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8

장판수

등록 2005.01.13 17:02수정 2005.01.1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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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걸의 수련은 매우 거칠었다. 검술에 대해 체계적으로 가르친다기보다 막을테면 막아보라는 식으로 장판수를 목검으로 일방적으로 두드려 대는 식이었고, 그 이외에는 무거운 바위덩이를 들었다 올리며 뜀박질을 시켜 다리 힘을 기르는 훈련을 시키는 정도였다.

"니래 한양에서 갑사 하려면 그래가지고는 어려울기야. 상대를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하라우."


장판수가 힘들어 할 때마다 이진걸은 핀잔을 주었다.

"그냥 평안도나 함경도에서 갑사로 지낼 수도 있지. 정진사가 널 이리로 보낸 건 그 정도를 바란 것은 아닐게야. 한양에서 제대로 출세하려면 니래 이래가지고 서는 안 돼."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장판수는 한양에 그만큼 인재가 많이 모인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였다. 장판수는 수련을 하는 동안 평양에서 가족을 수소문하고 고향인 용천으로 올라가 보기도 했지만 어머니와 동생은 찾을 길이 없었다. 장판수는 눈물을 삼키며 속으로 다짐했다.

'내래 꼭 성공할 거다! 그래서 다시 집안을 일으키갔어!'

1년이 지나자 이진걸은 그때부터 검술에 대해 상세히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진걸의 가르침은 검술에 그치지 않고 활쏘기, 봉술, 각종 맨손 무술에까지 이르렀다.


"니래 이제 다른 일을 해봐야 할 때가 왔어. 날래 짐 챙겨 날 좀 따라오라우."

어느덧 수련을 한 지 2년이 넘었다. 이진걸은 으레 그를 가끔 찾아오던 심부름꾼이 다녀가자 칼과 가벼운 짐을 챙기며 장판수에게 일렀다.


"어디로 가는 것입네까?"
"한양."

장판수는 드디어 갑사 취재를 볼 때가 온 것으로 여겨 들뜬 마음으로 짐을 꾸린 후 이진걸을 따라 나섰다. 그러나 이진걸이 한양에 도착해 간 곳은 어느 집이었다.

"안첨지 내가 왔네."

이진걸이 찾은 안첨지라는 사람은 검은 얼굴에 눈빛이 날카로운 자였다.

"그 아인 누군가?"
"이 아이래 이제부터 내 일을 대신해 줄 아이야. 내래 이젠 몸 움직이기도 힘들어."

안첨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며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듯 이진걸을 다그쳤다.

"요즘은 술도 그리 안 마신다더니 대낮부터 무슨 소리인가? 자네 대신 이 철부지가 일을 대신한다니?"

황당하기는 장판수도 마찬가지였다. 한양까지 데리고 온 목적에 대해 제대로 말도 해주지 않은 이진걸의 속셈을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그러지 말고 이 아이 솜씨나 믿어 보라우. 내래 보증을 서겠네."

장판수는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도 없었기에 스승인 이진걸이 하는 소리가 귀에 거슬릴 뿐이었다. 안첨지는 장판수를 훑어보더니 비웃는 투로 말했다.

"너는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있느냐?"

장판수는 놀란 눈으로 이진걸을 바라보았지만 이진걸은 딴청을 피우고 있을 뿐이었다.

"어. 없습네다. 아니, 있습네다."
"뭐라는 건가? 똑바로 말해라."

장판수가 우물쭈물 거리자 이진걸이 대신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다그치지만 말고 일단 맡겨 보게나."

안첨지는 미덥잖다는 투로 이진걸을 노려본 후 장판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네가 할 일은 어느 사람을 단 칼에 베어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 놈과 함께 있는 자가 있다면 역시 죽여도 상관없느니라. 뒷수습은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할 수 있겠느냐?”

장판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자신이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는 남을 해친다는 게 옳지 못하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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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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