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민심 이반' 우려에 중대결단
"총리는 추천만" 이해찬 책임론 일축

[분석] 노 대통령 대국민사과-관련수석 동반사퇴 배경·전망

등록 2005.01.09 17:52수정 2005.01.09 19:47
0
원고료로 응원
노무현 대통령이 9일 이기준 부총리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공개 사과했다. 사진은 지난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새해 첫 수석·보좌관회의.
노무현 대통령이 9일 이기준 부총리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공개 사과했다. 사진은 지난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새해 첫 수석·보좌관회의.연합뉴스 김동진
노무현 대통령이 9일 낮 청와대 관저에서 이해찬 국무총리와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 그리고 관련 수석들과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이기준 교육부총리의 사퇴 파문과 관련, "논란과 물의가 빚어진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국민에게 공개 사과했다.

이해찬 총리도 교육부총리는 총리 자신이 추천했다는 점과 후보의 도덕성보다는 대학 개혁의 시급성과 당위성을 중시한 점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검증 부분에 충분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사실상 유감을 표명했다.

또 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및 총리의 유감 표명과는 별도로 김우식 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인사추천회의 멤버 전원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일괄 사의를 표시했다. 전날까지 노 대통령 핵심참모들조차 "청와대 수뇌부 거취에는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던 것과는 180도 바뀐 것이다.

심지어 관련 수석들은 오찬 뒤에 김우식 비서실장과 따로 만나 "대학의 경쟁력과 개혁을 우선하면서 후보의 흠결이 있었음에도 실용주의적 접근을 하다보니 사태가 이렇게 되었다"면서 안일한 시각을 가진 것을 반성했다.

전날 밤 여론 수렴을 계기로 '대국민 사과' 및 '동반사퇴'로 180도 변화

이와 같은 반성이 나오는 데는 어제 밤 청와대 일부 수석들의 긴급 여론수렴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여론 수렴 과정에서 "지금이 대단히 중요한 국면이기 때문에 그냥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질타와 "반성과 함께 해법에 대한 의지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권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부 수석들은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층으로부터 "이라크 파병은 지지층 이탈이 있었어도 미국이라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라는 점을 지지층이 감안해줬지만, 부적절한 교육부총리 인선건은 노대통령을 포함한 정권 핵심부를 향해 '초심과 원칙을 다 버렸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키면서 파병 때보다 더 심각한 민심 이반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결국 지난해 하반기에 해외순방과 'LA 연설' 그리고 자이툰 부대 방문으로 어렵게 쌓아놓은 개혁의 동력이 한꺼번에 상실될 수 있는 위기의식이 인사추천회의 멤버 전원의 이기준 부총리와의 '동반 사퇴'와 노 대통령의 '공개 사과'라는 중대한 결단으로 이어진 것이다.

또 이날 오전부터 <오마이뉴스>가 "'이기준 부적격' 보고서 인사추천회의서 무시"라는 제목으로 인사검증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점을 보도하는 등 언론들이 인사추천회의의 문제점을 확대 보도할 움직임을 보인 것도 중대 결단을 앞당기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노 대통령이 이번 인사 파문을 인사 추천보다는 인사 검증단계의 문제로 서둘러 정리한 데서도 엿보인다.


그러나 이병완 홍보수석은 "후보의 도덕성보다는 대학 개혁의 시급성과 당위성을 중시하는 과정에서 검증 부분에 충분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총리와 실용주의적 접근을 강조한 청와대 참모들의 '반성'이 교육부총리의 인선 기준이 바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 수석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학은 곧 산업'이라는 대학의 경쟁력 향상과 개혁을 우선하는 인선 기준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수석은 사표 수리 방침을 밝힌 이기준 교육부총리의 후임 인선에 대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심층적으로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해 시간이 걸릴 것임을 시사했다.

청와대 "추천은 총리의 몫이지만 검증은 청와대의 몫"

이런 반성을 토대로 노 대통령은 이번 인사 파문을 인사 추천보다는 인사 검증단계의 문제로 정리함으로써 실질적 각료제청권을 행사한 이해찬 총리에 대한 인책론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한 한계를 지었다.

이병완 수석도 총리의 책임 문제와 관련 "추천은 총리의 몫이지만 검증은 청와대의 몫"임을 강조함으로써 총리는 이번 사건에 책임질 일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수석은 "이해찬 총리는 사의표명을 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그 부분은 총리의 거취와는 전혀 무관하고 논의한 바도 없다"면서 "총리는 인사검증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검증은 제청권자의 몫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병완 수석은 또 김우식 비서실장의 사의 표명 사실을 전하면서도 일부에서 제기한 김우식 비서실장의 '정실인사' 의혹에 대해서는 "정실인사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못박았다.

이 수석은 특히 "김우식 실장과 이기준 교육부총리의 오래된 인연을 가지고 그런 의혹을 제기하는데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김 실장은 인사추천회의 의장으로서 사회만 보고 일체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 이 수석은 이기준 부총리 장남의 특례입학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당시에 김 실장이 연세대 화공과 학과장이었다는 점 때문에 그런 의혹이 있지만 학과장이라는 자리가 입학사정에 영향을 미칠 만한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은 대학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면서 "그 부분도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인사 논란과 물의가 빚어진 '결과'에 대해 김 실장이 도의적 책임을 진 것이지 인사 추천에 대해 직접 도덕적으로 책임질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김 실장이 사의 표명에 대해 즉각적인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일단 시간을 갖고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청와대 안팎의 여론을 청취한 뒤에 사표 수리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장관들에 대해서도 '약식 청문' 절차 거치게 하는 방안 마련될 듯

노 대통령은 그 대신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사시스템을 재점검해서 개선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정무직 등 고위공직자 후보의 경우 재산문제 검증을 위한 사전동의서를 받아 검증할 수 있는 방안 ▲검증과 관련된 설문과 답변서를 미리 사전 제출하는 방안 ▲국무위원의 경우 관련 국회 상임위에서 하루 정도 인사청문을 시행하는 방안 등도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인사청문회 관련 법에 따라 임명 전에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대법관 등과 달리, 국가정보원장 등 주요 권력기관장들에 대한 청문절차처럼 장관들에게 대해서도 국회의 동의 청문은 아니더라도 국회를 통해 최소한의 여론을 수렴하는 검증장치가 마련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이병완 수석은 "국세청장처럼 법으로 인사청문 절차가 규정된 자리는 아니지만 국회와 협의해 1일 정도의 '미니 청문' 절차를 거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면서 "앞으로 당정협의와 국회와의 논의를 거쳐 방안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노 대통령과 대통령비서실은 이번 사건으로 리더십에 상처를 받았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직자상이 새롭게 정립되고 공직후보 검증시스템이 보다 투명하고 선진화되는 계기로 삼아달라"고 당부함으로써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는 뜻을 분명히 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2. 2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3. 3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4. 4 사진에 담긴 진실...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 끝난다 사진에 담긴 진실...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 끝난다
  5. 5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