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정체성 위기'로 표류한다고?

[주장] 뉴스위크 한국판 이병종 기자의 기사를 통박한다

등록 2005.01.17 18:03수정 2005.01.1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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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뉴스위크 한국판 1월 17일자 관련 기사.

뉴스위크 한국판 1월 17일자 관련 기사.


사실과 진실

언론의 중심축을 이루는 기자는 ‘사실(fact)’에 바탕을 두고서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향은 ‘진실’쪽으로 향해야 한다. 사실의 나열이 곧 진실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진실은 고사하고 사실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수준이하’의 기사를 종종 본다. 더구나 외국언론사의 한국 특파원 중의 일부 기자는 그 정도가 심할 뿐 아니라 비판에서도 지나치게 자유로워 보인다. 세계적인 유력 언론사의 특파원이라는 자부심 탓일까?

안타까운 것은 이런 기자들이 쓴 기사에 종종 드러나는 사대주의적 자세이다. 세계적인 언론사의 특파원이라는 자부심은 넘치는데 받쳐줄 내공이 채워지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짐작은 한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치면 골치아픈 건 기자 자신이다. 부족한 내공으로 쓴 자신의 기사가 다시 돌아와서 국내 언론사의 대문에 떡하니 내걸리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 입맛에만 맞으면 기사의 객관성과 사실관계를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세계적인 언론사’의 기사를 대문에 올리는 일부 언론사도 문제이긴 하다. 무엇보다 언론사로서의 ‘자부심’이 너무 없다는 게 그렇다. 어쨌거나 자부심이라곤 별로 찾아볼 수 없는 일부 국내 언론사가 자부심만 넘치는 외국언론사 한국 특파원의 기사를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찰떡궁합의 본보기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뉴스위크의 서울 특파원인 이병종 기자가 보도한 일련의 기사는 ‘자부심만으로’ 쓴 기사의 전형을 보여준다. 사실을 자신의 의도대로 가공하다 보니 그런 사실을 꿰는 것도 작의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실례를 짚어보기로 한다.

2005년 1월 12일자 조선일보 2면에는 ‘한국軍, 정체성 위기로 표류’라는 기사가 실렸다. 뉴스위크 한국판 1월 17일자(663호), ‘방황하는 한국군 - 정치권의 이념 갈등과 내부 스캔들로 정체성 위기에 빠져’라는 이병종 기자의 기사를 인용한 것이다.


이병종 기자는 위의 기사에서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시작한 이래 남북한은 친구처럼 행동하기 위해 엄청나게(때론 변덕스럽게) 노력해 왔다”며 “이같은 정체성 위기의 핵심에는 한국군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진보적 성향의 징집병들이 있다”고 단언한다.

또 “대담해진 시민단체들은 지난 20년 간 군에서 발생한 수십건의 의문사 사건을 조사하라는 운동을 벌이고 있”고 “노대통령 지지자들은 … 군을 포함한 모든 한국인들이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같은 정치적 공방 속에서 첫 번째 희생자는 총을 든 사람들”이며 “가끔 우리의 총을 어디로 겨냥해야 할지 의심스러워질 때가 있다”는 한 연대장의 언급을 내세웠다. 그래서 지금 우리 한국군이 ‘방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기사는 얼핏보아도 한국의 이념 갈등이 군 내부에까지 확산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한국군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심각한 문제 제기로 보인다. 그 원인은 ‘진보적 성향의 징집병’과 ‘대담해진 시민단체’와 ‘노대통령 지지자들’이다.

그래서 “미국과의 유대 강화를 강력히 주장하는 한국 군부마저 덩달아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사의 어디에도 이병종 기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다’. 몇몇 인터뷰어의 언급을 제시하지만 개인적인 견해일 뿐, 사실관계를 입증할만한 최소한의 객관적 자료도 없다.

대체 ‘군의 정체성’이 무엇일까? 헌법 제5조 제2항에는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이 현재 우리 군의 ‘정체성’이다. ‘주적’의 개념이 없어지기 때문에 군의 정체성이 위기라는 주장은 그렇다면, 우리 국군이 국토방위와 안전보장을 포기하려는 조짐이라도 보인다는 것일까?

이병종 기자가 주장하는 이 ‘정체성의 위기’를 제3자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다음은 조선일보의 인터뷰(2004년 9월 29일자. ‘주한, 주중 대사 역임 ‘아시아통’ 제임스 릴리‘)이다.

(기자) “ 한국의 급속한 정치적 이념적 변화로 인한 갈등을 어떻게 보나?”
“한국은 지난 60년 동안 변해왔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 일어난 경제적 변화는 지금과 비교할 수도 없다. 한국은 역동적인 나라이고, 언제나 빠른 속도로 변해왔다. 그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기자) “ 문제는 그런 변화가 너무 과격하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지금의 정치 경제적 변화는 한국이 현대 국가가 되기 위한 과정이다. 세계의 다른 국가들의 겪는 변화도 마찬가지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 때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쓰겠다?

뉴스위크의 서울 특파원인 이병종 기자의 ‘짜맞추어 (기사)쓰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뉴스위크 본사의 데스크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기사의 질을 판단하는지 알 수 없으나 정론을 표방하는 세계적 언론사로서의 명성이 무색할 지경이다. 몇 가지 사례를 더 들어보기로 한다.

‘절망 안고 한국을 떠나는 부자들(2004년 9월 22일 제648호)’이란 제하의 기사에서
“한국의 부자들이 분배를 우선하며 상류층을 압박하는 노무현 정부 치하를 속속 떠나고 있다. 이같은 엑소더스에 앞장선 사람은 재계 엘리트들이다”라고 썼다. 이 기사의 내용은 과연 사실일까?

외교통상부 재외국민영사국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이민자 수는 1986년의 37,097명을 정점으로 감소추세에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같은 기간 30,548명에서 2003년에는 4,200명, 2004년 8월까지 3,304명으로 급격하게 감소했다. 또한 사업 및 투자목적 이주의 경우 해외이주적격결정제도가 폐지되고 신고제로 전환된 1992년의 4,057명에서 2003년에는 약 37% 수준인 1,496명이었다.

즉, 군사정권의 폭압적인 정치체제에서 이민이 극에 달한 반면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이민 현상은 급격하게 감소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통계를 보면 엑소더스라는 표현을 왜 썼는지 알 수가 없다.

‘정부를 재정적자로 내몬 대규모 공공지출(2004년 9월 8일 제646호)’이란 제하의 기사에서도 이병종 기자의 ‘쓰기’는 여전했다.
1. 공약 사업 추진비용 3천 억달러(약360조원) 소요
2. 개인소득세와 국민연금은 국민총생산(GNP)의 25.5%로 올랐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불과한 한국의 세율이 2만~3만달러에 이르는 나라와 맞먹는다.

첫째, 이 내용은 6월 18일 조선일보가 보도했다가 7월 8일에 정정보도까지 한 것이다. 당시 조선일보는 ‘10~20년 간 국책사업 230조 이상 필요, 국가빚 크게 늘어 국민부담만 눈덩이’라고 보도했다가 ‘ 향후 10~20년 간 소요재원으로 제시한 230조원은 일부 사업이 이중계산된 것으로 모든 사업에 새로운 재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로 정정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정정보도까지 한 조선일보의 230조원보다 130조원이나 높게 잡은 이병종 기자의 보도태도는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미국의 거대언론사 서울 특파원이기 때문에 국내 언론의 정정보도 내용에는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것인가?

둘째,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02년을 기준으로 OECD 30개국 평균 조세부담율은 27.3%, 국민부담율은 37.5%이며 우리나라의 조세부담율은 주요선진국의 1인당 1만달러 달성연도의 조세부담율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더구나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때의 조세부담율과 국민부담율은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오히려 낮다. 왜 이런 사실은 빼먹었을까?

이병종 기자의 이런 식의 기사쓰기는 사회적 문제 뿐만 아니라 ‘국가적 경사’에 대해서도 예외가 없다. ‘2004년 3월 3일 제619호. 투지와 집념으로 이룬 생명 과학의 기적’이란 기사를 보자.

“지난주 황교수는 … 인간 줄기세포 연구를 1년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이 연구를 금지하기로 결정한다면 황교수는 외국에서 연구를 계속할 생각이다.”

그런데, 황우석 교수는 인간줄기세포 연구를 1년 간 중단하겠다고 한 적도 없고 외국에서 연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적도 없다. 2월 19일 귀국 기자회견을 보도한 어느 언론에도 이런 내용이 없다. 더구나 한국일보와의 인터뷰(2월 20일자)에서 황교수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기자) 한국의 간판 과학자로서 사회적 역할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일단 실험실로 잠행하겠다. 단 청소년에게 과학의 꿈을 심어주는 기회가 필요하다면 그것만큼은 하겠다.”
(기자) 황교수는 무엇을 얻나?
“명예가 있지 않나. 그것도 나의 명예라기보다 대한민국의 명예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바이오의 정상에 오르리라는 것은 나의 신앙이었다. 스카우트 돼 외국에 나갈 생각은 0%다. … 거기서도 지금처럼 새벽 6시부터 연구원들과 지지고 볶을 수 있을까? 나는 지금이 훨씬 보람 있다.”


고형적 사고(Concrete Thinking)를 버릴 수는 없을까?

이병종 기자는 노무현 정권이 시행하는 정책의 잘잘못을 객관적인 기자의 입장에서 비판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노무현 정권에 대해 가지는 ‘생리적 거부감’을 증폭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느낌까지 준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다수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존재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이런 식으로 극렬하게 드러내는 것은 결국 비판도 아니고 저주에 불과하다.

최소한의 사실관계에 기초하지도 않는 이러한 보도 행태는 지양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언련의 논평(2004년 6월 22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기 입맛에 맞는 부분만 침소봉대하고 국민들이 꼭 알아야할 ‘사실’이라도 자신들 논조와 맞지 않으면 보도에서 삭제해 버리는 일부 언론의 외신보도행태를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하며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 잘못된 외신보도 행태는 부메랑이 되어 해당 언론에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한다.”

덧붙이는 글 | 최재천 기자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입니다.

덧붙이는 글 최재천 기자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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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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