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친구네가 짓기 시작한 흙집오창경
요즘처럼 깊고 긴 겨울밤에는 봄이 오면 집을 짓겠다는 결심으로 우리는 빈 종이에 설계도면을 그렸습니다. 대궐 같은 집에서 소박한 오두막집까지 많고 많은 집들이 우리의 상상 속에서 지어졌다가 부서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몸으로 하는 일보다 머리로 하는 일에 더 익숙한 우리의 한계는 여기에서 더 이상 전진을 하지 못하고 항상 해를 넘겨왔었지요.
작년 뜨거운 여름 어느 날, 흙집을 짓겠다고 선언한 옆 동네에 사는 친구 오경숙은 우리와는 사뭇 성향이 달랐습니다.
“새로 지은 축사 옆에 관리사가 한 채 있어야 할 것 같아. 이왕이면 흙집으로 지어 볼까하는데 모아 놓은 자료들 좀 한번 보여줄래?”
그렇게 찾아 왔던 오경숙은 내가 자랑스럽게 내놓은 자료들을 쓰윽 한 번 훑어보더니 전원주택에 관한 잡지 한 권만 달랑 들고 갔습니다.
“흙집은 하지(夏至) 전에 지어야 하는 거래. 그것도 모르고 장마철에 일을 저질렀네. 오늘은 비가 와서 쉬기로 했다. 비 그치면 구경 와.”
그녀에게 이런 전화가 온 것은 우리 집에서 잡지책을 가져간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녀는 우리처럼 요원한(?)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야무진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득달같이 달려가 보니, 남편은 벽에 흙을 올리고 아내는 흙을 다져서 남편에게 넘겨주는 부부애가 담긴 아담한 흙집을 짓는 중이었습니다.
빌려간 잡지에 나오는 웅장한 황토집은 아니었지만 정말 우리가 꿈만 꾸던 흙으로 집을 짓고 있던 것입니다. 온 몸이 흙으로 범벅이 되어서도 철벅거리는 흙을 맨손으로 다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친구의 모습은 차라리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자기 손으로 살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제단을 쌓는 것같은 그녀의 모든 행위는 신성하게 보였습니다.