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정탐한 바로는 그 놈은 지금 어떤 사람과 함께 저 주막에 있느니라. 주막에는 주모 외에는 저 두 놈 밖에 없지. 주모는 통전 약간을 쥐어서 보내어 놓았으니 두 놈만 해치우면 된다. 난 이만 갈 테니 일이 끝나면 오거라.”
목적지까지 남몰래 장판수를 안내한 안첨지는 여전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듯 툴툴거리며 장판수의 어깨를 툭툭 친 후 휑하니 가버렸다. 남겨진 장판수의 손에는 지팡이처럼 보이는 창포검이 쥐여 있었다. 장판수는 서슴없이 주막 안으로 들어서서 주위를 살폈다. 문간에 놓은 두 켤레의 신발이 사람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장판수는 칼을 뽑으며 단숨에 문을 박차고 들이 닥치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칼을 쥔 자가 뛰어나오며 장판수를 막아섰다.
“웬 놈이냐?”
장판수는 크게 놀랐지만 그리 당황해 하지도 않았다. 칼을 들고 나온 이는 장판수와 비슷한 연배로 보여 어려운 상대로 보이지 않았고 또 한사람은 겁이라도 먹었는지 방안에 앉아 딴청을 피며 차를 마시고 있을 따름이었다. 장판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치고 싶지 않으면 물러나라!”
“화적인가?”
상대방은 피식 비웃음을 날리더니 장판수의 칼을 쳐서 떨어트릴 요량으로 칼끝에 힘을 주어 후벼내듯 질러 나갔다. 장판수는 이를 막은 후 속으로 자못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힘이 대단하구나.’
놀란 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한낱 날도둑놈인줄 알았더니 제법이구나.”
“시끄럽다!”
이번에는 장판수가 앞발을 내딛으며 칼을 찔러 들어갔으나 상대는 몸을 피하지 않고 칼을 옆으로 내어 밀어 이를 막았다. 진검끼리의 대결이고 숙련된 실력들이라 검새가 날카로워 아차 하는 순간에 결판이 날 법도 했지만 둘의 대결은 쉽게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며 칼 부딪히는 소리도 탁하지 않으면서 요란하게 이어져 갔다.
‘칼이 불리하니 내가 밀리겠구나.’
장판수의 칼은 코등이(칼자루와 칼날 사이에 끼워서 손을 보호하도록 만든 원형의 철물)조차 없는 짧은 창포검인데 반해 상대의 칼은 어찌 보면 왜도(倭刀)와도 같은 모양새의 제대로 된 환도였다. 한두 차례 사나운 공격 후에 장판수는 막기에 급급한 형세가 되어 한걸음씩 뒤로 물러나 등이 벽과 닿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상대의 칼이 자신의 어깨를 노려 비스듬히 찔러올 때를 기다린 장판수는 몸을 세차게 굴려 칼날을 피한 후 도주하려 했다. 순간 귓전을 가르며 화살이 스쳐 지나갔다.
“이놈! 칼을 놓고 거기 섰거라!”
방안에서 차를 마시던 자가 어느 새인가 활을 들고 장판수를 겨누고 있었다. 첫 번째 화살이 분명 자신을 맞힐 수도 있었음에도 사정을 봐주었다는 것을 깨달은 장판수는 순순히 칼을 땅에 떨어트려 놓고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넌 대체 어떤 자의 사주를 받고 나를 해하려 했는가?”
“말 할 수 없습네다.”
장판수는 차마 스승의 이름을 댈 수 없었다. 장판수와 싸웠던 자가 자신을 소개하며 장판수를 윽박질렀다.
“난 윤계남이라고 한다. 칼 솜씨를 보니 보통이 아니던데 넌 이분이 누군지 알고 감히 해하려 들었느냐?”
“그런 거 모릅네다.”
“이분은 이조좌랑 홍자 명자 구자 어르신이니라.”
장판수는 이조좌랑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몰라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되었다. 그나저나 계남이 네가 내일 갑사 취재를 보는 날인데 이토록 괴이한 일을 당했으니 액땜이라도 된 모양이구나.”
장판수는 홍명구의 말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내일이 갑사 취재를 보는 날이라니 그게 무슨 소립네까? 제 스승님은 그런 말씀이 없으셨음네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