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함몰된 것 같은 풍혈정윤섭
그런데 진짜 샘은 이곳 너럭바위 바로 옆에 있는 샘으로 이 샘은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고 똑같은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산의 정상부위에 그것도 산세도 그리 크지 않은 곳에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은 샘이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같은 신비함을 말해주는지 샘이 있는 바로 위에는 조그마한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비석의 아래 부분이 깨어진 채 서있는 이 비의 글귀들은 어느 문장가(시인)가 이곳을 지나다 쓴 것 같은 글귀들이 모여 있다.
1925년에 발행된 해남군지에 보이는 박종유의 시비가 아닌가 생각해볼 수 있지만 아랫부분이 깨어진 채로 있어 단언하기는 어렵다. 이 비는 관두산의 신비스러움을 노래한 듯 관두산의 역사를 되새기게 한다.
샘을 지나 정상 쪽으로 올라가면 봉수대가 나온다. 지금은 봉수대를 만들었던 돌무더기의 아랫부분만 남아있는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멀리 땅 끝 쪽의 바다와 맞은편에는 진도땅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아마도 이같이 좋은 입지적 조건 때문에 이곳에 봉수대를 설치했던 듯하다.
이곳 봉수대에서 다시 내려와 바닷가 쪽으로 가야 풍혈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풍혈로 진입하는 길목에는 고분을 연상케 하는 대형 돌무더기가 4,5기가 있어 의문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 돌무더기들이 어떤 용도로 이러한 산 정상 부위에 조성되게 되었는지 많은 궁금증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아이들이 죽으면 돌무더기에 묻는다는 ‘독장’으로 보기에는 돌무더기의 규모가 너무 크며 돌 하나의 크기도 매우 크다.
혹시 인근 봉수대에 쓰기 위한 돌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거리가 멀며, 주변에 성을 쌓기 위해 모아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에도 주변에는 성을 쌓았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금남 최부가 제주로 떠난 포구
고려 때의 중국과의 무역항이었던 관두량은 이후에도 먼 바다로 나가는 포구의 역할을 지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제주로 떠나기에 앞서 순풍을 기다리던 곳으로 해남의 관두량, 고어란포(古於蘭浦), 입암포(笠巖浦 화산면 가좌리 선들개), 영암의 해월루(海月樓, 북평면 남창)등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