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전 석조보살좌상안병기
명부전을 돌아 나와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아주 작은 전각이 나타나는데 여기가 용화전이다. 이 용화전에는 석조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용문사를 중건할 때 경내를 파다가 발견하여 용화전에 모셨다 한다.
후대에 오면서 백회로 덧칠을 하는 바람에 본래의 자연스런 모습을 잃었다. 보살상의 상호는 조금 각진 듯하며 눈과 입이 작은 편이다. 얼굴에 비해 상체가 상당히 긴 형태로 표현되어 있으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풍만한 느낌을 준다.
풍경은 어디 있는가, 추녀 끝에 있는가, 내 마음 속에 있는가
영산전을 둘러보고 다시 대웅전 마당으로 내려섰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아주 나직이 뎅그렁, 울리는 풍경 소리를 들었다. 풍경은 어디 있는가. 그러나 이 절집 어느 전각의 추녀 끝에도 풍경은 달려 있지 않다.
소리가 나는 곳을 더듬어 들어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의 마음이었다. 내 마음의 추녀 끝에도 풍경이 하나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풍경은 수시로 내 어리석음을 경계하며 뎅그렁 뎅그렁 소리를 냈지만 난 여태껏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난 언젠가 살다보면 번뇌도 한 여름 날의 불두화처럼 피어나 탐스러운 꽃송이가 될 줄 알았으며 오만가지 망상조차도 궁극에 이르면 몸에 이로운 곰팡이 균이 될 줄로 착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돌아보면 내 일생이 얼마나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인가. 이 때 늦은 뉘우침이 산사의 아침을 더욱 무거운 적막 속으로 가라앉혔다.
누구는 펄럭이는 빨래를 보고
깨달았다는데
누구는 물에 비친 제 그림자를 보고
깨달았다는데
누구는 비질을 하다가 깨달았다는데
누구는 콧구멍 없는 소라는
말에 깨달았다는데
누구는 발목이 부러지는 순간 깨달았다는데
누구는 코를 비틀자 깨달았다는데
누구는 오줌싸개같은 놈이라는
욕에 깨달았다는데
나도 펄럭이는 빨래를 보았고
물에 비친 내 그림자를 보았고
비질도 해보았고
콧구멍 없는 소 얘기도 들었고
발바닥이 찢어졌었고
머리가 비틀렸었고
오줌싸개보다 더한 욕도 먹었는데
왜 깨달을 것도 없다는 것을
뼈에 사무치게 깨닫지 못하는지
풍경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온다
최승호 詩 <풍경소리> 全文
동행했던 남해 서포 김만중 기념사업회 김성철 회장을 따라 종무소로 들어갔다. 김 회장과 안면이 있는 용문사 신도회장이 차나 한잔 하자고 청한 모양이다. 차는 첫 잔은 향(香)으로, 두 번째 잔은 색(色)으로, 세 번째 잔은 맛으로 마신다던가.
내가 처음 차를 마셔본 것은 25년 전 선암사에서였다. 조실 격인 스님이 거처하는 일로향실(一爐香室)에서 남명 스님의 곡차 심부름이나 하며 세월을 죽이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