을 정책 결정에 과감히 참여시켜 반대 목소리를 줄여나갔으면 합니다. 정부가 좋은 품종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고농서 국역사업은 어디까지 진행되었습니까? 앞으로 남은 작업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농촌진흥청 사서가 고서 국역에 열정을 갖고 있습니다. 도서관 비용을 절약해서 국역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현재 5권이 국역되었지요. <농가집성>, 기능성식품과 식이요법을 다룬 <식료찬요>, 전통식품에 관한 책인 <산가요록>이 곧 출간될 예정입니다. 아직 80권이 더 있고 27권이 진행중입니다. 36권 1질인 <임원경제지>는 지식산업사에서 2005년 봄에 일부 출간하기 시작해서 2006년에 완간할 예정입니다.

연변대에 있던 북한에서 발행한 농업기술사 5권은 연변대에 책 1000권을 기증하고 복사해왔습니다. 잘못 국역된 부분도 바로잡을 것입니다.

왕조실록에 보면 동지섣달인데도 임금에게 영산홍을 갖다 바쳤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때 임금은 '나는 이 꽃을 좋아하지 않으니 대비전에 보내라'고 했답니다. 한겨울에 어떻게 영산홍이 피었을까 의문이 들어 고서를 뒤졌더니 <산가요록>에 우리나라 15세기에 벌써 기름먹인 종이로 만든 온실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왔습니다. 꽃담당 관청인 상원서(常苑署)에서 관리했더군요.

a 열정적인 목소리로 우리 민족농업의 우수성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김영진 선생.

열정적인 목소리로 우리 민족농업의 우수성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김영진 선생. ⓒ 이우성

일제시대 전국을 돌며 우리나라 농민의 농법을 기록하여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을 쓴 다카하시 노보루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조선의 농법으로 황해도 2년3작 작부체계와 개성배추를 들었을 정도로 우리 전통농업 역사 중에는 세계에 드러낼 것이 많습니다.

세종 때 모범 선진농가 150사례를 정리한 것이 <농사직설>인데 15세기에 이미 농작물 생육환경을 인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문에 오방풍토부동(五方風土不同)이라 해서 환경에 맞는 알맞은 것만 하라고 써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참깨 재배는 15세기 이후 지금까지 옛날 방식 그대로 농사짓고 있습니다. 15세기 느삼뿌리를 찧어 물에 타서 뿌려 채소벌레를 잡았는데 이것이 최초의 농약입니다.

고농서 국역사업은 1차 기초작업이 될 것입니다. 각자 자신이 필요한 부분으로 재가공하는 일은 앞으로 해야 할 각자의 몫입니다."

- 살아오시면서 보람된 점이나 여생에 힘 쏟을 일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농림부 차관보 시절인 1967년 8월 쌀 4000만섬을 달성할 때 가장 보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쌀이 흔해졌지만 그 때는 눈물날 때였지요. 잠업과장을 할 때는 외교행낭에 일본의 누에씨를 몰래 들여와 육종시켜 국내 품종으로 만든 것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고농서를 번역했고 번역하게끔 한 것에도 대단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농업사학회를 만든 것도 보람으로 삼을 수 있지요.

앞으로 농업사학회를 진흥시켜 전통농업을 후진에게 알려주는 일이 내가 할 일입니다. 농학에 자부심을 불어넣고 학맥도 세우고 아이디어도 많이 교환하고 싶습니다. 농서를 읽다보면 이렇게 좋은 것이 많은데 서양농학만 좇는 세태를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터뷰 뒤안길

부여가 고향인 선생은 어릴 때 종조 할아버지한테 한문을 배웠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서야 중학교에 갈 수 있었다. 19살에 공주농업학교에 들어갔다. 공주농업학교에서 절치부심 공부하여 6·25 때 부산에서 시험을 치러 수원농대(서울대 전신)에 들어간다. 대학 졸업 무렵 기술고시가 처음 생겼는데 두 번째만에 합격하여 농수산부 사무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다. 미국에 가서 1년간 서양초지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서울대에서 초지학을 처음 도입, 강의하기도 했다.

진흥청 지역실 과장을 거쳐 농수산부 잠업과장(서기관)이 된 때의 나이 36살. 축산국장을 거쳐 차관보까지 승진했으나 80년대 5공 들어서면서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농촌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복직하여 원장까지 역임했고 농업진흥공사 사장도 역임했다. 충남대 교수를 거쳐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통폐합하면서 만든 인문사회연구기관 이사장도 맡았다. 고서연구회장과 한국농업사학회 명예회장으로 있다.

지금도 공부를 많이 하는 통에 기억력이 좋다고 선생은 말한다. 증조할아버지에게 배운 한문 실력 때문에 70이 넘도록 일거리가 노상 있게 된 것을 가장 큰 고마움으로 삼고 있다고.

그는 항상 잰걸음으로 다닌다. 나름대로의 건강유지법이다. 그는 80살까지는 일을 하겠다고 말한다. 농업사학회 터 잘 닦고 잰걸음으로 해야 할 고농서 국역 일은 이 땅에서 선생이 해야 할 소명이자 즐거움인 듯하다. 슬하에 3남3녀를 두었다.

덧붙이는 글 | <흙살림신문> 신년호에도 실렸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음으로 항상 바쁜 걸음으로 걸어가는 선생에게서 갈길잃은 우리 농업의 등대를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습니다.

덧붙이는 글 <흙살림신문> 신년호에도 실렸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음으로 항상 바쁜 걸음으로 걸어가는 선생에게서 갈길잃은 우리 농업의 등대를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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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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