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 책 표지삼인
옆에서 듣고 있던 그이의 아내가 그래서 사람들이 때로는 오해한다고 하더군요.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자, 그이가 그렇게 작업을 하는 것이 외려 저를 부담감에서 해방시켜주지 싶었습니다.
그이는 정말 이력이 난 사람 같았습니다. 얘기하면서도 조각도를 능숙하게 움직이더군요. 제가 마음속으로 이 장면에 감탄하고 있을 즈음 그이는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실수하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이지요. 그이가 제게 얘기는 안 했지만 눈치로 알았습니다. 아마 글씨까지 파낸 모양입니다. 열심히 뭔가를 찾더니만 그걸 원판에 대고 순간접착제로 붙이더군요.
아마도 이때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농사꾼이 아닙니다. 제 본업은 판화가입니다. 제 밥벌이는 판화입니다. 농사는 공부하기 위해 짓습니다. 저를 농사꾼이라고 하면 평생 농사로 잔뼈가 굵은 진짜 농사꾼들을 욕되게 합니다.”
그렇지만 그이가 이곳 제천에 내려온 지도 어느덧 19년이고, 짓고 있는 농토도 2500여 평에 달합니다. 그이 역시 농사철이 되면 무척 바쁘고 힘들다고 책 속에 실은 엽서에 적었습니다.
그이는 지금 큰 전시 2개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4월 1일부터 미국 시애틀에서 2년만에, 또 13일부터는 서울 가나아트에서 5년만에 각각 관람객들과 만날 예정입니다.
“미국 전시회 때문에 3월 말 경에 그곳에 가야해서 그땐 엽서를 쉬어야겠지요? 아마도 이번 서울 전시회는 엽서를 받아보는 회원들과의 오프라인 모임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이는 전시회를 앞두고도 엽서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독자들도 쉬게 하세요!”라고 말했더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이는 이번 전시회가 끝나면 글이 들어가지 않은 판화도 해볼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림에 글을 보태는 것이 반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술 자체가 스스로 신비화하고 논리적 설명을 회피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봅니다. 미술은 정직하고 친절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이의 작품들은 그림과 글이 함께 어우러지며 상호보완적 역할을 해왔는데, 글 없이 그림만 있으면 왠지 허전할 것 같다고 했더니, 그림만으로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시도를 하기 위해서랍니다. 혹시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작품은 안하는 게 아닌가 하고 오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 역시 지금처럼 열심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이는 화가로서 욕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대중들과의 관계 속에서 따뜻한 밥 한 그릇 정도의 역할이면 만족한다고 했습니다.
밥 한 그릇 역할이면 만족합니다!
그이는 ‘조심조심, 열심히’를 올해의 화두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문화방송 핸드백 사건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어느 일이나 함정이 있을지 모르니까 늘 조심조심, 천천히 챙겨보면서 진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조심조심 열심히’는 어떤 경우이든 다 통한다고 봅니다.”
이 이야기도 그이가 엽서를 띄웠습니다. 엽서로 읽어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