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J 심슨 사건과 로스쿨 제도

[주장]우리나라에 맞는 사법체계 고민해야

등록 2005.01.16 13:38수정 2005.01.1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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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OJ 심슨 사건의 결말

1995년 10월 4일은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 대입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대학은 역시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라서 다른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온통 세상에서 떠들어대는 바람에 알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OJ 심슨 사건이다. OJ 심슨 사건은 진정 세계적인 뉴스였다. 그것은 흑인으로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슈퍼스타의 살인사건어서만은 아니었다. 이유는 그가 무죄로 풀려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떻게 무죄로 풀려날 수 있었을까? 사건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심슨이 풀려나게 된 경위를 간략하게 말씀드리겠다. 심슨의 변호사는 법정에서 ‘체포와 증거수집의 과정에서 백인이 아닌 흑인경찰관이 그 자리에 있었는지’를 집중 공략했다. 그리고 인종차별이 심했던 과거에 비추어 봤을 때, 흑인인 피의자를 체포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유색인종의 경찰관이 없었을 경우, 흑인인 심슨이 불리한 위치에 있을 수도 있음을 적극 주장했다. 결국은 사건을 흑백논쟁과 인종차별 문제로 끌고 감으로써 배심원들로부터 ‘유죄가 아니’라는 판단을 끌어낼 수 있었다.

2. 심슨이 한국으로 온다면?

혹자들은 말이 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살인사건에 인종차별 논쟁이 웬말이며, 사건의 본질에는 근접하지도 않은 과정에서의 하자만을 따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가능하다. 현재 법체계는 크게 대륙법계와 영미법계로 나뉘어져 있다(물론 현재는 서로 많이 근접해 있지만 그것도 여기서는 중요치 않다). 두 체계는 본질적으로 많은 부분에 차이가 있는데 심슨 사건이 형사사건이므로 형사사건에 관해서만 말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실체 진실주의와 적법절차 원리

대륙법계는 실체진실의 발견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영미법계는 절차가 적법했는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상기 사건을 예로 든다면, 대륙법계는 심슨이 살인을 했는지 여부를 밝히는데 중점을 두고 있지만, 영미법계는 철저한 대립당사자 주의로서 피의자인 심슨이 검사에 맞서 대등한 지위를 확보했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미란다 사건도 사건자체만 놓고 본다면 그런 이유로 결과는 좀 웃긴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로 시작되는 몇 마디를 고지받지 못해서 풀려나지 않았던가? 물론 이는 나중에 ‘미란다 원칙’으로 확립되어 피의자의 신체의 자유를 지키는데 일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다시 심슨 사건으로 돌아가 본다면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 심슨은 무죄를 주장하고 풀려날 수 있었지만, 만약 그가 우리나라에 온다면? 아마 유죄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증거물의 경우 위법한 압수절차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증거능력은 있다고 판시된 바 있으며, 보다 본질적으로 우리나라는 대륙법계로서 실체진실주의를 밝히는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2) 이중처벌 금지의 원칙과 이중위험 금지의 원칙


대륙법계인 일사부재리(이중처벌금지) 원칙은 판결이 확정되면 발생하지만, 영미법계인 이중위험 금지의 원칙은 검사의 상소도 이중위험이 된다고 본다. 따라서 이중으로 형사절차에 의한 처벌을 받을 위험에 놓이게 된다는 이유로, 동일범죄에 대한 검사의 상소가 미국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검사는 판사의 결정에 불복하여 항소가 가능하며, 상고심에서는 법률적인 판단 부분도 논할 수 있게 되므로, 영미법계에 의하면 세 번의 위험에 피의자를 올려놓게 되는 것이다.

더 세세한 부분도 있지만 대략 위의 두 가지 정도면 충분히 대륙법계와 영미법계의 법체계가 어찌 다른지 독자들이 파악했으리라 보므로 더 이상의 언급은 않기로 한다.

OJ 심슨은 이후 민사사건에서 전처의 유가족들에게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받는다. 형사사건에서는 ‘‘유죄가 아니’’라 해놓고, 민사사건에서는 유죄를 전제로 손해배상을 하라니 좀 웃기지 않는가? 어쨌거나 심슨이 한국에 온다면 그는 분명 살인죄를 인정받고 복역 중일 것이다.

3. 로스쿨 논쟁의 출발

로스쿨 논쟁은 어디서부터 출발했는가? 로스쿨 논쟁의 출발은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일선 법조인들의 자세로부터 비롯된 법조계의 권위주의적 자세 타파와 저렴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법률서비스 개선과 관련해 시작되었다.

법조계의 권위의식? 타파해야 한다. 법률서비스?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로스쿨 제도가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법조계의 권위의식은 법관의 자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는 판·검사 1인당 사건수임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아(정말 1위다) 판·검사들이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스스로 딱딱해 지는 것일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일선 판·검사들의 생활수준이 어떠한지는 본인도 당사자가 아니므로 잘 모른다. 다만, 한 사람 건너서 듣는 소문에 의한다면 하루 4시간 정도 잔다면 잘 잔다는 것 뿐이다. 야근은 기본이고 세인으로부터 관심 받는 판결은 더욱 명쾌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밤을 새기도 한다. 법정에서 어찌 인간적으로 보일 수 있겠는가? 인간인데 어찌 그런 중노동을 하고도 매번 자상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일 수 있겠는가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턱없이 고압적인 자세는 소송 당사자들로 하여금 화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질부족(?)의 판·검사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판·검사들은 스스로 위와 같은 비판에 직면해 있음을 알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민간단체로부터 선임된 덕망 높은 법조인이 일선 판·검사로 재직하면 크게 달라질 것 같은가? 절대 아니라고 본다. 현재 판·검사 인원의 두 배, 아니 세배를 확충하지 않는 한 소송의 효율성을 위해서 그들도 비슷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률서비스 개선과 관련해서 보자면 변호사 수임료가 상당히 높기는 하다. 하지만 변호사의 증가로 점차 낮아지는 추세며, 이 역시 한사람 건너서 들어본 바에 의하면 5년 전 수임료의 70%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한다. 사법시험 연 인원 1000명 시대를 맞아 어찌 더 낮아지리라고 보지 않겠는가.

변호사 수임료를 떠나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가 자질이 많이 부족하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문제이지 않겠는가? 대학 4년 동안 법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또 고시준비를 별도로 수년, 그리고 연수원에서 2년 동안 수학한 사람과 로스쿨을 3년 기간동안 마친 사람의 법적 해결능력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로스쿨 제도가 법률서비스 개선에 반드시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얘기다.

4.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 (사법시험 제도의 필요성)

일본에서 수년 전 로스쿨 도입논쟁이 발생하고 또 로스쿨이 시행되는 것을 보면서 장차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은 일이 발생하리란 걸 예상한 바가 있다. 그리고 지금 그 논의가 있고 어쩌면 도입이 확정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한번 재고해 보기를 바란다. 우리나라는 대륙법계의 체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륙법계에서 판사는 유·무죄를 판단하고 법률을 해석·적용하고 형량을 확정하는 것까지 많은 부분을 도맡아 하고 있다. 따라서 전문적으로 법률을 해석·적용하는 기계와 같은 존재가 아니면 안 된다. 판사는 무색, 무취한 ‘기관’으로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다. 잘못하면 재량권의 남용으로 죄형법정주의를 그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이는 판사는 보수적이어서도 진보적이어서도 안 된다는 논의와 일치한다).

미국에서 판사는 단지 형량을 정하는 역할만 담당한다. 그리고 유죄와 ‘유죄가 아니’라는 판단은 배심원이 결정한다. 따라서 미국에서 판사의 역할은 우리나라보다 많지 않다.

문제는 로스쿨의 짧은 학습과정으로 정확하게 법률을 해석·적용하는 기관으로서의 법관, 그리고 검사들을 양성할 수 있느냐다. 로스쿨은 본질적으로 소송하는 방법만을 가르치는 곳이고, 이는 변호사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사법시험 출신으로 일선 판·검사들을 유지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나중에 로스쿨 출신의 판·검사들이 선임된다면 그 자질 문제 또한 틀림없이 문제가 될 것이다.

5. 로스쿨 도입으로 인한 혼란

이미 일부 학교에서는 법학부의 폐지문제와 교수들의 향후 거취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으며 일부 학교에서는 로스쿨을 도입하겠다고 과열 유치경쟁에 뛰어들었다.

로스쿨을 유치하지 못한 대학의 법학부는 많은 교수들의 거취문제에 영향을 줄 것이며 이는 교수들의 연구의지를 꺾게 할 것이고 또 법학계의 발전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또 로스쿨을 몇 년 앞둔 시점에서 과열경쟁에 뛰어든 대학들 중 로스쿨을 유치하지 못한 대학이 있다면 그간의 투자로 인한 후유증으로 대학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로스쿨을 선정하고 나서도 그 공정성 때문에 한동안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며, 법학계의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다.

먼저 로스쿨을 도입한 일본에서는 또 어떠한가? 얼마 전 일본에서 배심원제도를 시범운영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더욱 우려가 된다. 많은 헌법학자들은 알고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유·무죄를 배심원이 판단케 하려며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제도 하나를 도입하면서 그로 인해 죄다 바꾸자는 말인가? 헌법까지?

로스쿨 도입으로 고시낭인들을 없애겠다는 취지 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 역으로 보자면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해서 선임된 판·검사들과 로스쿨 3년 마친 판·검사들과 능력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또 약 1억5천만원정도의 로스쿨 수학비용은 어떠한가? 과거 고시가 신분상승의 하나의 기회였다면, 이제는 그것조차 힘들게 되지 않겠는가? 1억5천만원의 돈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그런 액수는 아니지 않은가?

물론 열거한 문제들이 다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보다 훨씬 본질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이 혼란들과 막대한 비용들은 누가 감당하는가?

6. 다시 OJ 심슨 사건과 로스쿨 제도

일부에서는 이미 확정된 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한다 할 수 있겠다. 그렇다. 이미 확정되었다. 하지만 아직 준비 중이고 시행되지는 않았다. 아직 시행되지 않았으므로 지금이라도 중단한다면 다가올 많은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이것은 결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는 비판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대륙법계가 영미법계의 장점을 수용할 수는 있다. 반대로 영미법계가 대륙법계의 장점을 수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륙법계와 영미법계가 섞여버린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각각의 체제에 다른 체제의 장점을 도입하는 것은 분명 발전적이겠지만, 이를 섞어버린다면 하나의 독특한 체제로 완전히 정립되기까지 많은 시간동안 혼란과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체포할 때 구속적부심사제도와 같은 것은 피의자의 권리를 위한 영미법계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에 도입된 ‘미란다 원칙’ 또한 영미법계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로스쿨 제도는 영미법계의 장점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영미법계의 체제의 본질일 뿐이다. 대륙법계와 엄연히 다른 영미법계의 체제상의 본질 말이다.

이미 많은 비용과 노력과 지출이 있었다. 더 커다란 법학계와 법조계의 손상으로 가기 전에 꼭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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