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도 종교 하나 만들까?

등록 2005.01.09 19:50수정 2005.01.09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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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집은 남향집이라 한겨울에도 뜰팡 볕이 참 따스합니다.

우리집은 남향집이라 한겨울에도 뜰팡 볕이 참 따스합니다. ⓒ 송성영

"아빠, 나도 종교 하나 만들까?"
"나두."
"뭐? 뭔 놈의 종교를?"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도 다 함께 있는 종교."
"나두."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얼마 전 친구 따라 교회에 갔다온 녀석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럽니다. 교회에 갔더니 부처님 얘기는 한마디도 안하고 하나님과 예수님 얘기만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분이 좀 이상했던 모양입니다.

"짜식들아, 교회에서 하느님하고 예수님만 찾는 것은 당연하지, 부처님을 왜 찾겠어?"
"예수님 얘기만 하니까 서로 사이가 나쁜 거 같혀. 교회 사람들도 부처님 믿으면 안돼?"
"안될 거야 없지."
"그라믄 예수님, 부처님도 다 있는 종교 만들 수 있는 거지?"
"어이구, 잘 한다. 애들을 사이비교주 만들려구 작정 하셨구먼."

아내가 한마디 툭 쏘아붙이며 끼어 들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특정한 종교만을 고집하는가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던 참인데 아내 덕분에 겨우 '구원'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오마이뉴스' 를 통해 주절거리기도 했는데, 우리 집 애들이 짬뽕 종교를 만들겠다는 배경에는 우리 부부가 있었습니다. 우리부부의 종교관은 내가 생각해도 순전히 잡탕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친구처럼 지내는 스님네 절 집에 자주 놀러 가는 편입니다. 더러는 둘째 아빠가 죽도록 좋아하는 교회에 가서 목사님 설교를 듣기도 했고 또 언젠가는 성당에 놀러가기도 했습니다.

우리 식구는 절에 자주 가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꼬박꼬박 불당을 찾는 불교신자는 아닙니다. 아마 성당이 가까이에 있고 또 신부님 친구가 있었다면 절 집보다는 성당에 더 자주 놀러 다녔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도반처럼 지내는 스님이 나보고 농담 삼아 그럽니다. 한마디로 '잡탕'이라고요. 우리식구가 그 절에 자주 가는 이유 중에 하나는 보시함에 돈 한푼 넣지 않는 '잡탕'과 잘 놀아주는 스님의 열린 성품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교회나 절 집에 왜 가는가? 물으면 그냥 맘 편하게 놀러 가는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아이들 학교에 보낼 때마다 '재밌게 놀다 오너라'라고 말하듯 말입니다. 교회든 법당이든 성당이든 그 안에 뭐가 숨겨져 있는지는 아이들 스스로가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마치 수수께끼 풀이나 보물찾기 놀이처럼 뭔가를 스스로 찾아내는 것, 그것 또한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여전히 도반처럼 지내는 스님네 절에 빈둥빈둥 놀러 가고 있고 아내는 얼마 전부터 본격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내가 교회에 다니는 이유는 처형을 위해서입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처형이 암으로 고생하는데 처형의 기도와 함께 하겠다는 의도에서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처형이 불교신자였다면 꼬박꼬박 절에 다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잡탕 종교관'을 갖고 있는 우리 집에는 얼마 전까지 '잡탕 명상실'이 있었습니다. 한동안 시골생활에 힘겨워 하던 아내가 어떤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그랬는지, 암튼 아내가 만들어 놓은 공간이었습니다.


본래 창고로 쓰던 한 평 반도 채 안 되는 허름한 공간을 말끔하게 치워 벽면을 온통 하얀 도배지(컴퓨터 이면지)로 장식했습니다. 스님네들의 선방처럼 명상실 전체를 말끔하게 만들었고 거기에 성당처럼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촛불을 켜놓고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라는 열 세자 주문을 외는 동학도처럼 사발에 맑은 청수까지 떠놓고 기독교신자처럼 무릎 끓고 앉아 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절 집 스님들처럼 턱 하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지그시 눈을 내리깔고 명상에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늘 그러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쩌다 맘 내킬 때 그러는 것이지요. 누가 보면 한마디로 꼴값을 떤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식구들은 그냥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뱃속 편하게 살고자 합니다. 물론 하고 싶은 대로 일정한 격식도 없이 이 종교 저 종교 접하다 보면 좋은 기운이 모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란해 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든 게 중구난방으로 뒤얽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 천주교, 천도교, 불교, 이슬람교 그 어느 분야든 거의 매일 한 공간에서 만나게 됩니다.(이슬람교는 미국의 영향 때문인지 거의 없긴 하지만) 물건이 아니면 사람을 만나게 되겠지요.

뒤죽박죽 뒤섞여 있지만 뭐가 어떤 종교에 관련되어 있는지 따지거나 가려내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뱃속 편하게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냄새 맡고 맛있게 먹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란해 하질 않고 다들 잘 살고 있습니다.

사실 '잡탕 명상실' 역시 고의적으로 이 종교 저 종교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편한 대로 갖다놓고 불교신자처럼 가부좌 틀고 앉아있기 힘들면 기독교신자처럼 적당히 주저앉아 기도 드리는 것뿐입니다.

마음 상태에 따라서 컨디션에 따라 다른 동작을 취합니다. 마음이 좀 편하게 정리되어 있다 싶으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깊이 마음을 들여다보고, 또 마음이 허한 어느 때는 예수님을 붙들고 늘어져 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불교 식으로 명상하는 놈의 기도를 받아주지 않겠다고 했나요? 아니면 부처님께서 예수님에게 기도한다고 뭐라 하시겠습니까?

도시에서 불교 식으로 가부좌 틀고 앉아 명상을 하고 싶은데 소낙비는 줄창 내리고 있다고 칩시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교회뿐인데 거기서 가부좌 틀고 앉아 명상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습니까? 눈이 쌓여 가는 산 속에서 예수님에게 간절히 기도를 올리고 싶습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교회는 없고 오로지 절간뿐인데 거기서 예수님께 기도 드리면 큰일이라도 난답니까? 아내에게 이런 얘기를 주절거리면 영락없이 듣게 되는 소리가 있습니다.

"어이그, 사이비 교주처럼 그러니, 애들이 그러는 거지 종교 만들겠다고."
"애들이 뭐 어째서 틀린 얘기도 아니구먼, 다들 애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인정하면 얼마나 좋겠어?"
"그거야 그렇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잖아?"

요즘은 아내의 마음이 편해졌나 봅니다. 명상실에서 심각하게 앉아있는 것보다는 볕 좋은 마루에 걸터앉거나 뜰팡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게 더 좋다고 합니다. 볕 좋은 뜰팡이 명상실이 된 셈이지요. 명상실은 어떻게 됐냐구요? 본래 용도인 창고로 되돌아갔습니다.

거기다가 때로는 술도 담아 놓고 이 사람 저 사람 생각해서 큰 항아리에 솔잎차며 감식초도 담아 놓았습니다. 그렇다고 음류만 들어가 있는 게 아닙니다. 톱이나 망치와 같은 살벌한 공구들도 들어가 있고 또 먼지 쌓여 가는 부서진 기타도 있습니다. 이것저것 다 들어가 있습니다.

종교도 그랬으면 싶습니다. 내 종교만 고집하지 말고 서로를 감싸 안아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법당에서 예수님 얘기도 하고 교회에서 부처님 말씀도 해주고, 그럼 우리 애들이 나중에 커서 이 종교 저 종교 다 끌어 모아놓는 '사이비 교주'가 될 염려도 없을 터인데 말입니다.

우리집 아이들은 이제 초등학교 2학년 3학년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종교가 따로 있겠습니까? 아이들은 본래 종교를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종교를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종교의 성인들께서는 말씀 하십니다. 어린아이들처럼 되라고요. 나는 어떤 종교든 깊이 있게 잘 모르고 있지만 그 말씀은 종교를 초월하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종교를 모르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어 모든 종교를 껴안고 살라 이르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덧붙이는 글 | 월간 '수 테크' 1월호에 올린 글을 수정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월간 '수 테크' 1월호에 올린 글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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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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